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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淵明(도연명), 일명 陶潛(도잠)

글모음(writings)/한시(漢詩)

by 굴재사람 2015. 8. 1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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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淵明(도연명), 일명 陶潛(도잠 : 365~427년 )

 

 

동진(東晉)의 시인, 문학가이다.

문앞에 5그루의 버들을 심어 자칭 오류선생()이라 불렀다.

심양 시상(潯 )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고상한 취미에 박학했고 글을 잘 하였다.

 

관리 생활을 하다가 팽택현령()으로 있을 때 상부에서 독우()가 와서

관복을 갖추고 현신()하기를 재촉하니 “내 닷 말 녹봉(祿)으로 하여 허리를 굽힐 수는 없다.” 하고는,

그 날로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를 짓고는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가 은일() 생활을 했다.

 

도연명()은 동진()과 송()의 왕조 교체기를 살았다.

도연명이 살던 시기에 재위했던 동진의 제왕 다섯 명 가운데 네 명이 폐위되거나 살해당했고,

결국 유유()에게 멸망당했던 것이다.

 

도연명은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도, 그 속에서 좌절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과 사회를 중시하는 유가와, 자연과 개인을 강조하는 도가로부터

각각의 장점을 조화해 낸 그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유가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은거 생활을 한 후에는 도가에 경도되었으며 특히 장자()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도연명의 사상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 그의 생사관과 자연관을 들 수 있다.

 

도연명은 생사를 자연의 운행에 따른 한 과정으로 보고 삶에 연연해 하거나 죽음에 초조해하지 않았다.

이는 생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 장자에게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

장자는, "기()가 변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있게 되었다.

 

지금 다시 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는 교대로 춘하추동의 사시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하여

죽음이란 '자연에 순응하는' 한 과정임을 설파하였다.

도연명의 「잡시()」 제7수에는 이러한 생사관이 잘 나타나 있다.

 

家爲逆旅舍(가위역여사) 내 집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요

我如當去客(아여당거객) 나는 떠나가야 할 나그네 같구나

去去欲何之(거거욕하지) 떠나가서 어디로 향할 것인가

南山有舊宅(남산유구택) 남산에 본래의 집이 있다네

 

생전에 살던 집은 잠시 머무는 여관이니 때가 되면 옛 집, 즉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안연지는 도연명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여, "죽는 것을 돌아가는 듯이 여겼다"고 하였다.

도연명은 생활면에서는 '안빈낙도()', '고궁() 등 유가에서 획득한 진지함으로

도가의 말류인 방탄()이나 신선 추구에 빠지지 않았다.

즉 노동을 중시하고 생활을 위한 근면을 강조하였다.

 

정신면에서는 '순응자연()', '달관()' 등 도가에서 획득한 지혜로

유가의 말류인 허위적 명교()나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

즉 유가, 도가의 철학을 선별적으로 취사하여 자신의 인격과 사상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그는 청고순진()한 시인이었으며 불평을 품고 세상일을 버린 은자가 아니라

진심에서 자연을 사랑하고 전원을 즐겼던 참다운 전원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풍은 당대()의

맹호연(), 왕유(), 위응물(), 유종원() 등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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