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 칼럼] 연꽃은 진흙에서 핀다
나는 석기 시대여자다. 문명의 이기도 싫어하고, 컴퓨터도 ‘앨러지’가 날 정도로 싫어한다. 그 대신 돌을 좋아해서 별명이 ‘석순이’다. 돌산 그림자 드리운 동네 석산동(스톤마운틴)에서 돌 사랑에 빠진 나는 맑은 물·솔바람 소리에 묻혀 내 생의 반절 이상을 살았다. 남은 인생도 바람처럼 물처럼, 흙을 만지며 살다가 이대로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보다 정직하고 무식하게 살고 싶다. 흙속에는 농사로 터전을 마련하신 내 아버지, 어머니의 젖내음이 묻어있다.
손에는 흙마를 날이없고 까만 먹물로 내 마음을 씻는다. 화가라 할 것도 없는 내가 그림을 좋아해서 마음 내키면 동양화 또는, 서양화폭에 인상파 화가들의 굵직한 선을 긋는다. 18세기 후반 인상파 화가 모네의 그림속에 소복한 여인같은 연꽃이 그려진 것이 내 마음을 흔든다. 왜 연꽃이었을까? 깊은 산 선승들이나 바라보며 선의 삼매경에 빠진 동양인의 그리움이 연꽃 아닌가. 한송이 연꽃을 그리기위해 화면에 수없이 피었다지는 숨어핀 이름없는 들꽃의 향연들이 더 마음에 든다
이름없이 살다가 안개되어 사라지는 풀꽃들은 사람의 욕심도 부귀 영화도 모른다. 보일듯말듯 안개속에 물결속에 피어있는 들꽃의 향연, 물아일체의 경지요 무심이 흐른다.
어제밤 잠이 오질 않아서 솔숲을 거닐다가 수많은 별들이 솔 사이에 내려와 반짝이는게 아닌가. 마치 크리스마스 처럼 반짝이는 요동치는 불빛들, 그것은 반딧불이었다. 공기가 청정해야 산다는 반딧불들이 한 밤중 솔숲, 잔디 사이로 찿아온 것이다.하늘에서 쏟아진 별들처럼 요동치는 빛의 향연속에 내 마음도 텅비어둔 빈산이고 싶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만나본 한밤중의 향연에 가슴 뜨거운 축제의 밤이었였는지…. 숲 사이를 거닐며 “미안해! 그동안 어디갔다 다시 찾아온거니?”라고 외쳐본다. 하늘의 은하수 성좌가 잠시 내려와 머믈다간 밤, 내 어머니의 분신인 6월의 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사막에는 주먹만한 별들이 그들의 길을 인도한다더니, 암흑같은 밤에 나홀로 별들의 축제에 ‘수류화개’의 경지를 맛보았다.
연꽃은 진흙속에서 핀다. 하이얀 꽃잎을 밤새워 새긴 것은 밤하늘에 별들이 꽃잎을 새기고 소리없이 스쳐간 바람이었으리라. 연꽃은 1000년을 흙속에 씨앗을 묻어두는데, 아직 피어나지 않는 연꽃의 씨앗도 있다고 한다. 그리움 가슴에 묻어두고 하얀 소복한 여인처럼 피어난 천년의 인연처럼,이밤 연꽃은 진흙속에서 핀다.
연꽃은 잠시 세상에 모습을 보이기위해 얼마나 많은 밤과 낮을 흙속에 묻혀 고뇌했을까? 꽃잎에 흐르는 물한방울도 소유하지 않고 다시 떠나보내는 비움의 아름다움, 그 연꽃을 키운것은 화려한 옷도 아니요, 부귀영화도 아니었다. 단순함의 진리, 연꽃은 진흙속에서 피기 때문이다. 연꽃에는 천년의 기다림, 인연의 그리움이 묻어있다.
모네는 그의 그림속에 왜 동양의 연꽃을 그렸을까? 참 진리는 동과 서를 떠나서 깊디깊은 한줄기 인연의 젖줄 물고 사랑으로 태어난다. 모네는 어느날 자살하러 물속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눈이 띤 하얀 수련 한송이, 그 청초한 모습에 모네는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냈다고 한다.
인연, 우리는 인연의 젖줄로 만나고 헤어진다. 인연이 아닌 것은 우연이라한다. 인연처럼 만나진 사람은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다. 먼 세월의 뒤안길에도 그리움으로 가슴이 붉어지는 첫사랑이 아름다운 것도, 함께하지 않아도 그리움의 젖줄이 가슴에 남아있는 인연으로 피어난 한송이 연꽃처럼 가슴에 묻어둔 생명의 젖줄이 흐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을 하지 않음보다 아름다움이니….” 천년을 진흙속에 묻어둔 연꽃이 피는 모네의 수련을 바라보면서, 나는 가끔 그리운 사람이 있다. 내 영혼이 목마를 때 내 마음에 찿아온 사람은 영원히 그리운 사람이다. 바로 몇년전 타계하신 법정 스님이다. 종교를 떠나서 산골 오두막에서 산새들 모아놓고 휘바람 불며 산죽꽃 피고지는 강원도 산골에 마음 담그신 자연인 법정 스님이 그립다.
“공산무인,수류화개.” ‘빈산에 사람없고, 물 흐르고 꽃이 핀다’는 뜻이다. 사람의 생각과 욕심이 사라진 맑은 선의 높은 경지를 뜻한다. 그 맑고 단순함이 청정의 빛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살다가면 돌아서는 길에 잊혀진 서글픔,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진정 그리운 사람이다.
빈 산골 오두막에 산새들이, 들꽃들이 스님의 휘파람 소리를 얼마나 그리워하겠는가. 사람에겐 빈손은 서러움인데, 깊은 산 홀로 핀 수련과 산새들은 왜 그리 아름다운가. 홀로 다녀간 빈손의 바람이 꽃잎을 새기는 햇살의 화끈한 천년의 사랑, 연꽃은 빈손이라 더 아름다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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