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초봄 멋쟁이,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가 반갑다
나뭇가지를 헤치며 30여분 헤매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귀여운 노루귀 서너 송이가 막 꽃봉오리를 열고 있었다. 연분홍색 화피 사이로 미색의 수술들이 다투듯 나오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솜털이 많이 난 줄기가 약한 바람에도 흔들렸다.
열흘 전쯤 여수 향일암에 갔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꽃 소식을 전하는 곳이다. 야생화 사이트와 SNS 등을 통해 전해오는 남녘 꽃 소식에 안달이 나서 혼자 꽃 마중을 간 것이다.
한 번 보이자 그 주변에 노루귀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두세 송이, 서너 송이씩 묶음으로 또는 줄지어 피어 있다. 꽃이 활짝 피어 진한 노란색 암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도 많다.
노루귀는 잎이 나기 전에 먼저 꽃줄기가 올라와 한 송이씩 하늘을 향해 핀다. 꽃색은 흰색·분홍색·보라색 등이다. 귀여운 이름은 나중에 깔때기처럼 말려서 나오는 잎 모양이 노루의 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싸개잎과 줄기에 솜털이 많이 난 모양도 노루의 귀를 닮았다.
대표적인 초봄 야생화를 세 개만 고르라면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를 꼽겠다. 일찍 피는 것으로 치면 복수초·개불알풀·변산바람꽃·너도바람꽃 등이 있다. 봄기운이 생기자마자 언 땅을 녹이고 꽃대를 올리는 것들이 장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개성 있는 모양과 색깔, 진한 여운까지 감안하면 이 세 가지 꽃에 가장 마음이 간다. 그중에서도 노루귀를 첫째로 꼽는 이유는 셋 중 제일 먼저 피고, 그래서 새봄 첫 꽃 산행의 목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야생화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초봄에 피는 꽃 하면 매화와 벚꽃·개나리·진달래를 생각했다. 그런데 초봄에 산에 가보니 그보다 먼저 피는 꽃들이 있었다. 봄의 전령(傳令)은 복수초·변산바람꽃 등과 함께 노루귀·얼레지 등인 것이다.
얼레지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꽃이다. 야생의 얼레지를 처음 본 것은 2005년 3월이었다. 이름도 특이한 데다 이른 봄에 꽃대가 올라오면서 자주색 꽃잎을 뒤로 확 젖히는 것이 파격적이다. 어느 정도 젖히느냐면 꽃잎이 뒤쪽에서 맞닿을 정도다.
'한국의 야생화' 저자 이유미는 이 모양을 '산골의 수줍은 처녀치고는 파격적인 개방'이라고 했고, '압구정동 지나는 아가씨 같은 꽃' '한쪽 다리를 들고 스파이럴을 선보이는 피겨 선수 같은 꽃'이라는 표현도 있다. 이처럼 꽃잎을 뒤로 젖히는 이유는 벌레들에게 꿀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꽃잎을 뒤로 젖히면 삐죽삐죽한 꿀 안내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얼레지라는 이름은 녹색 이파리 여기저기에 자줏빛 얼룩이 있어서 붙은 것이다.
처녀치마도 초봄에 피지만 노루귀와 얼레지보다는 좀 나중에 피는 꽃이다. 이 꽃도 이름이 특이해서 야생화 공부를 시작할 때 관심이 갔다. 수목원에서만 보다 북한산에 처녀치마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갈 때마다 찾아보았지만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5년 4월 북한산 대남문 근처에서 처녀치마 꽃대가 올라온 것을 포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아직 찬바람이 쌀쌀한 초봄에 수북한 낙엽 사이에 핀 연보라색 처녀치마는 신비로운 빛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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