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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꾼은 싫어요" 꽃들의 絶叫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15. 3. 2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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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사진꾼은 싫어요" 꽃들의 絶叫

 

 

요즘 강원도 동강엔 동강할미꽃이 한창이다. 동강 유역 절벽 바위 틈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이다. 연분홍 꽃잎에 노란 꽃술이 조화를 이룬 것이 너무 예뻐 이맘때 동강은 이 꽃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가끔 서식지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동강할미꽃 묵은잎을 자르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특히 동강할미꽃처럼 암반 지대에 사는 식물은 묵은잎이 그대로 있어야 수분을 유지하고 이른 봄 추위를 견딜 수 있다. 함부로 자르면 자칫 꽃에 치명상을 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 말리면 "왜 간섭이냐?"고 고성(高聲)이 오가는 경우가 생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한 야생화 애호가는 최근 "동강 유역에서 가장 꽃대가 많은 동강할미꽃 포기 묵은잎을 누군가 싹뚝 잘라 놓았더라"고 탄식하며 관련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묵은잎을 자르는 정도는 그나마 양반이라고 해야 할까. 경기도 수리산은 2~3월 변산바람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갔을 때 파란 이끼 위에 변산바람꽃과 노루귀가 나란히 피어 있는 것이 보여 반가운 나머지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꽃이 기운 없이 시들어 보였다. 꽃대를 만져보니 둘 다 스르르 빠져버렸다. 누군가 꽃을 꺾어다 꽂아 놓고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10여년 동안 꽃을 찾아다니며 차마 못 볼 장면을 적지 않게 보았다. 꽃에 물방울이 맺힌 사진을 찍는다고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사람(꽃잎에 물을 뿌리면 수정 전에 꽃잎이 마를 수 있다), 꽃송이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리저리 돌리며 찍는 사람, 주변의 낙엽을 싹 걷어내고 그대로 가는 사람(낙엽은 야생화에게 추위와 건조를 막아주는 이불이나 마찬가지다)…. 약간의 주변 정리는 어쩔 수 없더라도 꽃의 생태에 영향을 주며 '연출 사진'을 찍는 것은 꽃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른 봄에 복수초·노루귀 등이 눈 속에서 핀 설중화(雪中花)를 찍는 것은 많은 '꽃쟁이'들의 로망이다. 그런데 눈을 가져와 뿌리고 찍는 사람, 꽃대를 꺾어 눈 위에 꽂고 찍는 사람 등을 본 적이 있다. 눈을 뿌리면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 식물이 동사할 수도 있다. 심지어 한 야생화 사이트에는 아이스박스까지 가져와 노루귀 주변에 소금과 얼음을 뿌리고 사진을 찍는 장면도 올라와 있다. 이런 연출 사진이 사진전에서 상을 받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꽃쟁이 중에는 "물 뿌린 사진 같은 연출 사진에 상을 주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궁금하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쁜 꽃을 보고 잠시 후 빛이 더 좋아져서 하나 더 찍으려고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누군가 꽃대를 잘라 놓았더라는 목격담은 꽃쟁이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누군가 자기 이후에는 사진을 못 찍게 하려고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경우 "(꽃) 영정 사진을 찍었다"고 말한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사진꾼은 싫어요' 꽃들의 絶叫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누가 이런 짓을 할까. 꽃을 찾아 다니다 보면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꽃이 좋아서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진을 찍다가 꽃도 찍는 사람이다. 각각 이른바 '꽃쟁이'와 '사진꾼'인데, 아무래도 사진을 중시하는 사람 중에 꽃을 아끼기보다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꽃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이쪽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어느 사진작가가 구도 설정을 위해 2011년부터 3년간 대표적인 금강송 군락지인 경북 울진군에서 금강송 20여 그루를 베어낸 것이다. 이 사람은 무단 벌목을 한 다음에 찍은 사진을 여러 사진 전시회에 출품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는 2014년 이 사람을 협회에서 제명했다.

지난해 또는 불과 며칠 전까지 꽃이 분명히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캐간 것이다. 깊은 산에서 자생하는 것을 캐다 심으면 대부분 2~3년 내 죽는다. 환경이 다른 데다가 땅 속 박테리아와 공생하는 경우가 많아서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무분별한 채취로 복주머니난 등 멸종(滅種) 위기에 처한 식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리 조심해도 꽃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꽃을 훼손하는 일임은 부인할 수 없다. 꽃쟁이들의 고민 중 하나다. 한 야생화 애호가는 "내가 꽃을 사랑하는 것이 꽃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며 "찾지 않는 것이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보고 싶어 다시 길을 나서곤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앞으론 강좌를 개설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 야생화 탐사를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자연의 복원력을 믿고 최대한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전국적으로 매화가 만개했고 산수유, 생강나무도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다. 서울에서도 막 개나리,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이런 좋은 계절에 새 봄을 예찬하는 글이 아니라 꽃 훼손을 걱정하는 글을 쓰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희귀한 식물은 수목원에 가야 겨우 볼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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