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사진꾼은 싫어요" 꽃들의 絶叫
요즘 강원도 동강엔 동강할미꽃이 한창이다. 동강 유역 절벽 바위 틈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이다. 연분홍 꽃잎에 노란 꽃술이 조화를 이룬 것이 너무 예뻐 이맘때 동강은 이 꽃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가끔 서식지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동강할미꽃 묵은잎을 자르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특히 동강할미꽃처럼 암반 지대에 사는 식물은 묵은잎이 그대로 있어야 수분을 유지하고 이른 봄 추위를 견딜 수 있다. 함부로 자르면 자칫 꽃에 치명상을 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 말리면 "왜 간섭이냐?"고 고성(高聲)이 오가는 경우가 생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한 야생화 애호가는 최근 "동강 유역에서 가장 꽃대가 많은 동강할미꽃 포기 묵은잎을 누군가 싹뚝 잘라 놓았더라"고 탄식하며 관련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묵은잎을 자르는 정도는 그나마 양반이라고 해야 할까. 경기도 수리산은 2~3월 변산바람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갔을 때 파란 이끼 위에 변산바람꽃과 노루귀가 나란히 피어 있는 것이 보여 반가운 나머지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꽃이 기운 없이 시들어 보였다. 꽃대를 만져보니 둘 다 스르르 빠져버렸다. 누군가 꽃을 꺾어다 꽂아 놓고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10여년 동안 꽃을 찾아다니며 차마 못 볼 장면을 적지 않게 보았다. 꽃에 물방울이 맺힌 사진을 찍는다고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사람(꽃잎에 물을 뿌리면 수정 전에 꽃잎이 마를 수 있다), 꽃송이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리저리 돌리며 찍는 사람, 주변의 낙엽을 싹 걷어내고 그대로 가는 사람(낙엽은 야생화에게 추위와 건조를 막아주는 이불이나 마찬가지다)…. 약간의 주변 정리는 어쩔 수 없더라도 꽃의 생태에 영향을 주며 '연출 사진'을 찍는 것은 꽃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른 봄에 복수초·노루귀 등이 눈 속에서 핀 설중화(雪中花)를 찍는 것은 많은 '꽃쟁이'들의 로망이다. 그런데 눈을 가져와 뿌리고 찍는 사람, 꽃대를 꺾어 눈 위에 꽂고 찍는 사람 등을 본 적이 있다. 눈을 뿌리면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 식물이 동사할 수도 있다. 심지어 한 야생화 사이트에는 아이스박스까지 가져와 노루귀 주변에 소금과 얼음을 뿌리고 사진을 찍는 장면도 올라와 있다. 이런 연출 사진이 사진전에서 상을 받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꽃쟁이 중에는 "물 뿌린 사진 같은 연출 사진에 상을 주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궁금하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쁜 꽃을 보고 잠시 후 빛이 더 좋아져서 하나 더 찍으려고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누군가 꽃대를 잘라 놓았더라는 목격담은 꽃쟁이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누군가 자기 이후에는 사진을 못 찍게 하려고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경우 "(꽃) 영정 사진을 찍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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