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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껴안기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15. 3. 2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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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나무 껴안기

 

 

21일 '세계 산림의 날'을 맞아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1분 이상 나무를 안아주는 '나무 껴안기(tree hug)' 행사가 열렸다. 1226명이 참여해 트리 허그 행사 참가 인원 부문에서 기네스북 기록이었다고 한다. 종전엔 2013년 7월 미국 포틀랜드에서 있었던 트리 허그 행사에 936명이 참여했던 것이 제일 대규모였다.

 

▶트리 허그는 인도의 비폭력 벌목 반대 운동 칩코(Chipko)에서 연유했다. 1973년 3월 23일 인도의 한 테니스 라켓 제조 회사가 인도 북부 고페쉬왈이라는 곳에서 라켓 재료로 쓸 호두나무·물푸레나무를 베려 했다. 그러자 마을 여성들이 나무를 한 그루씩 껴안고 "먼저 나의 등을 도끼로 찍으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칩코'라는 말은 힌두어로 껴안기(hug)를 의미한다고 한다. 벌목꾼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만물상 일러스트

▶세계적 생물학자인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사람 DNA엔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각인돼 있다는 생명선호증(biophilia) 가설을 주장했다. 인류 조상은 수백만년 아프리카 숲에서 살면서 숲, 나무, 녹색에서 안정감과 친밀감을 느끼는 본능을 키워왔다고 했다. 나무에 대한 애정은 본능(本能)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숲에 들어가면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마음 한편엔 시골집에서 살고 싶고, 그게 안 되면 손바닥만 하더라도 내 정원을 가꾸고 싶어하는 욕망을 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나무 숲의 기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조사해 보면 나무가 울창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웃 사이 정이 두텁다고 한다. 숲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의 직무 만족도가 그렇지 않은 직장인보다 높게 나왔다. 병원 환자도 창문을 통해 숲을 볼 수 있어야 회복이 빨랐고, 교도소 죄수들도 나무가 보이는 환경에 수감된 경우가 질병에 덜 걸렸다고 한다. 눈으로 나무를 볼 수 있는 환경이냐 아니냐가 사람 정서를 그만큼 좌우하는 것이다.

 

▶집 마당에서 나무나 화초를 키워온 지 올해로 9년째 된다. 금송 같은 귀한 나무가 원인도 모르게 시름시름 앓다 죽고, 대추나무도 몇 년 열매 따는 재미가 쏠쏠하더니 어느 해인가 빗자루병에 걸려 베어 버려야 했다. 좁은 마당에 욕심만 앞세워 이것저것 다닥다닥 심어놓았으니 쑥쑥 자라는 놈은 별로 없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어도 이맘때면 어김없이 가지마다 새싹 돋는 걸 보면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지금부터 5월까지가 나무한테도, 화초한테도 정말 고마움을 느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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