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변산바람꽃 아씨가 오셨네
15일 전남 여수 향일암 근처. 다래 덩굴을 치우며 자갈밭 샛길을 좀 오르는데 갑자기 앞쪽에 하얀빛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낙엽 사이로 올라온 10㎝ 정도 줄기 끝에 하얀 꽃이 하나씩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떨렸다.
연두색 암술, 연한 보라색 수술에다 초록색 깔때기처럼 생긴 기관이 꽃술 주변을 빙 둘러싼 것이 영락없는 변산바람꽃이었다. 곳곳에 두세 송이씩 널려 있고, 십여 송이가 무더기로 피어 있는 곳도 있었다. 이곳은 육지에선 가장 먼저 변산바람꽃이 피는 곳이다. 올해 꽃다운 꽃과는 첫 만남이라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수줍은 듯 꽃봉오리에 연한 분홍빛이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 꽃을 '변산 아씨'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변산바람꽃은 복수초와 함께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다. 일반인에게는 좀 낯설 수 있지만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익숙한 꽃이다.
이 꽃은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2~3월에 핀다. 그래서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새해 첫 꽃 산행(山行) 대상은 변산바람꽃인 경우가 많다. 변산바람꽃 사진을 올리며 새해 첫 '알현'의 기쁨을 담은 표현을 덧붙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요즘은 이름이 좀 알려지면 야생화도 금방 수목원이나 공원에서 볼 수 있는데 변산바람꽃은 아직도 산에, 그것도 좀 깊은 산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꽃이다.
변산바람꽃은 1993년에야 세상에 알려진 신종(新種)이다. 그 전엔 이 꽃을 보고도 비슷하게 생긴 너도바람꽃의 변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이 꽃에 대한 신비감도 좀 남아 있다. 여기에다 변산바람꽃이라는 낭만적 이름, 우리나라 특산종이라는 사실까지 아우러져 어느새 초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초봄에 반드시 만나고 싶어 하는 '잇(It) 아이템' 야생화다.
더구나 비교적 단순한 다른 바람꽃과 달리 연두색 암술, 연한 보라색 수술, 초록색 깔때기 모양 기관 등 꽃이 볼거리로 가득 차 있다. 꽃 구조도 적당하게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특이하다.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잎 다섯 장은 사실 꽃받침이고, 꽃술 주변을 둘러싼 깔때기 모양 기관 열 개 안팎은 퇴화한 꽃잎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꽃 이름은 전북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해서 붙었다. 옛날엔 식물 조사를 4월 정도에야 시작했기 때문에 2월에 피기 시작해 3월이면 다 져버리는 변산바람꽃을 잘 몰랐다. 그 후 해안가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이달 말이나 3월 초부터는 수리산(경기도 군포) 등 수도권 산에서도 볼 수 있다. 풍도(경기도 안산)에 있는 변산바람꽃은 따로 풍도바람꽃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자라는 지역에 따라 꽃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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