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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안영실의 분당 탄천·정자동 카페거리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4. 7. 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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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조깅·달빛 산책… 도시인 숨쉬게 하는 위로의 길

작가 안영실의 분당 탄천·정자동 카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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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송재우 기자 jaewoo@
▲ 일요일이었던 지난 6월 2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탄천에 산책 나온 한 가족이 돌로 만든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
아침부터 뻐꾸기가 우짖는다. 맑으면서도 힘 있는 소리, 목청이 좋은 놈이다. 신라시대의 드라마틱한 글을 쓰고 있는 내 넋을 빼앗는 목청이니 예사 울음소리가 아니다. 공연히 마음이 흩어져서 나는 트레이닝복을 찾아 입고 모자를 눌러쓴다. 운동화를 신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가지고 갈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모바일 중독자가 되어 간다. 뉴스를 보고 사전을 찾고 이메일을 확인하며, 밴드 소식을 점검하고 친구와 카톡을 한다. 일을 하기 위해서 스스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면서도, 메시지도 카톡도 잠잠할 때면 세상에서 소외된 기분마저 든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놓고 나간다.


탄천(炭川) 산책은 핸드드립 커피를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핸드밀을 꺼내 원두를 천천히 분쇄하고 드리퍼에 옮긴 다음, 조심스럽게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가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일. 그렇게 조용히 나를 위한 커피 한 잔을 만드는 시간. 잡다하고 번거로운 일을 뒤로하고 천천히 내려진 커피를 음미하며 조용히 내게 말을 거는 순간. 탄천 산책 또한 그러하다.

탄천으로 내려가면 자전거도로가 유쾌하게 뻗어 있다. 물길을 따라서 한강까지 이어진 도로이다. 저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간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언젠가 친구가 수원에서부터 탄천을 거쳐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의 취미는 자전거 동호회원들과 함께 여행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이었다. 남편이 죽은 후에 새로 생긴 취미가 그녀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왜 그렇게 힘들게 먼 길을 가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친구는 “너야말로 이상해. 왜 소설 같은 걸 쓴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니? 그렇게 힘들게 살면 늙어. 나처럼 좀 즐겁게 살아 봐”라고 했다.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꿈의 실현을 위해 그녀는 통닭을 튀긴다고 했다. “자전거 바퀴를 아주 빨리 굴리면 바다 위도 갈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바다 위를 자전거로? 차라리 우주여행을 하지 그래!” 이상하게 자전거만 보면 C학점을 받은 체육수업이 생각나서 나는 어깃장을 놓았다. “달에 간 자전거 있잖아. ET 포스터에 말이야.” 그날 어린애처럼 생긋 웃던 친구의 얼굴이 가끔 생각난다. 어느 날 나는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꿈을 꾸었다. 친구의 자전거는 치킨을 싣고 태평양과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히말라야의 산맥을 달리고 있었다. 과연 자전거의 바퀴는 보이지 않게 빨리빨리 돌아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ET와 손가락을 마주 대며 생긋 웃을 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새벽이 먼 깜깜한 절벽,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깊은 솔(Soul)이 몸에 스며들어 천천히 번져 나갔다.

동막천이 탄천의 주류와 합쳐지는 곳은 머내이다. 예전에는 숯가마가 많아서 숯내라고 불렸다. 탄천의 전설 중에는 삼천갑자 동방삭에 관한 이야기가 알려져 있다. 말썽쟁이 동방삭이 옥황상제를 피해 탄천에 내려와 살았는데, 상제가 보낸 사자(使者)의 기지에 속아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이제는 숯가마의 자취는 없고, 머내 주변에도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물 위에 노란색 종이배가 떠서 흘러간다. 꼬맹이들의 장난인가 싶었는데, 주위를 돌아보니 울타리에 노란색 리본과 종이배가 가득 묶여 있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고 기억하고자 달아 놓은 리본들이다. 바람에 노란색 리본들이 제멋대로 펄럭인다. 장난처럼 일어난 사고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리본들이 화를 내고 있는 것만 같다. 나라에 큰 사고가 날 때마다 나는 아직도 삼천갑자 동방삭이 어딘가에 숨어서 해코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이제 동방삭은 거대한 힘과 권력, 비리 등에 숨어 장난을 치고 있을까? 변장술에 능한 동방삭이니 인터넷이나 남몰래 끼리끼리 작당한 음험한 계약 속에 숨어서 분탕질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전 시간이니 정자동 카페거리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나는 가끔 정자동 카페거리에서 브런치를 먹으면서 글을 쓴다. 마음이 흐트러질 때는 오히려 사람들 속에 섞여 일을 하면 능률이 오른다. 불특정 다수의 눈길과 적당한 부산함이 긴장감을 준다. 정자동 카페거리는 신분당선 전철의 개통과 판교 상권으로 인하여 전성기를 잃었다는데, 나로서는 여유로움이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 밤이 되면 이곳은 근처 사무실에서 몰려나온 직장인들과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밤의 정자동은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가 점령하고 있다. 붉은 홍등과 퓨전안주가 전부인데, 특별히 이자카야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퇴근 후에 직장인들은 또 다른 의미의 관계를 맺는다. 저녁과 밤문화를 위한 한국식 선술집의 모델이 개발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두어 시간 자판을 두드리다 다시 탄천으로 나온다. 햇볕이 나른한 시간이지만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새벽부터 탄천은 활기차다. 일찍 일어난 부지런한 사람들이 체조를 하고 조깅을 한다. 탄천길에는 자동차의 폐타이어를 분쇄하여 바닥에 깔아서, 무릎에 큰 자극이 없어 뛰기에도 좋다. 한쪽에서는 기체조에서 나온 강사가 스트레칭을 지도한다. 여름에는 물놀이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으면 즐거워진다. 물이 있고 아이들의 통통 튀는 웃음소리가 있으며 가족들이 모여 있으니 여행이라도 온 듯 들뜬 기분이 내게까지 번져 온다. 물에 젖어 입술이 파란 채로 김밥과 치킨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어쩐지 내게까지 행복이 전해지는 기분이 든다.

탄천은 저녁에 더 운치가 있다. 양쪽 옆으로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어두워져 탄천의 물이 칠흑으로 변하고 가로등들이 불을 밝히면, 먼 여행지를 걷는 기분마저 든다. 물길을 징검다리로 건너다 보면 종일 땡볕에 몸을 달구었던 아파트들이 탄천에서 몸을 씻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이 든 부부들은 조금 떨어져서 천천히 걷고, 젊은 부부들은 팔을 휘두르며 파워워킹을 한다. 며칠째 싸웠던 부부들은 제방에 앉아 미뤄 두었던 화해를 시도하고, 퇴근길로 탄천을 택한 아가씨는 미니스커트에 힐을 신고 걷는다. 농구장에서는 젊은 피들이 땀을 흘리고, 인라인을 신은 꼬마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가씨는 ‘반려견놀이장’에 들여보낸 강아지가 안심이 되지 않아 산책도 못하고 곁에서 서성대고 있다.
글이, 또는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나는 탄천으로 간다. 자연에게 내 몸을 맡긴다. 물에 발을 담그고 덩실거리는 수양버들, 갈대숲에서 비상하는 오리, 징검다리 근처에서 뛰어오르는 커다란 망둥이와 메기를 보며 살아 있음을 즐긴다. 비가 와서 물이 많을 때는 도도하게 물길을 트고, 가물 때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여울목을 돌다 겨우 빠져나와 졸졸 흘러가는 탄천의 물길은 사람살이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자기검열이 심하게 작동한 날이나 누군가와 마음이 부딪혀 힘들어질 때면, 나는 탄천을 바라보며 화해의 손을 내민다. 그 사람 또한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랬으리라 이해해 본다. 모진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 어깨에도 손을 얹으며 열심히 살았으니 괜찮아, 하고 위로한다. 등산이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에 맞서 한판 붙는 일이라면 산책은 위로하고 반성하며 격려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참나와 대면하는 자리이다. 그러기에 탄천길은 나를 향해 쓰는 길이며 또한 나에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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