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칼바람 속 바위 등걸에 앉아
얼어붙은 털모자 땀고드름을 털어낸다
사람 사는 일 오고가다
더러는 모진 사연 만나는 줄이야 이미 알았거늘
새로 또 닥치는 매서운 추위
아무래도 삶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저만치서 내빼는 것 뒤쫓기만 하다가
넘어져서 덜덜 떨고 있는 일 아니더냐
손발은 카니와 코도 귓볼도 내 것 아닌 것 같아
바람막이 바위 아래로 몸을 낮춘다
한결 고즈넉하다
내 여기 이르러 움츠려 있음은
내 여기 이토록 힘겹게 또는 씩씩하게
험한 길 찾아 올라와서 그대 기다리는 일
길이 나를 새롭게 만들어 사랑 맞이하는 일
온 천하 산지사방 어둠 속에서
문득 동쪽 하늘 어슴푸레 긴 가로 금
마침내 한점 붉디붉은 것 틔어 빛나더니
큰 덩어리로 떠올라
내 온몸 달아오름이여
- 천왕봉 일출에 물이 들어 / 이성부 -
*카니와 물론이려니와,라는 뜻을 지닌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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