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닭 대신 갚아주게”
1
2400년 전이었죠.
아테네의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악법도 법이다”가 그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알고 있죠.
실은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직전에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란 말을 남겼습니다.
의술의 신에게 닭을 빚졌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말이네요.
그런데 이 한 마디에서 삶과 죽음을 훌쩍 뛰어넘는
소크라테스의 내공이 엿보입니다.
2
사형 집행일이었죠.
지인들이 동굴 감옥으로 소크라테스를 면회하러 왔습니다.
사람들은 슬픔과 위로의 말을 던졌죠.
소크라테스는 여자들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낸 뒤
남은 이들과 함께 ‘영혼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 여부’에 대해
철학적인 토론을 벌였습니다.
대단하죠. 자신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은 존재하며 불멸한다”고 설했죠.
이를 지켜보던 친구 크리톤이 걱정스럽게 말했죠.
“여보게, 간수가 오늘 만큼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군.
말을 많이 하면 독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거야.
그럼 독배를 두 잔, 세 잔을 마셔야 할 수도 있다네.”
소크라테스가 말했어요.
“걱정하지 말게. 두 잔이고, 세 잔이고 마시면 되지 않나.”
소크라테스는 “될 수 있는 대로 죽음의 상태에 가깝게 살려고
애쓰던 사람이, 막상 죽음에 당면해서 (죽음을) 마다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가?”라고 말하곤 독배를 가져 오라고 했죠.
그가 차분한 표정으로 독약을 마시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렸죠.
소크라테스는 “이상한 사람들 다 보겠네. 이런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아낙네들을 먼저 내보낸 건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감방 안을 걷기 시작했죠.
온몸에 독기운이 퍼지게끔 말입니다.
발과 다리가 무거워지자 소크라테스는 자리에 누웠습니다.
독기운이 심장까지 올라왔죠. 마지막 순간이었죠.
소크라테스는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라고 말한 뒤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병이 나면 약과 의술의 신(아스클레피오스)에게 기도를 했죠.
병이 나으면 감사의 표시로 닭 한 마리를 신전에 바쳤습니다.
이제 감이 오시죠.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유머입니다.
그는 “독약의 약발이 제대로 받는군. 한 잔만 마셔도 충분해.
신에게 고맙다고 전해줘”라며 농담을 던졌던 겁니다.
아 참, 소크라테스가 왜 사형선고를 받았는지 아세요?
‘다른 신을 섬기고, 아테네 청년들을 부패시킨다’는 이유였죠.
모함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지시를 따라 행동했고,
청년들의 영혼을 정화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광장이나 길모퉁이, 시장터에 나가
덕(德)과 우정, 정의와 사랑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청년들의 정신을 깨어나게 했죠.
그가 말한 ‘죽음의 상태에 가까운 삶’은 ‘에고의 죽음’을 말한 겁니다.
그가 귀를 기울였다는 ‘이성의 소리’는 바로 ‘진리의 소리’죠.
그래서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죠.
소크라테스는 이미 삶과 죽음,
그 너머에서 ‘육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유언의 순간에도 유머를 던진 거죠.
- 백성호 기자의 우문현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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