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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발(占發)에도 때가 있다는데…

라이프(life)/명리학

by 굴재사람 2012. 6. 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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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발(占發)에도 때가 있다는데…
[조용헌의 八字기행] 원조 백운학 점발이 5·16 쿠데타 적중





미신(迷信)종사업이라는 업종이 있었다. 미신에 종사하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문화관광부 직업분류표에 보면 사주팔자를 보거나, 점(占)을 치는 사람들은 미신종사업자로 분류됐다. 지금은 이런 표현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점을 치는 사람들도 2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역술가(曆術家)이고, 다른 하나는 무속인이다. 역술가는 책으로 공부해서 팔자를 보는 사람이고, 무속인은 신내림으로 즉, 접신(接神)이 돼 어느 날 팔자를 보는 능력이 갑자기 생긴 사람을 일컫는다.

역술에 관한 책도 다양하고 어렵다. 명리정종(命理正宗), 적천수(滴天髓), 궁통보감(窮通寶鑑), 서자평(徐子平) 등등의 고전을 섭렵해야 한다. 이 고전들을 이해할 뿐 아니라, 머릿속에 일정 부분은 암기해야 한다. 번역된 내용들도 한문투로 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명리학의 고전들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10년 정도는 공부해야 한다. 타고난 소질이 없으면 중도에 포기한다. ‘차라리 고시공부를 하고 말지 이런 거는 못 하겠다’가 된다. 책으로 역술 공부를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암기력, 종합력, 추리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절에서 고시공부 하다가 호기심으로 역술책들을 보고 역술에 조예를 갖게 된 고시생들이 상당수 있다. 법조계에도 검사나 판사들 가운데 역술의 아마추어급 고수들이 있는 것을 봤다.

고시공부 하는 머리로 사주책을 보면 접근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법조계에 있다 보면 널뛰기 팔자들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떼돈을 벌었다가 어느 날 사기죄로 구속되는 경우도 있고, 가지가지 인간 군상들의 인생 널뛰기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다 보니까, 자연히 팔자와 운명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

1970년대에 나온 사주정설(四柱精說)이라는 책은 지금까지도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설명 방식이 군더더기가 없고 간단명료해서 보기 좋기 때문이다. 이 사주정설의 저자는 당시 현직 검사였다고 전해진다. 절에서 고시공부 할 때부터 사주책을 보다가, 검사로 있으면서 현장 경험을 덧붙여서 본인이 아예 사주 고전을 쓰게 된 것이다.

책으로 공부해서 실력을 쌓은 역술가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 전체를 보는 안목은 발달하는데, 미세한 부분을 집어내는 데는 약한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의 사주팔자를 보고 ‘이 사람은 관운이 좋다’ ‘그 관운은 40대 후반부터 오겠다’ ‘처덕이 있다’ ‘물장사를 해서 돈을 벌겠다’ ‘부동산보다는 투기사업을 해야 돈을 번다’ ‘처궁(妻宮·아내가 있는 자리)에 불을 질러서 장가를 3번 가겠다’ 등의 예측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에 내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는 맞추기가 어렵다. 쉽게 말하면 족집게 도사는 어렵다는 말이다. 족집게는 무속인이 많다. 점집을 찾아갔는데, 문지방을 넘어 들어가자마자 ‘당신 승진 문제로 왔구먼, 이번에는 승진 어려워’ 하는 식의 얘기를 던지면 그 사람은 접신된 사람이라고 보면 맞다.

역술가는 이런 식의 얘기를 못 한다. 역술가는 생년월일시를 물어보고, 만세력을 보고 이를 간지로 뽑아보고, 팔자를 훑어본 다음에 그 사람의 성격, 운세 등을 얘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무속인은 생년월일시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얼굴을 보자마자 곧바로 따발총을 갈기듯이 얘기하는 스타일도 있고, 핵심적인 멘트 한마디만 곧바로 날리는 수도 있다.

무속인이라도 차분하게 생년월일시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요소다.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점사(占辭)를 들이대면 고객(내담자)이 얼떨떨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뜸을 들이는 것이다. 뜸을 들여야 고객이 훨씬 자신에 대해 존중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나 할까.

지난해 초 필자는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던 JP(김종필)를 서울 강남의 음식점에서 만나 3시간가량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다. 5·16 전에 만난 도사가 누구였는가가 인터뷰의 화제였다. 5·16 거사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할 날짜가 다가오니까 미래가 궁금하기도 하고,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하니까 용하게 맞춘다는 도사를 만나기로 했다.

거사를 불과 1주일쯤밖에 남겨 놓지 않은 1961년 5월 초쯤이었다고 한다. 죽느냐 사느냐, 성공하면 영웅이고, 실패하면 반역자로 사형당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찾아간 도사는 당시 종로의 여관에 장기간 머물면서 영업을 하던 백운학(白雲鶴)이라는 인물이었다.

김종필 씨 : 당시 군대 동기로 같이 근무하던 석정선(石正善)이라는 친구는 사주팔자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석정선이 서울에서 용하다고 소문났으니까 한번 가보자고 해서 아침 일찍 석정선과 함께 백운학이 있던 여관으로 갔다. 오전 9시 넘어가면 사람이 많이 오니까 사람 오기 전에 가자고 해서 7시쯤 갔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미 몇 명 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방 건너편의 의자에 멀찌감치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백운학이 나를 보더니만 대뜸 “거기 의자에 앉아 있는 손님, 이리 와보셔? 가만있자, 얼굴을 보니 세상을 뒤엎으려고 하네” 하는 게 아닌가.

순간 JP는 엄청 당황했다고 한다. ‘이거 일급 기밀인데, 여러 사람 있는 데서 이런 얘기가 누설되면 큰일 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같이 간 친구 석정선도 5·16 거사 계획을 모르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한다. 이 중요한 비밀을 예상 밖의 상황에서 친구한테 들킨 셈이 됐다.

이어서 백운학이 날린 멘트는 “뒤엎겠어! 성공하겠어”라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들으니까 한편으로는 안심도 됐다고. 백운학을 만나고 나오는 골목길에서 JP는 친구 석정선에게 다짐을 받았다. “너 거사 계획을 들었으니 너도 같이 가담해라?” 하니까, 이 친구는 “나는 처자식이 있어서 못 하겠다” 하고 발을 뺐다.

“그러면 너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누설하면 안 된다. 만약 누설하면 너에게 총을 쏠 수밖에 없다” 하고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그 다짐을 받으며 종로 여관을 나왔던 게 벌써 50년 전이 됐다.

당시 백운학은 50대 중반의 남자였다고 한다. 족집게였다. 상대방을 보자마자 일격에 날리는 점사는 적중률이 90%쯤 됐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백운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도사는 수십 명이 넘는다.

원조 백운학은 대원군의 장자방을 했던 청도 출신 백운학이고, 이 원조 백운학이 죽은 이후로 그 후광을 이용하려고 이름을 도용했던 백운학이 수십 명이다. 1990년대 중반 YS정권 시절에 전국에서 백운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도사를 국정원에서 조사해 보니까 23명이 나왔다고 한다. 1961년 5월에 종로의 어느 여관에서 방을 잡아놓고 영업을 하던 백운학도 그 수많은 백운학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JP를 봐줬던 백운학은 책으로 공부한 역술가가 아니라, 접신이 됐던 무속인 과(科)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접신이 되면 들어온 신이 인공위성처럼 무속인의 귀에다 대고 알려준다. ‘저 사람 뭣 때문에 왔다. 바로 이거다’ 하는 식이다.

하지만 접신과(接神科)는 한계가 있다. 바로 티오(TO)다. 점발(占發)에도 티오가 있는 것이다. 무한정 맞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10년 동안 5만명이 티오일 수 있다. 자동차 살 때의 워런티(보증) 기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거 넘으면 잘 안 맞는다. 배터리는 유한한 법이다. 이 티오 넘어가면 상대방이 잘 안 보인다. 티오 떨어지기 전에 쫓아가서 보는 것이 지혜다.



[조용헌 동양학자·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2.06.18 09:04:05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61호(12.06.13~6.19 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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