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에 서면
- 정지원(1970~ ) -
사는 일이
꿈을 찢기고 지우는 길이었다면
서슴없이 겨울 대숲으로 오라
시퍼런 댓잎 사이로
불어오는 짱짱한 칼바람이
꽛꽛하게 언 몸뚱이를 후려치거든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라
연하고 부드럽게 올라오는 희망으로
제 속의 더러운 욕망을 모두 비워야
단단한 정신으로 울울창창 하늘을 찌르리니
굽고 뒤틀린 삶이 맨 처음
푸르게 꿈꾸며 찾던 길이 아니었다면
그대, 폭설이 세상을 뒤덮는 날
주저 말고 대숲으로 오라
대숲 바람소리가 삽상한 것은 대나무 줄기 안쪽이 텅 비어서다. 세월 흐르고 나이 들면서 차츰 제 안에 든 욕망을 덜어내는 까닭에 대나무는 늙어서도 청춘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 가벼워진 대나무 줄기는 굽지도 뒤틀리지도 않는다. 비운 만큼 가벼워진 몸으로 곧게 선 대나무는 하늘 높이 솟아 오른다. 세월의 흔적이 쌓여 나이테가 들어서야 할 자리에 연하고 부드럽게 피어나는 희망을 담은 까닭이다. 세월에 대한 반역이고 삶을 향한 푸른 꿈이다. 울창한 댓잎 타고 흐르는 바람의 노래가 향긋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이 시인의 다른 노래를 어떤 가수처럼 목울대를 한껏 세우고 불러야 할 칼바람의 계절이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