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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 한 잎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1. 12. 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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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 한 잎

 

                           - 이재윤(1955~ ) -

 



쓸쓸한 것은 가을만이 아니다

제 무게만큼 버티다가

제만큼의 눈에 쌓여

함께 떨어지게 될 모과나무 한 잎

돌계단에 앉아

가을이 쓸쓸하다는 이야기는

아직 이른 답변을 요구한다고

동짓날 모과나무 한 잎은

달빛에 몸 드러내고 있다

다만 견디어 낼 일이다

몸 지운 자리

순 틔우기까지

날짜 넘어가는 건 지나쳐도, 해 길고 짧아지는 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여름부터 조금씩 짧아지던 낮이 그 끝에 닿았다. 동짓날은 짧아지는 낮의 끝이 아니라, 길어지는 낮의 시작이다. 이제부터 앙상한 가지에 새움 돋울 봄으로 천천히 다가서라고 태양이 나무에게 건네는 은밀한 신호다. 움츠러든 가지 위의 순 틔울 자리가 말갛게 부풀어 오른다. 제 몸을 일으키기 위해 하릴없이 견뎌야 하는 생명의 통점이다. 알고 보면 살아간다는 건 한결같이 고통이고 고독이다. 빈 가지에 오도카니 매달린 잎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그렇다. 하얀 겨울에 나무가 홀로 고통스럽게 일으키는 생명의 노래가 차갑지만 한없이 뜨겁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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