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박영석 대장을 이해하는 법
또 하루가 지나갔다. 박영석 대장의 실종 소식에 당혹감, 안타까움, 슬픔을 쓸 생각은 없다.
그와 인연을 맺은 지 14년이 됐다. 그의 원정대에 두 차례 동행하기도 했다. 잠깐 소원한 적은 있었어도 늘 형제처럼 지냈다. 하지만 직업이 기자(記者)라면 마지막까지 그에 대한 의문을 풀고, 본질에 접근하고, 동전의 양면 같은 삶과 죽음의 뜻을 찾는 게 옳다.
이미 몇 번이나 그는 죽음의 아가리에 들어갔다 나왔다. "1993년 에베레스트봉 남서벽 루트로 등반하던 중 자신이 없어 퇴각할 때였어요.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죠.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던 몸이 허공에 멈춰 붕 뜨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로프와 몸을 연결하던 안전벨트가 작동해준 거죠. 그 순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철이 든 후 처음 엉엉 울었습니다."
1995년 다울라기리봉 등반에서는 크레바스에 빠졌다. 둘째 아들의 백일이 막 지났을 때였다. 찰나간에 그동안 살면서 있었던 일들이 뇌리를 스쳐갔다고 한다. 20m쯤 떨어지다가 등에 멘 배낭이 크레바스의 틈에 걸렸다. 또 운 좋게 살아난 것이다.
그는 뇌혈관이 막혀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채 "형, 혈관을 통해 약물을 뇌 속으로 투입시키는데 불이 번쩍번쩍 튀더라"고 했다. 반복된 고산(高山) 등반과 폭음, 압박감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서 얼마 지나면 그는 또 떠났다. 머리가 나쁘거나…. 등반을 떠나는 것은 그의 직업이었다. 인간은 어차피 세상 속에서 사는 대가로 자신의 무엇인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가 죽음에 초연하거나 죽으려고 가는 것은 아니었다. 뻔히 죽을 줄 알면서 뛰어드는 모험이란 세상에 없다.
"등반 시작 전 베이스캠프에서 '라마제(祭)'를 지낼 때면 한 번도 등반 성공을 빈 적이 없어요. 다만 무사히 내려와 다시 제를 올리게 해 달라고만 빕니다."
등반의 끝은 정상에 서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점이 되면 내려올 수 있는 등반을 할 뿐 무모한 등반을 멈춘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멈출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
그는 이미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完登)했다. 통상 이게 정점(頂點)이다. 하지만 그는 혹한의 눈바람 속에서 남·북극점까지 걸어갔다. 소위 '산악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산악인으로서 이보다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그런 뒤에도 베링해협 도보횡단, 태양전기차(車)로 남극횡단 등을 시도했다. 실패가 잦았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에서는 그가 사랑한 후배 산악인들이 숨졌으나 멈추지 않았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 체력이 떨어졌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매달렸다. 그의 기록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진정 아꼈던 선배들은 "영석아, 이제 그만 됐다"며 눈물을 뿌렸다.
그는 멈출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그만하라는 말은 마치 내 삶을, 내 인생을 멈추란 얘기로 들려요. 뭔가 이루면 꽉 찬 느낌이 있어야 만족하는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 이룰 때마다 허탈한 것 같았어요."
성취할 때마다 다음 도전의 강도는 높아진다. 이전보다 더 극적이어야 한다. 이는 자기도 모르게 죽음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짐을 뜻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무엇을 추구한 것일까.
"명예 때문이죠.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의 욕망은 일상의 인간보다 더 세속적이진 않았지만, 덜 세속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세속적인 것이 꼭 덜 순수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끝없는 등반을 통해 더 큰 욕망을 이루려고 했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순수함이 있었다.
그는 아무도 올라가지 않았던 길을 만들려고 했다. 세계등반사에 남는 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길을 냈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그 길을 밟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공에 새긴 혼자만의 길일지 모른다.
이제껏 쌓은 성취만으로도 그는 이 시대의 스타가 되기에 넘쳤다. 그 이름만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주위의 명망가들은 한 줌의 성취만으로 스스로를 얼마나 크게 포장하는가. 이들은 그걸 사다리 삼아 부(富)와 권력으로 재빨리 옮겨 타지 않는가. 그는 왜 험한 산(山)의 길만 알고 이런 세상의 길을 몰랐을까.
"히말라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몇 가닥뿐입니다. 신(神)이 허락해주는 시간에만 우리는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죠. 전율이 돋습니다. 제가 TV에 잘 안 나가고 사람들 모이는 자리에서 강연이라고 떠드는 걸 싫어하는 것은 신에 대한 겸손입니다. 숱한 원정에서 후배들을 죽이고, 신이 살려줘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걸로 팔아먹겠습니까."
그가 안나푸르나봉 남서벽에서 눈사태를 맞고 실종된 지 8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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