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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만으로 소리를 내시오

글모음(writings)/토막이야기

by 굴재사람 2011. 7. 2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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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1 :

일본의 대선지식인 백은(白隱·1685~1768)선사는 눈 밝은 스승을 못 만났죠.

그래서 홀로 공부를 해서 깨쳤습니다.

그는 종횡무진 법문을 하고 다녔죠.

그러다 어떤 거사를 만났습니다.

거사가 말했죠.

“스님이 정말 깨쳤거든, 손 하나만 가지고 소리를 내보시오.”

백은 선사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죠.

어느 날 처마밑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있었죠.

마침 비가 왔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처마 밑 반신은 마르고, 처마 밖의 반신은 젖어 있었죠.

백은선사는 그걸 보고 마침내 크게 깨쳤습니다.

#풍경2 :

백은선사는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죠.

어느 날 근처 마을의 생선가게집 처녀가 임신을 했습니다.

부모는 화가 났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윽박질렀죠.

한참을 망설이던 처녀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죠.

“백은선사입니다.”

처녀의 부모는 깜짝 놀랐죠.

당장 백은선사에게 달려가 따졌죠.

그 말을 들은 선사가 말했습니다.

“그런가.”
결국 태어난 아기는 백은선사에게 맡겨졌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백은선사를 욕했죠.

그는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젖동냥과 탁발로 아기를 잘 키울 뿐이었죠.

그렇게 1년이 지났죠.

참다 못한 처녀가 부모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아기의 아버지는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라고 말이죠.

처녀와 부모는 백은선사에게 달려갔죠.

그리고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아기를 돌려달라”며 손이 발이 되도록‘싹싹’ 빌었죠.

백은선사가 아기를 돌려주며 한마디 했습니다.

“그런가.”

 

- 백성호 기자의 우문현답 -

 

*비에 젖은 몸과 비에 젖지 않은 몸을 보면서 말이죠. 그는 뭘 봤을까요. 그렇습니다. ‘둘이 아님’을 본 거죠. 축축한 몸과 바싹 마른 몸이 한 몸임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임을 깨쳤겠죠. 세상의 모든 형상과 그 아래 깔린 공(空)이 둘이 아님을 깨쳤겠죠.
백은선사는 그렇게 세상과 한 몸이 된 겁니다. ‘나’와 ‘남’의 경계가 사라졌으니까요. 그러니 생선가게 처녀의 부모가 아기를 데려왔을 때 고개를 끄덕인 거죠. 또 아기를 다시 데려갈 때도 고개를 끄덕인 겁니다. 그 엄청난 끄덕임의 힘, 그게 바로 깨달음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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