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1:
당나라 때 보화(普化) 스님이 신도들에게 말했죠.
“누가 내게 옷 한 벌 시주하시오.”
그러자 신도들은 너나 없이 좋은 천으로 짠 옷을 가져왔습니다.
며칠 후 법당 구석에는 옷이 수북이 쌓였죠.
그런데 보화 스님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내게 이런 옷은 필요가 없다. 다시 가져가라고 해라.”
그리고 벽을 향해 돌아앉았습니다.
소문이 퍼졌죠.
이 얘길 들은 임제(臨濟) 선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제자에게 일렀죠.
“마을 목수에게 가서 관(棺)을 하나 짜도록 해라.”
며칠 후 임제 선사는 그 관을 보화 스님께 가져 갔죠.
그리고 말했습니다.
“자, 그대를 위해 새 옷을 한 벌 마련했소이다.”
그 말을 듣고 보화 스님은 “임제가 내 마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 풍경2:
경허 선사에겐 제자가 셋 있었죠.
수월과 혜월, 만공이었죠.
어느날 수월이 숭늉 그릇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공에게 물었죠.
“여보게, 만공. 이것을 숭늉 그릇이라고도 하지 말고,
숭늉 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고 한마디로 똑바로 일러보소.”
이 말을 들은 만공 스님은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수월 선사의 손에 있던 그릇을 낚아채 법당 밖에다 던져버렸습니다.
그걸 본 수월 선사는 “잘혔어, 참 잘혔어!”라고 했습니다.
-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
*수행자들은 그렇게 묻습니다. 만공 스님도 그랬겠죠. 수도 없이 물었겠죠. 눈에 보이는 그릇, 손에 만져지는 그릇, 숭늉을 담을 수 있는 그릇. 너는 분명한 그릇인데, 그 ‘그릇’ 이전에 너는 누구였나. 그걸 묻고, 묻고, 또 물었겠죠. 왜 그랬을까요. 눈에 보이는 형상, 손에 만져지는 형상, 감각으로 느껴지는 형상, 그 너머를 보기 위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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