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염증·항산화에 효과, 숲은 자연 건강센터
해 뜨기 전 이른 아침, 산 정상에서 첼리스트 요요마의 연주곡을 듣는 사람이 있다. 주말에는 산을 타며 느림의 미학을 배우지만 주중에는 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갤 정도로 정신없이 지내는 주인공. 그는 위암 수술 명의로 알려진 한양대병원 암센터 권성준(56·외과) 소장이다.
권 소장은 21년차 등산 베테랑이다. 시간이 나면 외국까지 나가서 산을 탄다. 일본 시코쿠의 이시지쓰산, 중국의 황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도 다녀왔다.
권 소장은 직업 특성 때문에 산을 타기 시작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10시간 이상 쉴 수 없을 때도 많았다. 체력 유지를 위한 운동으로 등산을 선택했던 것.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산 정상까지 오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권 소장은 “결국 산이 담배도 끊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왜 등산을 즐기나.
“느림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성격 급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등산을 하면서 많이 느긋해졌다. 느긋함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이제는 조그마한 풀잎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풀과 대화하며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산에서 배웠다.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도 네팔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미스타리(천천히)’다. 물론 다양한 직종과 연령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등산이 가지고 있는 큰 매력이다.”
-산에 가면 꼭 음악을 듣는 이유는.
“산속의 푸르름과 선율의 흐느낌이 어우러지는 것이 너무 좋다. 특히 인간 목소리와 가장 가깝다는 첼로 음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등산과 음악 듣기를 동시에 하면 시너지 효과 때문에 스트레스가 쉽게 풀린다.”
-가장 좋아하는 산을 꼽는다면.
“웅장한 산보다는 작고 예쁜 산이 좋다. 그래서 지리산보다는 설악산·덕유산을 좋아한다. 설악산만 하더라도 걷다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자주 펼쳐진다. 이런 풍경은 걸으면서 음을 읊조리게 만들어 준다. 웅장한 산은 오케스트라 전체를, 아기자기한 산은 각각의 악기 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다.”
-한 번 가 본 산을 다시 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같은 산이라도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기분 상태에 따라 음악이 다르게 들리듯 산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느낌도 다르다.”
권성준 소장은 환자들에게도 등산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등산은 땀을 흘리면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환자들의 떨어진 식욕을 확 올릴 수 있다. 도시락을 싸서 산을 오르기 때문에 과식을 피하면서 식사를 천천히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권 소장은 “위암 치료를 받았지만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음식을 빨리, 많이 먹는 버릇이 있다”며 “등산을 하면 이런 고민이 해결된다”고 말했다. 오이 하나를 먹더라도 경치를 보면서 천천히 상대방과 대화하면서 먹기 때문에 적당한 속도로 먹게 된다는 설명이다.
-등산이 암 환자들에게 주는 이점은.
“산속 숲은 자연적인 건강센터다. 숲에 있는 나무는 항염증·항산화 효과가 있는 ‘피톤치드’를 내뿜는다. 맑은 공기를 맡을 수 있어 심폐 기능도 향상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듣는 계곡물·새소리는 뇌에 휴식을 제공한다. 이런 점은 환자의 면역력을 좋게 만들어 치료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위암 환자가 등산을 할 때 주의할 점은.
“특별한 것은 없다. 환자들 중 도시락에 어떤 음식을 싸서 가면 좋을지 문의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느 하나에 편중되지 않게 음식을 준비하면 된다. 모든 영양소를 균형 있게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빠른 회복의 지름길이다. 단 지나치게 매운 음식처럼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딱딱한 음식보다는 부드러운 음식을 권한다.”
-빨리 회복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는 환자에게 해줄 조언은.
“예전에 전혀 운동하지 않았던 사람이 회복하기 위해 갑자기 무리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하면 스트레스도 엄청나게 받는다. 따라서 등산을 할 때 빨리 정상을 찍고 오겠다는 생각보다는 주변 경치를 보면서 여유롭게 운동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1시간 더 빨리 다녀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환자들과 함께 등산할 계획은 없는가.
“없다. 등산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과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등산을 가면 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의사와 환자 관계라는 틀에 갇혀 편한 마음으로 등산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환자들에게도 가장 편한 사람과 함께 모든 것을 다 버리는 마음으로 등산을 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권병준 기자 ri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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