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 하회마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73번째 생일상을 한국의 선비마을 안동 하회에서 받았다. 여왕은 류성룡 종택(宗宅)인 충효당 안방으로 안내를 받고 신을 신은 채 마루에 올라섰다. 영국 왕실에선 남 앞에 맨발을 보이는 게 알몸 보이는 것과 같은 금기다. 그러나 옆에서 "한국 관습과 예절로는 방에 들 때 신을 벗는다"고 하자 여왕은 선뜻 신발을 벗었다. 공개된 자리에선 처음 드러난 '여왕의 맨발'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1981년 경주 양동마을과 안동 하회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수백년 전 생활양식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지금의 양동마을은 조선 초 월성손씨 손소(孫昭)가 장가왔다 재산을 물려받고 눌러앉으면서 생겨났다. 그 뒤 여강이씨 이번(李蕃)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와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두 집안에서 낸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다. 그래서 외손(外孫)이 복받은 마을로 통한다.
▶마을 중심에 있는 월성손씨 종가는 '하루에 참을 인(忍) 자를 100번씩 쓴다'는 뜻에서 서백당(書百堂)이다. 이 건물 한쪽에 아기를 받는 산실(産室)이 있다. 두 집안이 자랑하는 손중돈·이언적이 태어난 곳으로 어진 인물 셋이 난다고 해 삼현지지(三賢之地)라고 불린다. 손씨 집안은 시집간 딸이 해산하러 와도 이곳은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집안에서 세 번째 인물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양동과 하회 마을이 의미 있는 것은 단지 과거 건축물이 잘 보존됐대서가 아니다. 마을을 지켜온 집안이 지금도 그곳에 살며 수백년 된 관혼상제와 세시풍속, 공동체문화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월성손씨 20대 종손 손성훈씨는 부친상 때 어른들이 "서백당 종손은 상례(喪禮)를 지켜야 한다. 3년 동안 술집이나 다방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전한다.
▶두 마을이 엊그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새로 올랐다. 1995년 석굴암·불국사 이후 우리 문화유산으로 열 번째다. 독일 엘베계곡은 유네스코 유산에 올랐다가 다리를 놓은 뒤 자연경관이 망가지고 환경오염을 불러 처음으로 등재가 취소되는 창피를 당했다. 두 마을도 이름값이 더욱 높아지면서 국내외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껏 잘 지켜온 전통문화가 행여 망가지지 않도록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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