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2, 근본 순환의 숫자

라이프(life)/명리학

by 굴재사람 2010. 4. 6. 20:28

본문

12, 근본 순환의 숫자

 

12라는 수는 음양오행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인류 문화사적으로도 그 비중이 엄청나게 크다.

그리스 신화인 올림포스의 신들도 열둘이고, 예수의 제자도 열 두 제자이며, 불교에도 12연기설이 있으며, 우리들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하는 띠도 쥐띠, 소띠, 범띠, 토끼띠, 용띠 등등 열 두 띠로 나눈다. 서양 점성술에서도 황도 12궁을 기준으로 한다. 사물이 모여서 열둘이 되면 서양에서는 다스(dozen)라 한다. 이 모두는 일년이 열 두 달의 순환이라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성문법 사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로마법은 처음에 12표법 또는 12동판법에서 출발하고 있다.

12표법이라 해서 열두 가지 종류의 법률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열둘이라는 숫자는 ‘모든 법률’ 내지는 ‘법 전체’를 뜻한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에게 있어 열둘이라는 숫자는 헤아릴 수 있는 모든 수 전체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는 수 개념이 고도화되기 이전 인류의 수 개념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열둘이라는 숫자가 수의 극한이었을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일년이 열 두 개의 달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고대인들은 수 개념이 대단히 미미했다. 한 개, 두 개, 그리고 세 개만 넘어가면 ‘많다’ 아니면 ‘적다’로만 구분되었지, 가령, 1219와 같은 대단히 복잡한 숫자는 인도에서 시작된 영(zero)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다루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인지가 발달하고, 농경이 발달하면서 계절의 순환을 알아야 했고, 계절의 순환은 일 년의 순환, 즉 열 두 달의 순환을 알아야 했기에, 당시 수 개념이 약했던 사람들에게 열둘이라는 숫자는 궁극적으로 극한의 수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양 있는 지식인 계급이 되어야 열둘이라는 숫자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아주 많음’을 뜻하는 12라는 숫자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유태의 12지파(支派)에서도 같은 뜻이다. 구체적으로 열 두 지파가 아니라, 아주 다양하고 많은 지파가 있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12지파는 나중에 예수의 제자가 열둘이라는 것으로 연결된다. 예수의 제자가 반드시 열둘이 아니지만, 제자가 충분하고 많다는 뜻인 것이다.

그러면 13이라는 숫자가 왜 서양에서는 불길함을 뜻하는 지도 알아보기로 하자. 13이 사실 불길한 숫자, 재수 없는 숫자가 된 것은 기본적으로 역법(曆法)에 그 원인이 있다.

 

신석기 시대 이래, 문명이 고도화되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역법이었다. 계절에 맞추어 농사를 지어야 했으므로 언제 곡물의 씨를 뿌려야 하는가의 문제는 사회의 유지 발전에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그런데 이 계절의 순환, 즉 일 년의 순환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달의 변화이다.

 

달을 기준한다는 것은 음력이다. 그런데 음력은 알다시피 일년이 354일이나 355일로서 지구 공전 주기인 365일에 비해 11일이 모자란다. 그래서 처음에 기점을 잡아도 시일이 지나면 태양의 공전 주기와는 갈수록 커다란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달의 지구 공전으로만 세월의 경과를 확인하는 법을 태음력이라 하는데, 오늘날에도 이슬람권은 여전히 이 태음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금식월인 라마단도 해마다 그 기간이 옮겨지고 있다. 이슬람권은 왜 이토록 불편한 태음력을 사용하는 것일까? 
 

원래 예수가 살았던 중동 지역에는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 있어서 2-3년마다 한 번의 윤달을 두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동아시아권에서 사용하던 태양태음력과 동일한 것이다. 그런 태음태양력에서는 어느 해는 열 두 달이고 어느 해는 열 세 달인 것이다. 바로 여기서 13이라는 숫자가 나타난다.

역법에 정통한 지식인이 아니면 어느 해에 가서 왜 달수가 13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일반인들에게 있어 이 13이라는 숫자는 대단히 성가시고 때로는 불안한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불편은 나중에 불안으로, 불안은 불길로 바뀌어서 13은 금기의 숫자가 된 것이다.


 
아라비아 지역에서는 어느 해를 13개월로 하는 지를 정하는 방법이 대단히 자의적이었고, 특히 그것이 신관(神官)의 손에 지배되어, 종교적.정치적으로 제멋대로 남용되던 폐단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하마드가 폐지하고 순태음력으로 바꾼 것이다. 역법 개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위의 상징이다. 이 이슬람식 태음력의 출발점, 즉 원년은 무하마드가 메카로부터 메디나로 도주한 해로 정하였는데, 이것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서력으로는 A.D 622년이 된다.

 

동시에 이슬람권에서 순태음력을 고집하는 또 다른 그리고 아주 재미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열사의 사막 지대인 아라비아 반도에서 하루의 출발은 해가 뜰 때가 아니라, 달이 뜰 때이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나면 사막 지대는 뜨거워서 거의 활동이 불가능해진다. 낮은 그래서 잠자는 시간이며, 은둔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밤이 되어 달이 뜨면 활동하기가 대단히 좋다. 기온도 내려가 선선할 것이며, 달마저 뜨면 밝아서 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다. 달은 그래서 아랍인들에게 있어 정겨운 동반자인 것이고, 이슬람이 순태음력을 고집하는 이유도 달뜨는 밤이 하루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반면 로마인들은 처음에는 태음력을 사용했지만, 13은 예외적인 그리고 가끔씩 잇는 숫자였기에 궁극의 수는 12였고, 그래서 12표법이라 했던 것이다.

로마인들도 원래 윤달이 들어가는 태음력을 사용했었다.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쳤지만, 개선된 것 역시 일년이 355일, 377일, 355일, 378일로 왔다 갔다 하는 식이라 여전히 불편했다. 이것을 바로잡은 것이 BC 45년, 저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바뀐 율리어스력이다.

우리가 쓰는 양력 내지는 세계 공통력은 이 율리어스력을 다시 한 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개력한 그레고리력이다. 하지만 이 그레고리력 역시 문제점투성이이고 좋은 점이 있다면 전 세계가 공용하고 있다는 점밖에 없다.

 

어떤 문제점이 있냐고?
일례를 든다면 예수 탄신일인 크리스마스는 원래 제정 당시에 동지(冬至)인 12월 22일이던 것이 오늘날에 와서 12월 25일로 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달력을 영어로 calendar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의 ‘선포하다’는 단어인 calendae에서 온 말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제관(祭官)이 초승달을 보고, 뿔피리를 불어 월초(月初)임을 선포하였다고 한다. 이런 연유에서 매월 초하루의 날짜를 calend라고 하였다.

그리스 올림포스 산 정상에 거주하는 신은 모두 해서 열 두 신이다. 그러나 열 두 신으로 한정한 것은 다소 작위적임을 알 수 있다. 제우스 이전의 천지창조 신들도 있고, 그를 이은 거인 신(타이탄)들도 있으며, 열 두 신 이외도 상당히 많은 신들이 있는데, 12신으로 한 것은 열둘이라는 수가 일종의 완전수, ‘모든’ 이란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2신은 모든 신, 만신(萬神)인 것이다.
12신은 만신이라 했으니 12신을 모신 전당은 만신전(pantheon)이 되는 것이다. pan은 ‘모든’이란 뜻이고 theo는 신의 의미라 판테온인 것이다. 로마에 가면 판테온이 있는데, 사실 이 판테온은 로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각지 어디에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절에 가면 본존불 뒤에 있는 탱화 속의 신들도 만신전이고, 법당의 우측 벽에 있는 신중단에도 104위의 화엄성중을 탱화로 모시고 있는데 이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들의 만신전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속에서 무당을 만신이라 하는데, 무당이 영험이 있어 신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12란 숫자는 모든 숫자, 즉 완전수를 의미한다고 했는데, 이 관념은 흘러간 고대의 관념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체화되어 생생하게 살아있다.

1914년에 설립된 미국 연방은행은 12개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의 주가 12개가 아니건만 12개의 연방준비구로 나누어 각 구역마다 하나의 연방준비은행을 설립하여 그곳의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12개 연방준비은행을 통괄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위)를 워싱턴에 두고 있다. 이는 사실상 12명의 현인-의미로는 12신-이 미합중국의 금융기능을 원활하게 유지, 조정한다는 의미이다.

이 12라는 숫자는 현대음악에서도 더욱 더 강조되고 있으니, 바로 쇤베르크의 12음계법으로서 음악의 새로운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한 옥타브의 음역을 12개의 음정으로 구분하여 각 음 사이를 반음 정도의 음정 차이로서 율을 정한 동아시아 고래의 아악(雅樂)과도 상통하는 정신이다.

그리고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설도 원래는 12연기설이 중심이었다.
12연기설이란 사람이 어떤 경로로 무명과 미혹의 세계를 방황하게 되는 가를 12단계로 나누어 그 인과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이는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 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의 단계로 되어있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우주의 근본 순환 주기에 따라 살고 있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어김없이 이 12라는 순환 주기를 따라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12라는 숫자는 우리 생활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고 다시 만날 수 있다. 기본 교육 기간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2년간이고(대학은 선택이다), 하루가 24시간(과거에는 12시진)인 것은 눈에 띄는 사례들일 뿐이다.

가령 당신이 어떤 큰일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기본적으로 열 두 관문을 넘어야 성취를 이루는 법이다. 그 관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두 남녀가 마음이 맞아 결혼을 하려고 해도 열 두 관문을 넘어야 하고,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하려고 해도 열 두 관문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절반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12라는 숫자적 주기 중에서 그 절반에 가면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가령 여섯 관문을 넘었다면 절반의 성공을 이룬 셈이다. 명리학에서 충(衝)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 김태규의 명리학에서 발췌 -

'라이프(life) > 명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양(陰陽)이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  (0) 2010.04.09
60, 세상을 규율하는 숫자   (0) 2010.04.08
인연과 운세의 변화 - 충(衝)  (0) 2010.04.06
庚寅年 國運  (0) 2010.03.29
'春分'의 의미  (0) 2010.03.2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