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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과 술 - 명사들의 산행음주법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09. 12. 2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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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과 술 - 명사들의 산행 음주법

 
“심신의 즐거움, 우정을 위해 딱 한 잔”
거시기 산악회는 예외… 점심자리가 술시음장 방불






등산을 좋아하는 명사들은 어떤 술을 어느 정도 마시고, 어떻게 마실까? 일반인들과 음주 습관에 차이가 있을까, 없을까?

많은 사람들은 산에서 술을 마신다. 정상주, 하산주, 등정주 등 다양한 명분으로 즐긴다. 일반적으로 등산이 술맛을 더욱 당기게 한다고들 말한다. 땀을 흠뻑 뺀 후 마시는 한 잔의 술은 더욱 그런 기분을 고조시켜 주는 듯하다. 우리 선인들의 유산기(遊山記)에도 산에서 술을 한 잔 마시며 자연을 노래하는 모습이 마치 낭만의 극치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산에서 지나치게 술을 마셔 몸을 망치거나 세상을 달리한 사람이 의외로 많다. ‘등산이 체내의 술독을 완전히 없애주겠지’라고 과신한 나머지 폭음을 한 탓이다.

국내 유명 전문의 20인이 말하는 건강 10계명 중 첫 번째가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즉시 해소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적당한 술이다. 술은 두 잔 이하로 하고, 이틀은 쉬어야 한다고 권한다.

술에 의해 손상된 간이 회복되는 시간은 최소 이틀이다. 적당한 술은 친구를 만들어주고,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지만 두 잔 이상의 음주는 뇌세포를 파괴하기도 한다. 또한 간에 기름을 끼게 해서 지방간을 형성, 간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등정주 딱 한 잔은 ‘소셜 드링킹(social drinking)’

실제로 술은 한 잔만 마셔도 혈관이 확장되고 맥박이 빨라진다. 음주 후에 등산을 하면 숨이 차는 이유가 맥박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추운 날씨에 많은 술을 마시면 체온을 더 빨리 빼앗겨 저체온증이 되거나 심하면 동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음은 또한 신체의 균형감각을 잃게 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하산해서 마시는 맥주는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체내의 수분을 더욱 흡수해 갈증을 일으키고 빨리 취하게 만든다. 따라서 의사들은 하산해서 물을 먼저 마셔 갈증을 풀어주고 맥주를 마시라고 권한다.

등산하면서 가장 좋은 음주방법은 정상에 도착해서 막걸리나 어떤 술이든 한 잔 정도 마시라는 것이다. 이는 성취감에 따른 보상과 함께 기분도 상쾌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여러 명이 같이 등산했을 때 한 잔의 술은 친화력을 더욱 발휘하는 소셜 드링킹(social drinking)이다.

박성학 하트스캔 원장은 등산하면서 항상 소형 위스키 한 병을 들고 간다.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응급처치용이다. 위스키는 저체온 증세를 느낄 경우 독주 한 잔을 마시거나 코 밑이나 입술에 살짝만 닿아도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의식을 깨우기도 한다. 또 예기치 못한 외상을 당할 경우 소독제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하산해서도 산행을 마무리하는 간단한 맥주 한 잔으로 끝낸다.

박원순 변호사는 아름다운 가게 직원들과 산행 후 간단한 막걸리 파티로 대화를 나누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시간도 길지 않다. 그는 검사 시절 폭탄주 마시기가 싫어 변호사로 전업했다고 할 정도로 술을 못 마셨고, 몸에 받지도 않았다. 검사 때 폭탄주 두 잔 마시고 완전히 뻗어 자리가 파할 때 겨우 일어나 집에 가곤 했단다. 지금도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서울대 공대 산악부 생활을 했고 “과학자가 안 됐으면 세계적인 등반가가 됐을 것”이라고 하는 조장희 박사는 “술은 백해무익이니 절대로 마시지 말라”고 강조한다. 술은 뇌세포를 파괴하는 주범이며, 머리를 나쁘게 한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지금 등산을 하지 않지만 과거 등산을 자주 할 때도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사회학자 송복 전 교수는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산을 찾는다. 구범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김성우 한국일보 전 주필, 박화진 서울신문 전 논설위원실장 등과 같이 북한산에 주로 오른다. 산악회 이름은 송 교수가 직접 지은 ‘일자패’다.

그는 정년퇴직 전에도 학생들과 같이 산에 오르며 “산은 20대부터 다녀라. 20대가 안 되면 30대부터라도 꼭 다녀라. 40세 넘기 전에는 반드시 산에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온다”고 등산을 강권했다. 그는 등산이 병을 예방해줄 뿐 아니라 창의적 사고에 엄청난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도 술은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다. 산에 갈 때는 도시락을 싸 들고 간다. 정상을 고집하지 않고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깔고 판을 벌인다. 여기서 막걸리나 소주 등 간단한 술 한 잔을 주고받는 것으로 끝낸다. 하산해서도 술판이 연장되지 않는다.



▲ 1 박원순 변호사. 2 송복 전 교수. 3 깐수 정수일 교수와 백낙청 교수,
박석무 이사장(오른쪽부터)이 북한산에서 점심을 들고 있다. 4 조장희 박사.



‘술은 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간다’고 할 정도

반면 이돈명 변호사, 고 박현채 교수, 변형윤 교수, 송건호 전 사장, 이호철 소설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김병오 전 국회의원, 깐수 정수일 교수, 김정남 전 교문수석 등이 속한 ‘거시기산악회’는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다.

이들은 산에 가는 날이 술 마시는 날이다. 산에서의 점심식사 자리도 시음장을 방불케 할 정도다. 소주와 막걸리에 인삼주, 더덕주 등 별의별 술이 반주로 다 나온다.

막걸리도 그냥 막걸리가 아니다. 강화도 막걸리 등 별미만 골라서 가져온다. 1차를 산에서 마치고 하산해서 2차, 3차로 술자리가 이어진다. 고 박현채 교수는 “술은 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간다”고 했을 정도라고 한다. 두주불사(斗酒不辭)에 주종불문(酒種不問)이다.

산이 좋아 찾은 산에서 마음 맞는 사람과 맑은 공기 마시며 마시는 술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마음 맞는 사람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술로서 회포를 푸는 셈이다.

박성학 원장은 “등산과 술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고 보면 된다”며 “등산 후 과음은 오히려 몸에 더 해롭다”고 한두 잔의 술을 권했다.

등산은 건강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한다’고 보면 된다. 그 촉매제는 술이다. 또한 소셜 드링킹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과음은 심신을 피로하게 하는 주범이다. 과음은 간을 갉아먹고, 뇌세포를 파괴한다. 적당한 음주가 필요한 이유다.

소셜 드링킹도 적당한 경우에만 해당되고, 그 이상 넘어가면 고성이 오가거나 싸움으로 연결되는 등 문제점이 바로 노출된다는 게 명사들의 말이다. 이번 연말 산에 올라가서나 하산해서나 과음은 금하도록 하자.


[월간 산 482호 / 2009.12]
글 : 박정원 차장 jung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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