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관광명품으로 만드는 길
제주도에 대박이 터졌다. 그토록 염원하던 연간 관광객 600만명을 11월에 돌파한 데 이어 12월에도 국내외 여행객의 발길이 멈추지 않고 있다. 항공편 예약이 어려운가 하면 호텔과 펜션도 만원사례다. 제주 롯데와 제주 신라 호텔의 경우 11월 객실 점유율은 93~94%에 달했고 12월에도 90%에 이른다는 마당이다.
제주도가 이처럼 계절 없이 북적거리게 된 가장 큰 이유로는 올 들어 불어닥친 '올레길 걷기'열풍이 꼽힌다. 금융 위기와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줄어든 덕도 있지만 그보다 올레 바람이 더 크다는 것이다.
올레는 집에서 마을까지 나가는 골목길을 뜻한다. 2007년 9월 서귀포시 말미오름에서 섭지코지로 가는 제1코스가 개방됐고 2년 동안 15코스까지 열렸다.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너도나도 가보겠다고 나선 데다 재방문자까지 늘면서 제주관광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가 됐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몇몇 알려진 장소만 다니던 탓에 한두 번 왔다 가면 그만이라던 제주도를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어디든 사람이 증가하면 즐거워지는 곳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올레길 덕에 항공사와 숙박업소는 물론 도내 음식점과 택시 · 버스 등 운송업체도 호황을 누릴 게 틀림없다. 뿐이랴.전국 곳곳에 올레길이 생기면서 등산복과 배낭,운동화 파는 곳도 덩달아 웃고 있을 것이다. 테마가 있는 관광은 이렇게 지역경제는 물론 관련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한때 동남아에 들불처럼 번졌던 한류 열풍이 곧 시들해진 것처럼 모든 붐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올레길 바람이 영원할 줄 알고 이것저것 투자한 지방자치단체나 지역민 모두 실망을 넘어 경제적 손실에 한숨 짓게 될지도 모른다. 뭐든 시작은 우연일 수 있지만 그걸 지속시키는 건 올바른 방향과 꾸준한 노력이다. 제주도 올레길 걷기를 국내는 물론 세계적 관광명품으로 만드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상 모든 명품은 고객의 감동에서 비롯되고 감동은 섬세함과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올레길 관리의 기본 역시 걷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데서 출발해야 하고 그러자면 다른 곳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제주도 올레의 청정한 아름다움과 주변의 빈 땅이 주는 여유를 훼손시키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건 시설이 아니라 운영이다.
일단 같은 코스라도 오전 오후 진행방향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7코스만 해도 현재는 출발시간대에 상관없이 한쪽 방향으로만 걷도록 돼 있다. 오전 출발팀은 걷는 내내 해를 마주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처 모자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얼굴 가득 쏟아지는 태양볕을 피할 수 없어 고생이 막심하다.
같은 코스라도 해를 등지고 걷도록 오전오후 진행방향을 바꿔주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둘째,인위적인 시설은 최소화하되 돌담을 비롯한 기존 시설엔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 뭐든 인식해야 존재하는 만큼 일상적인 것에도 의미를 부여해야 기억에 남는다.
여름철 샤워장,빨래터,생선 다듬는 곳 등 일상 시설도 외부인에겐 궁금할 수 있는 만큼 작게라도 알려주면 도움이 된다. 셋째,길가는 물론 바위 틈틈이 떨어진 깡통과 페트병 등을 깨끗이 치워야 한다. 제주의 가장 큰 매력은 청정섬이란 이미지다. 티끌 하나도 없게 만들어야 마땅하다.
넷째,정확한 일기 예보와 그에 따른 옷차림 안내다. 제주도 날씨는 변덕스럽다. 일기예보와 실제 날씨는 거꾸로라는 말까지 있다. 예상보다 추운 것도 문제지만 더운 것도 문제다. 같은 온도라도 바람에 따라 체감 온도는 전혀 다르다. 당일은 물론 시간대별 날씨와 그에 맞는 복장을 꼼꼼하게 일러줘야 한다. 감동은 시멘트길을 흙길로 바꾸는 것 같은 공사에서 오는 게 아니고 섬세한 마음씀에서 우러난다.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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