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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벽( 煙霞癖 )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09. 12. 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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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살롱] 연하벽(煙霞癖 )

 

 

사는 것이 공허하다고 느껴질 때는 산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산에 가면 무엇이 있는가. 연하(煙霞)가 있다. 연기와 노을. 한국의 산 아래로는 골짜기가 있기 마련이고, 그 골짜기에는 계곡물이 흐르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느긋하게 피어 오른다. 8부 능선쯤에 올라가서 골짜기마다 피어 오르는 안개가 솜사탕처럼 산봉우리들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가”에 대한 물음이 절로 없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녁노을도 있다. 산모퉁이에 서서 들판 저 너머로 붉게 물들어 있는 석양(夕陽)을 바라보면 형언할 수 없는 충만감이 생긴다.

 

이러한 광경을 과도하게 좋아하다 보면 세속을 떠나서 입산(入山)하게 된다. 입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하벽(煙霞癖)’이 있는 사람들이다. ‘연하벽’ 환자(?)들이 좋아하는 전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산이 지리산이다. 1년 사계절 중에서도 칠월 백중(百中)이 지나고 4~5일쯤 되는 시점이 지리산의 운무(雲霧)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한다. 지리산의 3대 명당 가운데 하나인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수십 년간 머문 노(老)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절기(節氣) 중에서 백중이 지나면 지리산 기온은 바뀌기 시작한다. 더운 공기가 물러가고 서서히 찬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평지에서는 이러한 기온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지만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는 그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기 마련이다. 상무주암은 1000m가 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그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지점이다. 더운 기운과 찬 기운이 교차되면서 안개가 발생한다. 시간대는 저녁 무렵부터이다. 밤 9~10시 무렵이 되면 자욱한 안개가 지리산 골짜기 일대를 감싸 안는다.


지리산 정령치(鄭嶺峙·1172m)도 이러한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지점이다. 중간중간에 높은 봉우리들의 꼭대기만 보이고, 발 밑으로는 운해(雲海)가 자욱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란 이런 광경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운해 위로는 달이 둥실 떠 있다. 칠월 보름이 지난 지 4~5일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달도 충분히 밝다. 인간 세상에 나와서 이런 장관을 보아야만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정령치에 갔다 왔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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