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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날 채비를 하라

라이프(life)/명리학

by 굴재사람 2009. 4. 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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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얘기를 해야겠다, 우리 국운(國運)의 겨울에 대해서 말이다.

이번에 오는 겨울은 2009년에 시작되어 2024년까지 장장 15년간 이어지는 겨울이기에 그 기간 동안 추위에 얼어 죽지 않도록 월동(越冬) 준비를 하시라는 뜻에서 이 글을 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운세는 지난 1964, 갑진(甲辰)년에 봄을 맞이해서 15년의 간격으로 1979, 기미(己未)년부터 여름으로 들어섰고, 1994, 갑술(甲戌)년부터 가을로 들어섰다. 우리의 가을은 그로부터 2008년까지이고 그 이후는 겨울이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60년 한 갑자의 춘하추동(春夏秋冬)이 한 바퀴 돌아가는 것이다.

이야기를 지난 1994년 갑술년, 1년으로 치면 가을로 들어서는 입추(立秋)무렵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그 무렵 우리의 국력과 경제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1996년에는 선진국 클럽이라 일컫는 OECD에 가입했고 국민소득도 1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해마다 8월 23일 경이면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처서(處暑)가 오는데 우리 국운으로 치면 1997년 무렵이다. 이 때 닥친 어려움이 바로 외환위기였으니 이는 마치 여름 더위가 한풀 죽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우리 국운의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을이란 그 기운이 사물을 말리고 응축시키는 것을 본질로 한다.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 하는 것도 봄부터 펼쳐온 그간의 노력을 이제는 더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좁혀서 그 성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중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시켜왔던 부실한 재벌들은 IMF 사태를 계기로 대거 정리되었으니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 그룹이었다.

이제 지난 1967, 정미(丁未)년부터 시작된 우리의 재벌들은 60년의 절반인 30년만에 만나기 마련인 반대 기운이 닥치자 수명을 다한 것이다. 특히 대우 그룹이 등장한 것이 정확하게 1967년이었으니 1997년이 지나자 사라진 대표적인 기업 그룹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을 중에서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추분(秋分)은 2001, 신사(辛巳)년이었다. 추분에는 여름내 가꿔온 가을 수확이 시작된다. 차별화된 부자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반면에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갔다.

양극(兩極)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수확의 계절이라 거두는 내용에 따라 빈부 차이가 현격히 드러나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타워팰리스와 같은 부유층을 위한 차별적인 주거공간이 생겨났고, 서민들은 카드채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양극화의 진행은 30-40대의 연령층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에 대한 불만, 주로 이미 잔뜩 가진 자들에 대한 불만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우리 유권자의 중핵을 이루는 그들은 기득권층을 정리하고 개혁을 이루겠다는 노무현 후보의 호소에 표를 던졌다. 반면 귀족 이미지의 이회창 후보는 그런 대중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것이 2002년 노무현 정부의 탄생을 만들어낸 배경이라 본다.

말이 좋아 결실의 계절이지, 추수철은 저마다의 욕심이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때이다. 내가 거두는 수확도 중요하지만, 이웃과 건너 마을의 소출(所出)에 관한 소식에 절로 귀가 쫑긋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이다. 그래서 이 무렵 우리는 소출을 놓고 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력 10월초에 맞이하는 늦가을인 한로(寒露)가 2004년부터 시작되었고 서서히 가을의 열기가 식어들면서 카드채 사건이 불거지고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았다. 기업들도 가을 경영, 거두어서 곳간에 쌓기만 하는 경영에 몰두했고 따라서 일자리도 늘어날 수가 없었다. 대졸 백수 시대가 현실화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기존의 부도덕한 권력을 청산하고 공정한 룰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진력을 다했지만 지지도는 낮아져만 갔다. 그 개혁과 기득권 청산이 이미 가진 자의 부(富)를 앗아낼 수는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지지도는 싸늘하게 식어들었다.

그리고 작년 2006 병술(丙戌)년으로서 우리 국운(國運)상으로 들판에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찾아왔다. 상강 무렵이 되면 가을 수확은 완전히 마무리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출(所出)의 양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지닌 것은 초라하기만 한데, 마침 더 열 받게 하는 일이 터졌다. 건교부 장관의 신도시 계획 발표를 비웃기라도 하듯, 집값이 일제히 오른다는 소식이었다. 불만이 서슴없이 터져 나왔다. 이미 빈부 차이가 심한 마당에 부동산 투기로 돈이 있는 놈들은 더 벌어들일 것이라 생각하니 불안감과 불만은 극에 달했다.

안 그래도 살기 어려운 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에서 일하는 기업의 노조하는 사람들이 허구한 날 파업만 일삼는다 하니 더욱 분통이 터졌다. 여기에 집값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겠다던 그간의 대통령 말은 더 없는 빌미가 되었다. 대중들은 분노했다.

게다가 오른쪽의 사람들은 기업 규제를 하니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왼쪽에서는 당초의 기대를 배신하고 더욱 더 시장 권력에게만 길을 맡긴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로서 노무현 정부는 양쪽에서의 공격으로 사실상 협살(挾殺)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열린우리당도 사분오열되기 시작했다. 좀 더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무리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 무리, 그나마 당을 지켜야 한다는 무리와 여기 있다가는 차기 총선에서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무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기존의 전통 지지표가 있는 호남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무리, 그래도 당당하게 명분을 가져야 한다는 무리, 그러니 지금 열린우리당은 정말 몇 갈래인지조차 셀 수 없을 정도로 흩어져가고 있다.

그런데 작년 병술(丙戌)년은 눈앞의 일보다 더 큰 변화를 확인했던 해였다. 30년 전인 1976년 병진(丙辰)년부터 본격화된 거대한 흐름이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일인가 하니, 1976년 3.1 절을 기해 당시 김대중 씨와 상당 수 민주인사들이 명동성당에서 민주화구국선언문을 발표한 일이다. 우리의 민주화 흐름이 본격적인 세력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용기 있는 비호 아래 명동성당은 그 사건 이후, 한국 민주화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금 명동성당은 시위의 장소로 쓰이는 것을 더 이상 반기지 않는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이제 한국의 민주화는 1976년으로부터 30년 만에 그 기본적인 골격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흐름은 이처럼 30년을 가면 조정이나 소강상태로 들어가니 이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따라서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저항운동 방식의 민주화는 그 역사적 소임을 마쳤다는 뜻이다.

질적 차원에서의 민주화는 내용을 전달하기도 어렵고, 같은 진영 안에서도 의견의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 결정적인 것은 질적 내용을 담은 메시지를 대중에게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 한 번의 길고 긴 역사의 사건들을 거친 후에야 고양될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오고 있다. 겨울의 문턱인 입동(立冬)은 2009년에 시작된다. 이제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입동 무렵이면 나무들은 마른 잎사귀를 모두 떨어낸다. 그렇기에 그 때가 되면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본격적인 구조조정과 감원의 바람이 불 것이다. 동시에 그 겨울은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함께 찾아들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장차 몇 년간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사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부동산 버블이 안정세로 관리되길 바라지만, 관리 가능한 버블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집값은 지난 1976년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던 시기부터 등장한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 30년간 상승세를 이어왔고 지금 양극화가 진행되는 이 마당에 더 이상 유지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겨울의 본격 한파(寒波)는 11월 23일 경의 소설(小雪)부터 찾아오는데 이는 2011년에 해당된다.

그 때가 되어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서 우리 수출경쟁력의 둔화 내지는 미국 경제의 조정 본격화로 인한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의 진행이다. 우리의 수출이 지난 1986년부터 절정에 이르렀듯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6 년 무렵이면 그 반대의 현상을 필연적으로 맞이할 것이니 그 때가 동지(冬至)이다.

대단히 우울한 얘기이다. 그래서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이 얘기를 글로 옮길지 여부를 놓고 무던히도 망설여왔다. 아울러 필자의 예측이 틀렸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작년으로서 이미 정해진 길임을 확인했다. 춘하추동의 순환을 어이 막으랴. 그래서 고심(苦心)끝에 이 글을 쓰는 것이 필자의 도리라 판단되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지만, 15 년간의 겨울이 어디 녹녹한 성질의 것이겠는가!

인연이 되어 이 글을 대하게 된 독자께서는 이제부터라도 한 푼을 아껴서 든든한 겨울 채비에 소홀함이 없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김태규 명리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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