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이란 것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볼 필요가 없다.
궁합(宮合)이란 부부궁이 서로 합하느냐, 즉 서로 맞느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남녀의 자유 교제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는 당연히 궁합이 중요했다.
궁합을 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간에 이끌림이 있느냐를 보는 것인데,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태어난 날의 오행으로 합을 이루느냐를 보는 방식이다. 가령 어떤 총각의 태어난 날이 무자(戊子)이고 처녀는 계축(癸丑)이라면 아주 좋은 궁합이 된다. 천간의 무(戊)와 계(癸)가 합(合)을 이루고 지지의 자(子)와 축(丑)이 합을 이루니 찰떡궁합이 된다. 이 때 천간의 글자간에만 합을 이뤄도 괜찮은 궁합이고 지지의 글자까지 합을 이루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합이 된다. 사실 이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궁합 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궁합을 보지 않아도 오늘날 사귀고 있는 남녀들의 사주를 보면 저절로 그렇게 궁합이 맞는 사람들끼리 사귀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남녀가 사귈 수 있는 시대에는 따라서 궁합을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성립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유난히 끌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이럴 경우 두 사람의 사주를 보면 궁합이 맞는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궁합이 맞긴 하지만 어느 정도로 잘 맞느냐가 중요해진다.
이를 두 사람의 사주로 판단하려면 앞서 말한 일간과 일지의 합을 보는 것은 물론 두 사람의 성격과 기호, 앞으로의 운명을 놓고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이 상당 기간 이미 잘 사귀고 있고 그 결과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면 고명한 사주 선생을 찾아가 물어볼 필요가 아예 없는 것이다.
요즘엔 난데없이 속 궁합이 중요하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속 궁합이란 말은 궁합 보는 법 중에서 두 사람의 일간(日干)이 아니라 일지(日支)를 맞추어 본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다.
명리학에서는 천간의 글자들을 그 사람의 외표(外表)라 하고, 밑에 있는 글자들을 내리(內裏)라 해서 안과 밖을 구분하는데 가령 무자(戊子)일의 남자와 계축(癸丑)일의 여자라면 태어난 날의 지지(地支)에 있는 자와 축의 관계를 본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속이니 속 궁합이라 하는 말인데 최근에는 그것을 두 사람의 성적인 이끌림으로 해석하면서 마치 겉 궁합이 좋아도 속 궁합이 나쁘면 부부의 성 관계에 문제가 있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 경향이 많다.
결혼해서 잘 살고 못 살고는 상대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달려 있다. 결혼이란 대개가 20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하게 되는데, 이미 그 나이면 그 사람의 인성이나 성향, 가치관, 취미 등등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결혼 상대방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자연히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다.
용모를 중시하는 남자는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미모의 여성을 택할 것이고, 돈을 중시한다면 돈에 비중을 둘 것이다. 적극적인 성격의 상대를 좋아한다면 적극적인 상대를, 조용한 성격을 좋아한다면 그런 사람을, 이런 식으로 오늘날처럼 개방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만날 확률은 이미 충분하다. 늦도록 결혼하지 않는 것도 사실은 그 사람의 성격이기도 하며 운의 영향이기도 하다. 모두가 선택이다.
여기서 운명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명리학에서 보는 운명이란 이미 주어져 있는 것과 선택의 조합이다. 운명이란 따라서 절대적인 주어진 프로그램(pre-defined program)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처한 환경에서 선택을 해 가는 것, 그것이 운명이다. 다만 명리를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알아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제 뜻대로 가는 것이지만,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가를 사주 팔자는 말해주고 있다.
잘 살고 못 살고는 다 제 팔자 소관이다. 살다가 이혼하는 것도, 돈을 못 벌어 궁상을 떠는 것도, 자식이 없는 것도 모두 제 팔자에 있는 것이지, 상대를 잘 만나 인생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법은 결코 없다. 유취상종(類聚相從)이란 말이 있다. 쉽게 말해서 끼리 끼리 모인다는 말이다.
따라서 모든 결혼은 균형을 이루게 마련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손해보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집 아들이 부잣집 딸과 결혼함으로써 생겨나는 갈등 같은 것은 여전히 흔하고 진부한 드라마의 주제로 반복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나름대로 당사자간에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며 또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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