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어떻게 생겼는가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머리 양쪽에 뿔이 달리고 호랑이 가죽 옷을 입고 쇠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도깨비는 원래 우리 전래의 도깨비가 아니고, 1910년 우리가 일제의 치하에 놓이면서 수입된 일본 도깨비이다. 일제 강점 후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문물을 연구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든 '조선의 귀신들'이란 책을 보면 뿔 달린 도깨비는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런 도깨비는 고대 일본이 국가로 발전할 당시, 음양도(陰陽道)라는 유파가 있었는데 그 유파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공(架空)의 모습이다.
음양도(陰陽道)는 중국과 조선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함께 전래된 음양오행(陰陽五行)과 도교(道敎)의 여러 학설을 일본 고유의 무속신앙과 결합되어 만들어진 학설이고 교의(敎義)였다.
그리고 그 방면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을 음양사(陰陽師)라 불렀는데, 그들은 영주나 귀족, 국가경영의 고문으로서 폭넓게 활약했었다. 도깨비는 바로 그 음양사들이 만들어낸 요괴(妖怪)인 것이다.
음양오행설의 기초 공리가 되는 십이지(十二支)설에서 축(丑)과 인(寅)의 방위를 귀신이 들락거리는 방위인 것으로 옛사람들은 믿어 왔다.
축(丑)과 인(寅)의 방위란 시계 판에서 보면 1시와 2시를 가리키는 방위이며 동북쪽에 해당된다. 귀신이 들락거린다 해서 그 방위를 귀문관(鬼門關)이라 부른다.
음양오행설이 시작된 중국에서 그 방위를 귀신이 드나드는 방위로 믿었던 까닭을 정확히 알 순 없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중국 대륙에서 동북쪽은 오늘날의 만주 일대와 한반도 지역이며 당시에는 동이(東夷)라고 부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활약하는 지역인 데, 중국인들은 동이족과의 싸움에서 매번 패배했기에 동북쪽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중국 주변의 이민족 중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곳이었기에 그 쪽을 귀문관이라 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렇게 하여 동북 방위는 두려운 귀문관이 되었는데, 축(丑)은 소, 인(寅)은 호랑이에 해당된다.
귀문관의 주장은 일본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래서 일본의 음양사(陰陽師)들은 축인방의 두려운 요괴를 쇠뿔을 달고 호랑이 가죽을 걸친 도깨비로 묘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도깨비는 쇠로 만들어진 방망이, 이른바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다니는데 그 점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주장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일본 학자들은 도깨비 방망이는 사실 한반도에서 철기문화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철을 다루는 기술을 가진 무리들이 건너왔는데 그 기술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첨단 기술이었다고 말한다.
청동기보다 철은 더 강하고 절삭력이 뛰어나기에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사들은 청동으로 무장한 세력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기에 그렇다. 철의 원료인 철광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제련 기술은 그야말로 금단(禁斷)의 비기(秘技)였던 것이다.
물론 철은 당시 금(金)보다도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한반도에서 철 생산이 왕성했던 곳은 삼국 시대의 가야연맹 일대였다. 아마도 제련 기술은 가야의 무리들이 일본과 거래를 하다가 일부가 건너간 것이 아닌가 싶다.
결과, 도깨비의 뿔과 호랑이 가죽에는 귀문관의 사상이 투영되고 있고, 도깨비 방망이에는 비밀 첨단의 제련 기술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았던 막강한 무리들에 대한 경외감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 같은 도깨비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로 직수입되었고, 그 바람에 사람들은 쇠방망이를 들고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하는 도깨비를 우리 전래의 민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최근 방송되는 고구려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 고구려 군인들은 뿔 달린 투구를 쓰고 나온다. 벽화의 그림에 바탕을 두었으리라.
그런데 이 뿔 달린 투구 역시 중국인들의 귀문관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고구려야말로 귀문관 방위에 있는 나라였기에 전쟁에서 상대를 위축시키기 위한 심리전의 요소로서 뿔 투구를 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그 당시 음양오행설은 고구려에도 널리 퍼져있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깨비처럼 알고 보면 외래문화인데 우리 것인 양 알고 지내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간단한 예를 들어본다.
작고한 만화가 고우영 선생에 의해 널리 알려진 '일지매'는 한국의 의협(義俠)인 것처럼 알려져 버렸지만, 실은 중국에서 온 얘기이다.
1700년경 청나라 당시에 발간된 협객과 의적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 속에는 일지매(一枝梅)의 얘기가 재미나게 실려 있다.
어떤 협기 있는 도둑이 있었는데 부자들의 재물을 털고 떠나면서 언제나 현장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매화꽃 달린 나뭇가지 하나를 자신을 알리는 징표로 남겨둔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일지매 도적은 그 재물들을 가난한 사람들의 창문으로 밤을 도와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직접 겪은 얘기인데, 중국 복건성의 바닷가에 있는 '샤먼'이라는 도시에 가면 바다를 지키는 해왕신(海王神)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런데 그 신의 이름이 바로 '장보고'이다.
장보고는 신라시대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필자를 향해 돌아오는 눈빛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식이었다. 수에서 밀리니 할 수 없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애꾸눈 나라에 두 눈 격이라.
사실 이런 것들은 비교문화와 문화교류 차원에서 대단히 즐거운 학문 분야라고 하겠다.
그러니 도깨비가 '메이드 인 자팬'이라고 해서 일부러 멀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귀신이 많은 나라는 환타지가 풍부한 것이니 좋은 문화 컨텐츠의 역할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귀문관(鬼門關)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하겠다.
팔자를 보러 다니다보면 당신은 귀문관살(鬼門關殺)이 끼여 있으니 부적을 쓰거나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간혹 들을 수 있다.
이 귀문관살(鬼門關殺)이 팔자에 들면 정신질환이 있기 쉽다고 얘기한다.
이처럼 운명학에서 살(殺)이 끼었다면 공연히 겁부터 나는데, 귀문관살(鬼門關殺)의 경우도 그렇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믿을 만한 얘기도 아니다.
이 살의 본질적인 내용은 축월과 인월, 양력으로 1-2월에 태어난 사람은 한습할 때이므로 우울증이나 히스테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양력 7-8월에 태어난 사람은 조열(燥熱)한 체질이어서 울화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 대형사고를 친 조승희가 바로 귀문관살을 심하게 지닌 경우이다.
하지만 귀문관살을 지녔다 하더라도 전체의 사주 구성에 따라 우울증이 없는 사람도 많다. 겨울에 났다고 다 우울증, 여름에 났다고 다 화병(火病)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다만 옛 사람들이 명리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통계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것을 이름도 무시무시한 귀문관살(鬼門關殺)이라 지었던 것이다.
운명학은 여전히 공포산업이다. 겁을 주어서 액땜이나 액막이를 해야 한다고 해서 돈을 우려내거나 부적을 파는 행위가 바로 공포산업적 요소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운명을 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굿을 했다고 해서 부적을 지닌다 해서 그런 액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우울증 기질을 지녔다면, 그에 따른 합리적 대처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과를 찾는 것이 대표적인 길이지만 그 외에도 실은 좋은 방법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결국 돈으로 해결하려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그런 겁을 주는 사람과 만나기에 그런 부질없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것이 현실이고 또 눈앞의 세상이라 하겠다.
세상사 모두 자신이 짓고 자신이 이루는 것이다, 운명학을 30년 이상 연구해 온 필자의 소회이다.
/김태규 명리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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