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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인연에 대해

라이프(life)/명리학

by 굴재사람 2009. 4. 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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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도매체를 통해 크게 놀란 적이 있다. 혼인신고의 10% 정도가 외국인과의 결혼이라는 점이었다. 베트남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유사 이래, 외부로부터 새로운 피가 이처럼 대거 들어오는 일은 아마도 처음임이 분명하다. 수년 전 베트남의 하롱 베이 관광을 다녀와서 느꼈지만, 베트남 처녀들은 근면하고 몸매가 날씬하며 미모 역시 뛰어나기에 싫은 느낌이 없다. 남아선호 사상이 이런 사회적 현상을 낳고 있으니 그 또한 묘하다 하겠다.
  
명리학적 견지에서도 흥미롭다. 얼핏 떠오르는 생각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는 우리 총각들은 대부분 겨울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겨울 생은 여름 생과 맺어지는 것이 좋은데, 베트남 처녀들은 그 산지 자체가 남방(南方)이니 여름 생과 같은 효과일 것이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남녀의 인연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 남녀의 인연을 두고 흔히들 궁합(宮合)이라 부른다. 그리고 결혼을 고려할 때는 궁합이 좋은지를 놓고 거의가 한번씩은 운명상담소를 찾아가 물어보게 된다. 물론 기독교 신앙을 지닌 분들은 꺼려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날처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는 세상에서 궁합을 보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나서 6개월 이상의 교제 기간이면 상호간에 잘 살 수 있는지는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궁합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것은 사실 오랜 우리의 풍습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귀(歸)라 불렀다. 돌아갈'귀'를 써서 여자가 남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해석했던 것이다. 즉 이는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일반적일 때,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본래의 자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또 남자가 결혼으로 여자를 맞이하는 것을 얻을 취(取)를 써서 취(娶)라 했다. 이는 남자는 여자를 얻고 여자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했던 것이다. 지금에서 보면 대단한 여성비하적 생각이지만 과거에는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결혼은 육례(六禮)라고 부르는 절차에 따라 행해졌는데 이 절차 속에 바로 궁합을 보는 것이 들어있었기에 지금도 으레 결혼에는 궁합이 어떤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 첫째가 납채(納采)로서 남자 집에서 결혼의 의사를 밝히는 예물로서 기러기 한 마리를 보낸다. 기러기는 때가 되면 '제 자리로 돌아오니' 앞서 말한 귀(歸)의 의미를 상징한다.
  
둘째는 문명(問名)으로서 원뜻은 여성의 성씨를 물어보는 것이지만, 이 때 태어난 사주도 물어보게 된다.
  
그러면 납길(納吉)이라는 절차로서 여자의 이름과 사주로서 조상의 사당에서 궁합을 보아 좋다는 길조가 나오면 그 좋은 소식을 예물과 함께 여자 집에 알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여전히 궁합을 보는 풍속의 유래인 것이다.
  
옛 풍속에 대해 좀 더 얘기하면 그 다음에는 납징(納徵)으로서 비교적 많은 예물, 즉 폐백을 보내어 정혼(定婚)을 알리게 된다. 다음으로 결혼 일자를 기약하는 청기(請期)이고 마지막으로 신부를 맞아오는 친영(親迎)으로서 혼인이 마무리된다.
  
이와 같은 육례의 유교적 풍속이 오늘날에도 전해져서 궁합을 보는 것이다. 함 들어오는 절차도 모두 이런 육례를 서민적으로 간략하게 만든 것이다.
  
  

결혼 풍속에 대한 재미있는 부분을 좀 더 애기하면, 합근(合巹)과 교배(交杯)를 들 수 있다. 합근이란 표주박으로 만든 잔을 근(𢀷�)이라 하는데 신랑 신부가 각자 하나씩 들고서 입술을 적시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이 나중에는 술잔을 바꾸어서 마주보며 살짝 입에 대는 것을 교배라 부르게 되었다.
  
남녀는 부부사이가 아니면 함께 술을 하거나 술잔을 교환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회식 자리나 또 남녀 간에 술잔을 함께 하는 일은 너무나도 흔해져서 수시로 교배하며 지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옛날로 치면 모두가 부부지간이 된 셈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 명리학적 견지에서 남녀의 인연, 상성(相性) 또는 궁합은 어떤 것이 좋은지 알아보기로 하자.
  
궁합의 기본은 음양의 조화(調和)를 얻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소 뚱뚱한 사람이 날씬한 상대를 만나거나, 성미가 급한 사람이 느긋한 상대를 만나거나, 미모가 출중하면 평범한 용모를 만나는 것 등이 모두 음양의 조화에 해당된다.
  
두 사람 모두 뚱뚱하거나 반대로 날씬한 것은 부자연스러우며, 둘 다 성미가 급한 부부, 둘 다 잘 생긴 부부, 이런 식의 커플은 사실 부자연스럽고 결혼 생활도 유지되기 어려운 법이다. 이 쪽이 모자란 부분을 상대가 메워주는 방식, 급하면 느긋하고, 느긋하면 급한 상대가 좋은 것이다.
  
잘 생긴 탤런트 출신의 커플들이 종종 결혼에 실패하는 것 역시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양의 조화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역시 한열(寒熱)과 조습(燥濕)에 있다 하겠다.
  
여름 생들은 대부분 열이 많다. 따라서 겨울 생을 만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또 살이 많은 사람은 습한 체질이니 마르고 건조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만나서 함께 살다보면 열을 교환해서 한 쪽은 시원해지고 한 쪽은 따뜻해지는 것이고, 또 한 쪽은 건조해져서 쾌적하고 한 쪽은 습해져서 살이 오르는 것이다.
  
글의 모두에서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는 우리 총각들은 겨울 생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이다.
  
부부가 오래 살면 닮아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호간의 기운을 교환해서 융화되고 조화가 되어 비슷해지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급한 사람은 느긋한 사람의 영향을 받아 유해지고, 느린 사람은 급한 사람의 영향을 받아 민첩해지는 것이다.
  
남녀간의 궁합이란 이것이 기본이다. 명리학적으로 복잡한 이론을 들먹일 수 있지만 그 모두 한열조습의 조화를 이루기 위함에 지나지 않는다. 한방(韓方)에서 사람을 치료하는 이치도 마찬가지로 한열조습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물론 명리의 이론은 훨씬 정교하고 복잡하지만, 이에 맞는 상대를 찾기 위해 만나는 상대마다 궁합을 물어보러 다닐 필요는 없다. 또 필자가 앞서의 말들을 했다고 해서 남녀간에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상대의 생월을 물어본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소치일 것이다.
  
뭐든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앞서의 조건들을 따져본 후에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절로 맞춰지는 것이 남녀의 인연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귀기 시작해서 6개월만 지나면 서로 잘 부합하는지 자연스럽게 판명이 나게 된다.
  
대개의 경우 3개월이면 벌써 아닌 것은 아닌 것이 되고 6개월이 되면 시들해지기 마련인데 그 기간을 지나서도 좋으면 부부 인연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 후에 아이를 낳지 않으면 사실 결혼 생활은 유지되기 어렵다. 결혼 후 6년이 지나면 남녀간에 뜨거운 애정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를 닮은 아기가 있으면 그것이 부부를 묶어주는 힘이 되기에 그렇다.
  
또 요즘에는 기러기 아빠들이 많은데 실로 어리석은 짓이라 하겠다. 부부간에 3년 이상 떨어져 지내면 이미 함께 사는 것 자체가 불편해지는 법이다. 좋은 자녀 교육을 위해 떨어졌다가 그것으로서 부부인연이 다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자녀를 위해 그 비싼 교육비와 생활비를 대다가 자녀 잃고 아내를 잃는 우리 사회의 남편들은 어리석어도 그렇게 어리석을 수 없는 것이다. 제발 바보짓 그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마 전 오락프로를 보다가 또 한 번 놀란 일이 있어 마무리 얘기로 할 까 한다. 요즘 고등학교 다니는 10대들의 90% 이상이 추파(秋波)라는 말을 모른다 한다. 추파란 가을 호수에 바람이 일면 잔잔한 물결이 지는 모습을 말한다. 그처럼 여인이 서글서글한 눈매로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눈빛을 보내는 것이 추파이니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그러니 그간의 우리 인문교육은 뭘 하고 있었다는 것인지 그만 열통이 터진다. 어휘력은 바로 사고력이니, 어휘가 좁아지면 사고도 좁아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현재의 우리 인문 교육은 어휘말살 정책이나 진배없지 않은가.

/김태규 명리학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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