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막론하고 재물이 인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재물이 없는 무재팔자(無財八字)로 타고난 사람도 있다.
무재팔자가 돈을 벌려고 지나치게 애를 쓰면 몸에 병이 오거나, 아니면 교도소에 가게 된다.
무리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팔자가 무재팔자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한 수양이 필요하다.
대전에 살았던 '박사주',
즉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玩·1903~1992) 선생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술가였다.
도계는 대구에서 태어나 일제시대에 중국으로 건너가 역학의 대가였던 왕보(王甫) 선생을 만났고,
귀국 후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영대(靈臺:마음바탕)를 밝게 하는 수련도 했다.
194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대전에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팔자를 보아 주었다.
1960~1980년대에 걸쳐 한국의 어지간한 정치인, 사업가라면 한 번쯤은 도계를 만나 보았을 것이다.
그가 사주를 봐 주었던 간명지(看命紙)들은 지금도 이 분야의 입문자들에게 교과서로 읽히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상담해 주었던 도계 자신의 팔자는 어떠했는가?
돈이 붙지 않는 '무재팔자'였다.
도계는 자신의 팔자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1970년대 후반, 대전 인근지역이 신도시로 개발될 무렵이었다.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앞 다퉈 땅을 사들이고 있었다.
평당 몇 천원에 사 두면 2~3년 있다가 몇 만원이 되는 투자였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 도계를 꾀었다.
"선생님 지금 땅 좀 사 놓으시면 앞으로 땅값이 엄청 뜁니다."
그러나 도계는 이 권유를 거절하였다.
"나는 무재팔자네. 재물이 없는 무재팔자가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화를 입게 되지!
나에게 돈이 들어오면 제 명에 못 살고 죽네!"
땅을 사 두었던 다른 사람들이 큰돈을 버는 장면을 도계는 담담하게 앉아서 목격하였음은 물론이다.
자신의 빈곤을 운명으로 알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가 쉬운 일인가!
나는 역술가 도계의 인생을 음미할 때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생의 오묘한 비밀을 엿보게 된다.
"운명에 저항하면 끌려가고, 순응하면 업혀간다."
세네카가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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