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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과 금정산

라이프(life)/풍수지리

by 굴재사람 2009. 2. 1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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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금강산과 금정산

 

 

조선시대에 밑바닥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가 '팔천(八賤)'이다.

사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工匠)이다.

이 팔천 가운데 가장 억울했던 직종이 바로 승려이다.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승려는 상류계층에 속하였다.

이전까지는 스승님으로서 대접을 받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졸지에 밑바닥의 하층민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승려들은 좋은 점도 있었다.

명산대천을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에서 제일 볼 만한 명산은 금강산이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면 금강산에 가고 싶어 했다.

만물상, 만폭동을 비롯하여 내금강의 승경을 보면서 '팔천'의 밑바닥 처지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일단 승려가 되면 절대 굶어 죽는 일은 없었다.

'속인 천 명이 굶어 죽은 뒤에 눈먼 중 하나 굶어 죽는다'는 말도 있다.

 

금강산에 있었던 장안사(長安寺), 유점사(楡岾寺) 같은 절은 경치도 좋을 뿐 아니라

기도발도 잘 받는 명찰이었으므로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던 사찰이다.

전국의 명산대천을 떠돌았던 떠돌이 승려들은 봄이 되면 금강산에 온다.

봄의 금강산 경치를 보다가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하안거(夏安居) 석 달 동안 이런 대찰에 머무르곤 하였다.

하안거 기간에는 절에서 숙식을 해결해 준다.

하안거가 끝나면 바랑을 짊어지고 다시 여행에 나선다.

이때부터 동안거가 시작되는 10월 보름까지는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떠도는 '구름과 물 같은'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삶을 살았다.

목적지는 부산 금정산의 범어사(梵魚寺)이다.

동안거 석 달을 지내기에는 따뜻한 남쪽에 위치한 범어사가 좋았다.

범어사는 물류가 활발한 항구에 있었으므로 자연히 먹을거리도 풍부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구름과 물같이 천하를 떠돌던 승려들이 가장 선호했던 곳은

금강산의 유점사와 금정산의 범어사 코스였다고 전해진다.

금강산에서 하안거가 끝나고 여기저기 들르다 보면 금정산 범어사에 이르고,

다시 동안거가 끝나고 몇 달을 올라가다 보면 금강산이 나온다.

이렇게 1년이 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팔천계급'이 누렸던 아주 화려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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