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의 명산이 해발 757m의 화왕산(火旺山)이다.
산 이름 자체가 '불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산을 '불의 산'으로 보았던 것이다.
더구나 화왕산에 불이 나야 풍년이 든다는 전설까지 내려온다.
이번에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억새밭에 불을 놓는 대보름 행사를 하다가 인명 사고가 났다.
옛날 사람들은 왜 화왕산을 불이 왕성하다고 작명하였을까?
작명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창녕에 있는 창녕 성씨 집의 200칸 규모 고택인 아석헌(我石軒: 성 부잣집)을 보러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커다란 지네의 주둥아리 부분에 자리 잡은 이 고택은 앞에 펼쳐진 전망이 호쾌하다.
영남에서 가장 호쾌한 전망을 가진 저택이다.
전망이 호쾌한 이유는 집 앞으로 보이는 화왕산 때문이다.
아석헌은 화왕산을 조산(朝山)으로 하고 있다.
집 앞에 바로 가까이 있는 산이 책상과 같은 안산(案山)이라고 한다면,
안산 너머로 멀리 있는 산이 조산이다.
지리서(地理書)에 "조안(朝案)을 너무 탐(貪)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안산과 조산은 집터에서 중요하다.
풍수가에서는 조안(朝案)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그 집안의 부와 귀가 정해진다고 믿는다.
성 부잣집 본채의 마루에 올라서서 화왕산을 바라보면 화체형(火體形)의 산으로 보인다.
산이 바위산인 데다, 봉우리들의 끝이 뾰족하게 생겨서 불꽃처럼 생겼다.
이런 산은 화체산에 해당한다.
이름을 화왕산이라고 붙인 이유 중의 하나도 풍수적인 맥락에서 작명하지 않았나 싶다.
조산이 이처럼 화체형의 산이면 집터로 잡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법이다.
기가 너무 강렬하게 뻗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화왕산의 여러 개 암봉 가운데 두개쯤은 문필봉으로 보인다.
성씨들은 아마 이 문필봉을 귀하게 여겼던 것 같다.
화왕산에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축조한 화왕산성이 있다.
진주성 2차 싸움을 앞두고 곽재우는 진주성에 들어가지 않았다.
평지의 성에서는 왜군과 싸워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험준하면서 불기운이 강한 창녕의 화왕산성으로 들어와 1000명의 목숨을 지켰다.
임진왜란 최고의 산성이 화왕산성이다.
그런 명산에서 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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