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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와인에 대한 상식들

라이프(life)/술

by 굴재사람 2008. 11. 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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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와인에 대한 상식들

 

영화 <범죄의 재구성>을 보면 염정아가 주인공 박신양에게 와인을 권하자 박신양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랑스나 이태리 꺼 못 먹는 건 아닌데, 2차 대전 때 독일 놈들이 프랑스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겠어. 근데, 포도밭이 남아 나겠냐구. 오리지날은 그냥 다 타 없어졌지. 그리고 다시 심었는데 포도 자라는데 하루 이틀 걸리나. 근데 칠레엔 오리지날이 남아있다 이거죠.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프랑스 와인을 찾더라구.”

영화가 방영된 후 시중 와인숍에서 칠레 와인의 인기는 상한가를 쳤다. 칠레 와인 수입업체들은 이 영화로 인해 칠레 와인이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높아졌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박신양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 전역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됐지만 일부 고급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은 예외였다. 독일군 역시 프랑스 와인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독일군 장교들은 보르도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주인들에게 와인 생산을 장려할 정도였다. 물론 와인 생산을 중단하고 연합군에 지원한 와인메이커들 때문에 황폐해진 포도밭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는 전쟁이 끝난 후 더 좋은 포도밭을 재건하는 데 보약이 됐다. 예컨대 샤토 무통 로쉴드 1945년산과 슈발 블랑 47년산은 현재 경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설의 와인이다. 영국 와인전문지 디캔터는 죽기 전에 마셔야 될 와인 1순위로 샤토 무통 로쉴드를 뽑았다. 45년과 47년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데 최고의 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의 폐해로 수확량이 적었기에 그 가치를 더 인정받았다.

칠레에 ‘오리지날’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19세기 후반 ‘포도나무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필록세라가 창궐해 전 유럽의 포도나무를 황폐화시켰을 때 칠레만큼은 침범하지 못했다. 칠레는 포도 산지로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천혜의 지형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쪽으로는 4,000m가 넘는 만년설의 안데스 산맥,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혹한의 남극 그리고 북쪽으론 열대의 아타카마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 병충해가 침범할 수 없는 자연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필록세라로 프랑스에선 카르메네르라는 포도품종이 멸종했지만, 칠레에선 ‘오리지날 카르메네르’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 와인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와인에 대한 잘못된 상식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제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초보’는 물론 일부 와인 애호가도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와인 상식을 짚어봤다.

 

1. 레드 와인엔 육류, 화이트 와인엔 생선?

 

[Canon] Canon EOS-1Ds Mark II (1/100)s iso200 F5.6


중학교 수학책을 펼치면 근의 공식이 등장하듯 와인을 마실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공식이 있다. 바로 ‘레드 와인을 마실 때는 육류, 화이트 와인엔 생선 요리를 맞춰라’는 것이다. 과연 누가 그랬을까?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프랑스어로는 마리아주(mariage)라고 부른다. 결혼만큼이나 요리와 와인의 조화를 까칠하게 따지는 프랑스에서도 닭고기에 화이트 와인이 등장하고, 해물 볶음엔 레드 와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마리아주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특별한 공식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위의 공식이 틀렸다고도 볼 수 없다. 실제 레드 와인엔 육류의 지방을 분해하는 데 뛰어난 타닌이 풍부하고, 상큼한 화이트 와인은 생선의 비릿함을 죽이고, 담백한 맛을 살려준다. 하지만 와인 전문가들은 마리아주는 요리 재료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요리의 ‘소스’와 ‘색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즉 다소 무거운 느낌의 소스엔 레드 와인, 가벼운 느낌의 소스엔 화이트 와인 식이다. 재료의 색깔 역시 마찬가지다. 진한 색깔의 음식엔 레드 와인이 제격이고 다소 옅은 빛깔의 음식엔 화이트 와인이 어울린다.

예컨대 붉은 빛깔이 도는 연어나 참치의 경우 화이트 와인도 좋지만 포도맛이 강하고 타닌이 적은 보졸레 와인과 잘 어울린다. 홍합과 같이 어두운 색의 해물이나 매운탕과 같은 얼큰한 국물엔 레드 와인이 제격이다. 닭고기는 화이트와 잘 어울리지만 만약 그릴에서 구워졌거나 로스트 형식으로 볶아졌다면 레드 와인이 추천할 만하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소금기가 강한 음식은 오크통 숙성된 와인이 좋다. 오크향을 소금이 부드럽게 만든다. 반면 소금기가 없는 음식, 회나 전 같은 경우엔 오크통 숙성을 거치지 않은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다.


2. 디캔팅을 오래할수록 와인이 맛있다?


[NIKON CORPORATION] NIKON D2X (1/125)s iso100 F20.0


일본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면 주인공 시즈쿠는 와인을 명주실처럼 길게 뽑아내는 묘기를 선보인다. 신기에 가까운 그의 묘기로 죽었던 와인은 다시 살아나고, 사람들은 열광한다. <신의 물방울> 영향 때문에 지금도 시내 와인바에 가면 테이블마다 시즈쿠를 흉내내는 소믈리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시즈쿠처럼 와인을 주둥이가 좁고 몸체가 넓은 용기(디캔터)에 옮겨 담아 놓는 것을 디캔팅(Decanting)이라고 부른다. 디캔터는 공기와 접촉되는 와인의 표면면적을 넓혀준다. 이를 통해 와인은 병에 있을 때보다 더 빨리 산화되고, 이는 와인의 맛과 향을 부드럽게 만든다. 보르도 고급 와인은 쉽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첫날 밤 저고리를 꼭 부여잡고 있는 새색시와 같다. 새색시를 어르고 달래듯이 디캔터나 와인잔에 따른 후 계속 흔들어서 산화를 시켜야 맛이 좋아진다.

문제는 모든 와인을 디캔팅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디캔팅을 오래할수록 부드러워지지만 그만큼 산도와 풍미는 날아간다. 미국의 마스터 소믈리에인 이반 골드스타인은 “디캔팅은 기호 차이다. 부드러운 맛을 좋아한다면 오랜 시간 디캔팅하면 된다. 하지만 와인의 신선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선 디캔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디캔팅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올드 빈티지의 와인을 딸 때 벌어진다. 예컨대 와인바에 1960년~70년대의 와인을 가져갔을 때 최소 2시간 정도 디캔팅을 권하는 소믈리에를 자주 발견한다. 하지만 20~30년 정도 오래된 와인은 30분 이상 디캔팅을 할 경우 와인의 산화가 급격히 빨라지고, 결국엔 맛이 가버리게 된다. 세계적인 와인컨설턴트 미쉘 롤랑은 “어떤 와인이라도 30분 이상 디캔팅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와인이 가진 본연의 맛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조언한다.

3. 와인 보관은 온도에 달렸다?

최근 선물용으로 와인을 주고받는 사례가 많다.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은 와인업체에게 최대 성수기로 불릴 정도다. 하지만 와인을 선물받을 경우 보관을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와인냉장고 등 와인셀러가 많이 생겼지만 일반 가정엔 아직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은 임시방편적으로 와인을 냉장고에 보관한다. 와인의 온도를 유지하며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와인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데 온도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진동과 습도다. 오래된 냉장고일 경우 냉장고의 모터 진동은 와인의 맛을 상하게 한다. 진동은 와인에게 햇빛보다 더 나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와인을 트렁크에 두고 장시간 운전하는 것도 금물이다. 와인병 밖으로 와인이 흘러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습도 역시 진동만큼이나 중요하다. 와인숍을 갈 때 진열대에 와인을 눕혀놓는 것도 습도 때문이다. 코르크가 적당하게 젖어 있어야지 코르크가 마르지 않는다. 코르크가 마를 경우 공기 유입으로 산화가 진행되고 결국 와인이 아닌 식초를 마시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와인을 보관하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어디일까? 약간 서늘하면서 습하지 않은 지하실이 가장 좋다. 지하실이 없는 아파트라면 다용도실이 최적의 장소다.

4. 로제 와인은 레드와 화이트를 섞는다?

유럽에 가면 한여름철에 매출 실적을 놓고 맥주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와인이 있다. 미국에선 지난해 여름철 매출이 전년대비 50% 성장해 화제가 된 와인이다. 바로 로제라고 불리는 와인이다. 로제(Rose)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장미색, 얼핏 보면 핑크색을 띠고 있다. 색깔이 발그스름해 ‘블러쉬’(blush) 와인으로도 불린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색깔 때문에 로제 와인은 레드 와인에 화이트 와인을 섞은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레드 와인에 화이트 와인을 타면 색깔이 거의 비슷해진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로제 와인은 보통 레드와인을 사용하는 포도품종으로 만든다. 그런데 포도를 수확한 후 발효를 할 때 레드와인을 발효시킬 때보다 포도껍질을 일찍 제거한다. 그렇게 되면 포도껍질 색깔이 와인 색깔에 미치는 영향이 레드와인보다는 옅어진다. 즉 포도껍질에 의한 착색이 적다. 물론 예외는 있다. 로제 샴페인을 만들 때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포도 품종을 각각 와인으로 제조한 후 나중에 블렌딩한다.

로제와인에 또다른 선입관 중 하나가 달고 싸다는 것. 이태리의 람부루스코, 캘리포니아의 화이트 진판델 등 수많은 로제와인들이 지금도 베스트셀러지만, 그 특유의 단 맛 때문에 와인애호가들에겐 외면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드라이하고 고급 레드 와인 못지 않은 로제 와인도 속속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5. 비옥한 포도밭에서 명품 와인이 탄생된다?

[NIKON CORPORATION] NIKON D70 (1/250)s F13.0


국내 와인 관련 기사나 책을 읽다보면 와인의 장점 중 하나로 ‘비옥한 토양’을 꼽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 와인 애호가들은 비옥한 토양을 명품 와인의 필수 조건인양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비옥한 토양일수록 포도 작황은 좋아질지 모르지만 명품 와인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보르도를 비롯한 전세계 특급 와인 산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토양이다. 자갈로 뒤덮여진 포도밭을 보면 ‘과연 이런 곳에서 제대로 된 포도가 태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점토질, 사암, 석회질 등 자갈이 많은 토양에서 자라는 포도나무는 양분과 물을 찾아 뿌리를 더 깊은 곳으로 뻗어나간다. 덕분에 가뭄을 견뎌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오래된 묘목일수록 특급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런 뿌리가 깊숙이 뻗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척박한 토양은 거칠지 않은 포도나무를 만들어 내고 단단한 포도송이를 소량생산 한다. 이 포도송이는 나중에 와인으로 변했을 때 농축된 색깔과 향, 풍미를 만들어 낸다. 명품 와인을 만들어 내는 포도밭의 또다른 공통점은 대부분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일조량이 풍부해 구조감이 뛰어난 포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손용석의 와인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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