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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맥 - 백두대간

라이프(life)/풍수지리

by 굴재사람 2008. 11. 1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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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산맥

 


 

 

 

우리 나라 산줄기의 갈래를 알기 쉽도록 만든 지리서는 조선 후기 영조 때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1781)의 산경표(山經表)를 비롯해서 고산자 김정호(?-1864)의 대동여지도가 대표적이다.


산경표에 의하면 우리 나라 산줄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모두 15개다. 즉 백두산에서 시작해 지리산 천왕봉까지 한반도를 세로 지르고 있는 백두대간을 기둥으로 여기서 분맥한 장백정간과 낙남정맥,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 한북정맥, 낙동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이다.

대간, 정간, 정맥은 모두 주맥으로 어떤 것도 도중에 끊기지 않고 바다에 이르고 산맥 양쪽에는 산줄기 따라 흐르는 강을 끼고 있다.
1대간, 1정간,13정맥에서 분맥한 산줄기를 지맥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크고 긴 산줄기라 할지라도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강이나 하천을 만나 끝나는 것을 말한다.

1) 백두대간(白頭大幹)

백두산에서 시작해 원산(圓山) 두류산, 마대산, 원산(元山) 두류산, 백봉, 매봉산, 속리산, 영취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뻗은 한반도를 세로 지르며 뻗은 제일 큰 산줄기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도상거리 1625Km로 한반도의 모든 물줄기를 동서로 갈라놓는다. 현재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남쪽의 백두대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향로봉까지 690Km다. 요즈음 산악인들 사이에서 백두대간 종주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 구간을 종주 하는데 보통 60일에서 70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도상거리라는 뜻은 25,000:1 지도나 50,000:1 지도를 놓고 곡선자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한 것으로 오차가 있을 수 있으며, 산악인들에 의하면 실제 산행거리는 도상거리의 대략 2배정도 된다고 한다.)
장백정간과 13정맥은 모두 백두대간에서 분맥하여 산맥을 형성한다.

2) 장백정간(長白正幹)

백두대간의 원산 두류산에서 궤상봉, 관모봉, 고무산, 백사봉, 송진산 등 함경북도 내륙을 서북향으로 관통하여 두만강 하구의 섬 녹둔도 앞 서수라에서 멈춘 산줄기다.

3) 낙남정맥(洛南正脈)

백두대간의 끝 지리산(정확히는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옥산, 무선산, 봉대산, 천황산, 대곡산, 무량산, 성지산, 영봉산, 대곡산을 거쳐 마산의 무학산, 김해의 분산을 지난 후 낙동강 하구의 분산에서 끝난 산줄기다.
북으로는 낙동강을 접하고, 서쪽으로는 섬진강을 보내고 진주 남강을 이끌고 끝에서는 낙동강을 접한다.

4) 청북정맥(淸北正脈)

백두대간의 마대산에서 서쪽으로 분맥한 산줄기가 낭림산에서 청천강을 사이에 두고 두 줄기로 갈리는데 청천강 이북의 산세가 서쪽으로 향하여 갑현령, 적유령, 구현, 대암산, 삼봉산, 우현령, 동림산, 단풍덕산, 비래봉, 천마산, 법흥산 등 평안북도 내륙을 관통하고 신의주 앞 바다 압록강구의 미곶산에서 끝나는 산줄기다.

5) 청남정맥(淸南正脈)

낭림산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청천강 이남으로 묘향산, 알일령, 용문산, 서래봉, 강룡산, 만덕산, 광동산, 청룡산, 오석산을 거쳐 서해와 접하는 대동강 하류 광량진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다.

6) 해서정맥(海西正脈)

백두대간의 원산 두류산에서 한 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가다가 화개산에서 예성강을 사이에 두고 두 줄기로 갈리는데 예성강 이북의 산맥이다.
곡산 대각산과 언진산, 오봉산, 천자산, 멸악산, 운봉산, 해주 수양산, 장연 불타산을 거쳐 서해 장산곶까지 뻗은 산줄기다.

7)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임진강 북쪽과 예성강 남쪽의 산줄기로 화개산에서 개연산, 학봉산, 수릉산, 성거산을 거쳐 개성의 송악산까지 이어지고 서해와 접하는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처인 개성의 진봉산까지 뻗은 산줄기다.

8) 한북정맥(漢北正脈)

백두대간의 추가령 근처 백봉에서 시작하여 한강 북쪽으로 백암산, 적근산, 대성산, 백운산, 운악산, 축석고개, 도봉산, 북한산, 노고산, 고봉산을 지난 산맥은 서해와 접하는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처인 교하의 장명산까지 뻗은 산줄기다.

9) 낙동정맥(洛東正脈)

백두대간의 매봉산에서 백두대간과 헤어져 백병산, 응봉산, 통고산, 백암산, 주왕산, 단석산, 가지산, 취서산, 부산 금정산을 거쳐 부산 앞 바다 다대포의 물운대까지 뻗은 산맥이다.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에 있으면서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10)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백두대간의 속리산 문장대에서 시작하여 청주의 상당산성을 향하여 동쪽으로 돌아 좌구산, 보현산을 거쳐 죽산의 칠현산까지 이어진 산줄기다.
칠현산에서 북으로 한남정맥, 서남으로는 금북정맥이 갈라진다.

11) 한남정맥(漢南正脈)

칠현산에서 서북으로 향하여 칠장산, 백운산, 성륜산, 보개산, 수원의 광교산, 안양의 수리산, 소래산, 성주산, 계양산, 가현산을 거쳐 강화도 앞 문수산까지 뻗은 산줄기다.


12) 금북정맥(錦北正脈)

칠현산에서 서남쪽으로 향하여 뻗은 산맥으로 금강 북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현산,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 국사봉, 광덕산, 차유령, 청양 일월산, 오서산, 보개산, 수덕산, 예산 가야산을 거쳐 서해 태안반도로 건너가 안흥진까지 이어진 산줄기다.

13)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백두대간이 지리산에 이르기 직전 영취산에서 시작하여 장안산, 수분현,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 부귀산을 거쳐 영취산까지 이어진 산맥이다.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며 주화산에서 금남정맥과 곰재(곰치)에서 호남정맥으로 갈린다.

14) 금남정맥(錦南正脈)

주화산(모래재 터널 북쪽 0.6Km 지점)에서 시작하여 운장산, 왕사봉, 대둔산, 천호산, 계룡산, 널티, 망월산, 부여 부소산, 조룡대로 달려 금강에서 끝나는 산줄기다.
금강의 남쪽에 있는 산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5) 호남정맥(湖南正脈)

전주 동쪽 곰재(곰치)에서 시작하여 만덕산, 경각산,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천운산,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 존제산, 송광산, 조계산, 도솔봉을 거쳐 남해의 섬진강 하류지역인 광양의 백운산과 망덕산에 이르러 멈춘 산줄기다.
동쪽은 섬진강이 남해로 흐르고,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이 서해로 흐른다.

 

- 형산의 풍수칼럼에서 -

 

 

 


왜 백두대간인가?

한민족 정체성·일체감 나타내는 우리 고유 산줄기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약 1,400km 길이에 이르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산줄기를 말한다. 남한에서는 향로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약 684km 길이다.

백두대간이란 명칭은 백두산이란 이름이 확립된 이후에 사용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백두산이란 이름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군신화의 탄생지가 백두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화이고 구체적인 문헌은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산을 단절된 봉우리로 보기보다 흐름을 가지고 이어지는 맥세(脈勢)로 이해하는 지형인식은 풍수사상의 보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풍수가 삼국시대 이후 보급되면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국토의 지형을 이해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엔 풍수가 광범위하게 수용되면서 백두산 중심의 지맥론이 일반화됐다.

한반도 풍수의 창시자로 알려진 통일신라 말기 도선(道詵·827-898)의 <秘記(비기)>에서 ‘이 땅의 지맥은 북방인 백두산으로부터 수와 목이 근간이 되어 내려와서 마두명당이 되었으며, (중략) 천지의 대수에 부합하여 명년에는 반드시 슬기로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에게 왕건이라는 이름을 지을 것이다’고 전하고 있다. 백두산 중심의 지맥이 문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러다 18세기 이후 실학자를 중심으로 백두산에서 연결되는 산지체계가 완전히 확립된다. 18세기 중엽 성호 이익의 <백두정간>, 이중환의 <택리지>에 백두대맥·백두남맥·대간 등의 표현이 보인다. 강을 중심으로 강줄기와 그와 관련된 지역의 모습을 서술한 정약용의 <대동수경>에서도 ‘백산대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산 정약용은 <대동수경>에서 백두산의 이름을 8가지 제시했다. 不咸(불함), 蓋馬(개마), 徒太(도태), 太白(태백), 長白(장백), 白山(백산), 白頭(백두), 歌爾民商堅(가이민상견) 등이다. 이외에도 백두산을 單單大嶺(단단대령), 蓋馬大山(개마대산)으로도 불렀다.

조선 후기의 가장 뛰어난 지리학자 중의 한 명인 신경준이 쓴 <山水考(산수고)>에서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이다. 우리나라 산수는 열둘로 나타낼 수 있으니, 산은 백두산으로부터 12산으로 나누어지며, 12산은 나뉘어 팔로(八路·팔도)가 된다. 팔로의 여러 물은 합하여 12수가 되고, 12수는 합하여 바다가 된다. 흐름과 솟음의 형세와, 나누어지고 합함의 묘함을 여기에서 가히 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산수고>에서 나열한 12산은 삼각산·백두산·원산·낭림산·두류산· 분수령·금강산·오대산·태백산·속리산·육십치·지리산이고, 12수는 한강·예성강·대진강·금강·사호·섬강·낙동강· 용홍강·두만강·대동강·청천강·압록강이다.

이어서 산을 중심으로 산줄기의 체계를 정리한 <山經表(산경표)>가 나왔다. 산경이란 산의 날실, 즉 산의 세로줄기를 말한다. <산경표>는 우리나라 산줄기와 산의 갈래, 산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나타낸 지리서다. 우리나라 산들의 족보인 셈이다. 책의 윗부분에 대간, 정맥 등의 명칭을 가로로 표시하고, 그 아래에 세로로 산, 봉우리, 고개 등의 연결관계, 산들의 갈래를 기록하고 있다.

<산경표>에 나타난 산지체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산줄기의 맥락과 명칭을 체계화해 1개의 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분류하고, 이름을 부여했다.

둘째, 산맥의 체계가 하천의 수계를 기준으로 나뉘어 있다. 한남정맥과 한북정맥과 같은 산줄기의 이름이 그것을 잘 보여 준다.

셋째, 대간·정간·정맥 등으로 산줄기에 위계성을 부여한 점이다. 간은 줄기이고, 맥은 줄기에서 흘러나간 갈래라 할 수 있다.

넷째, 산과 산의 분포와 위치를 줄기 또는 맥으로 파악해 끊어짐이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기서 산맥과 중요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산맥체계는 지질구조를 중심으로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산맥 사이의 연결관계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개별 산맥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특히 북쪽과 남쪽의 지질구조가 달라 남북한의 산맥들은 연속되지 않고 단절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산경표의 맥으로 연결된 땅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며, 크게 보면 하나의 뿌리를 가진 공동체적인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맥분류는 한반도를 하나의 공동체적인 뗄 수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기원과 성격을 가진 개체들의 집합으로 국토를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

다섯째, 백두산이 국토의 중심 또는 출발점으로 인식되어 있는 점이다. 전통적인 국토 인식 체계에서는 국왕이 거주하는 수도를 국토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신경준의 <산수고>에서도 백두산을 중시하면서도 중심을 한양에 두고 있었다. 산의 줄기를 중심으로 본 <산경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지역인식을 체계화하고 정당화하는 논리적 작업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의 산지체계는 한반도 최고봉인 백두산에 대한 경외감과 상징성, 백두산과 남단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산의 연결을 통한 국토의 일체성, 그리고 취락과 도읍의 입지와 관련된 풍수지리적인 개념이 접목되어 형성된 것이다. 백두대간 개념에서의 산지체계는 연속된 산계를 강조한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 의도적으로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3분의 2가 산지이고, 평균 해발고도가 500m에 가까운 산악국가다. 백두대간은 우리에게 필요한 물의 저장고이고, 에너지와 광물자원의 공급처이며, 기후시스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또한 휴식과 탐방의 장소이며, 산촌의 고유한 토지이용과 문화전통이 유지되는 중심지로 우리에게는 소중히 가꾸고 보존해야 할 자연유산이자 문화유산이다.

 

백두대간 상식

 

 

 

현재 국내산악계는 산악전문잡지사에서 백두대간 산행안내 책자를 부록으로 출간하고 인터넷 웹사이트까지 생길 정도로 백두대간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로 안내산행단체까지 가세하여 백두대간종주 전문산행 안내라는 문구까지 내건 안내산악회까지 출현하고 맥주와 같은 공산품에까지 이름을 붙이는 현상이 벌어졌다.

백두대간이 우리에게 갑자기 인기를 끌게된 것은 우리가 그동안 학교에서 배워 왔던 일제시대 때 광물수탈을 위해 1900년과 1902년에 실시된 지질조사자료를 가지고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1856-1935)라는 일본지질학자가 15개의 산맥으로 조각 낸 산맥체계와는 전혀 다른 우리고유의 인문지리이기 때문이다.

잊고 있었던 백두대간이 다시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1980년 겨울 지도연구가 이우형씨가 인사동의 고서점에서 조선조 영조때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산경표(山經表,1769년/영조45년 발행)라는 책을 발견한 순간 부터이다.

산경표는 신경준이 정의한 우리 산의 족보로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에 속한 산들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다.
그 개념은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국내 어떤 산에서든 백두산까지 물줄기에 의해 끊이지 않고 모두 능선으로 연결되어 물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가장 큰 산줄기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어나간 백두대간이다.
이 백두대간에서 다시 뻗어나간 산줄기를 정맥(正脈)과 정간(正幹)이라고 하며 정맥에서 다시 뻗어나간 산줄기를 지맥(支脈)이라고 한다. 더 쉽게 설명하면 대간과 정간은 한반도의 물줄기를 동서로 흐르게 하는 분수령이며 정맥은 그 강을 울타리처럼 둘러 싼 산줄기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한반도의 산줄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백두대간을 포함한 15개의 산줄기 이름 중 산이름에서 따온 것은 백두대간과 장백정간이며 나머지 13개의 정맥은 10개의 강이름에서 따왔다.

백두대간은 지도상 거리로 1천625킬로미터(1천572킬로미터라는 설도 있음)이며 이중 남한에서 종주 가능한 지리산 천왕봉(1,915.4m)에서 진부령까지의 지도상 거리는 690킬로미터가 된다. 북한쪽 총길이(삼재령에서 백두산 장군봉까지)는 약910킬로미터라고 한다. 천왕봉과 진부령간의 실제거리는 대락 1천500킬로 미터쯤 된다고 한다.

높이는 100미터에서 2천750미터까지 다양하지만 함경남도 흥남과 위도가 비슷한 북위40도 부근에 위치한 마유령 북쪽부터는 전부 1천미터 이상이다.

백두대간 종주가 일반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지난 1988년부터 시작되었다. 한국대학산악연맹에서 발행하는 연감 엑셀시오에 백두대간 특집이 실리면서 각 대학산악부가 백두대간 종주에 뛰어들었다. 이어서 일반산악단체들이 뒤따라 백두대간 종주대열에 끼어 들었고, 우리 산하를 좋아하는 이들 모두에게 백두대간이 알려지게 되었다.

백두대간을 하루 15Km씩 걷는다해도 40여 일이 넘게 걸린다. 겨울에는 70여일 이상이 소요된다. 구간을 나누어 주말에만 종주해도 40회 이상 산행을 해야하기 때문에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소요된다.

지난 94년 4월5일부터 5월21일까지 장금씨가, 이어 7월 17일부터 9월 25일까지 길춘일씨는 지원없이 단독으로 종주를 완료한 것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단독종주에 나섰다. (93년 수원 그린피아산악회의 권동현씨가 무지원 단독산행을 했으며 동시에 그린피아 산악회는 생식으로만 종주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들과 아버지가 형제끼리 혹은 최연소자(당시13세)와 최고령자(당시75세)가 종주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심신수련법인 국선도회원 5명은 지난 98년 8월15일부터 10월18일까지 65일동안 현미, 생콩,솔잎,칡,마 등 12가지를 가루로 만든 것을 생식하며 종주한 이색적인 기록도 세웠다.

이러한 우리의 보물 백두대간도 현재 개발이라는 미명과 입산자들에게는 속수무책이다. 동.식물의 보고인 백두대간의 생태계가 포장도로와 과도한 입산자들 때문에 심하게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장도로뿐만 아니라 골프장과 스키장 또는 기타 다른 개발용도로 인해 많은 부분이 훼손되고 있으며 이에 못지 않게 이미 많은 이들이 주말마다 구간 종주를 해 지도 없이도 종주가 가능할 정도로 길이 훤하게 난 것이 현실이다.

98년 녹색연합 백두대간 탐사팀이 답사한 결과 90년 백두대간에 23개에 불과하던 포장도로가 98년 3월현재 47개가 늘어난 72개(비포장,임업도로 포함)의 도로가 난 것으로 조사되었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개설된 도로가 종주의 중요한 구간의 교차점(출발과 종착) 즉 중간보급지원 장소 등으로 중요하게 이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훼손때문에 환경부는 2천년부터 남한측 백두대간 전 구간에 산림훼손방지용 생태축(生態軸)을 지정하여 지자체나 민간업체가 새로운 시설이나 도로를 건설 할 수 없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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