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안수정등(岸樹井等)

글모음(writings)/토막이야기

by 굴재사람 2016. 5. 5. 10:50

본문


안수정등(岸樹井等)



어떤 사람이 아주 끝없는 벌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다보니 성난 코끼리가 무섭게 쫓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허허벌판이라 딱히 도망갈 곳도 없었으니 죽어라고 뛰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벌판에 깊은 우물이 하나 있었고,

천만 다행스럽게도 그 우물 안으로 칡 넝쿨이 늘어져 있었다.

'아이구 살았구나'하고 칡 넝쿨을 부여잡고 우물 속으르로 내려가다 중간쯤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물 밑에서는 네 마리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우물 위에서는 성난 코끼리가 울부짖고 있으니 올라가도 내려가도 똑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엎진데 덮친 격으로 붙들고 있는 칡 넝쿨을 흰쥐 검은 쥐가 교대로 갉아먹고 있었다.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들고 보니 넝쿨 위에 붙어 있는 벌집에서 꿀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혓바닥을 내밀어서 그 꿀방울을 받아먹고 있으니

과연 이 경우를 당했을 때 어찌해야 살겠는가.


성난 코끼리에 쫓긴 한 나그네가

우물 속에서 겪고 있는 절대절명의 위급한 이 지경에서도 꿀방울을 받아먹고 있다.

이 불쌍한 나그네가 과연 누구인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인생을 비유한 부처님 법문인 것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중생은 모두 다 이 과보를 면할 수가 없다.


코끼리는 우리를 잡으러 오는 무상살귀, 염라대왕의 사자이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금년에 올지 명년에 올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지만 결국은 잡으로 온다 이런 말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천년, 만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결국은 코끼리를 피할 수가 없다.

우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고

우물 밑에 있는 독룡이나 독사는 지옥으로 비유할 수 있으며,

칡 넝쿨은 우리의 명줄이요,

흰쥐와 검은쥐는 밤이 가고 낮이 가면서 우리의 수명이 점차 닳아지는 것을 비유함이다.

이렇게 불쌍하고 답답한 나그네 신세인데

그래도 그 우물 속 칡 넝쿨에 매달려서 꿀방울을 혀로 받아먹고 있으니

이 꿀방울은 세상 사람들이 헤어나지 못하는 오욕낙인 것.

재물이며, 여색이며, 음식이며, 명예며, 목숨이며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당장의 달콤한 것을 빨고 있는 것이다.


몇 십년 전에 용성스님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살 수 있겠는가 ?" 하였는데

당시 많은 스님들이 그에 대한 답으로서,

"아야, 아야."

"어제의 꿈이니라."

"언제 우물 속에 들어갔던가." 등의 답을 하였다.

이때 전강스님은 "달다."라고 답하여 칭찬과 주목을 받았다.


'글모음(writings) > 토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도(中道)  (0) 2016.07.01
야단법석(野壇法席)  (0) 2016.05.05
소와 수레  (0) 2016.05.05
단하소불(丹霞燒佛)  (0) 2016.05.05
여도지죄(餘桃之罪)  (0) 2016.01.2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