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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역작, 화성이 세워진 이유

라이프(life)/풍수지리

by 굴재사람 2015. 9. 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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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 기자의 기인이사(奇人異士)(27):사도와 정조와 수원화성(中)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정조의 역작, 화성이 세워진 이유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영국-프랑스에서 본 고성(古城) 못지않게 화성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행궁(行宮)에서 시작해 창룡문(蒼龍門)-방화수류정(訪花随柳亭)-화홍문(華虹門)까지 두 번째는 팔달문(八達門)-장안문(長安門)-화홍문까지 답사했지요.
방화수류정에서 한 선생님이 초등학생들을 놓고 정조의 암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재미있는 설명에 빠져들었다.
방화수류정에서 한 선생님이 초등학생들을 놓고 정조의 암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재미있는 설명에 빠져들었다.

방화수류정은 지붕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옛 건물 뒤로 현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교차한다.
방화수류정은 지붕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옛 건물 뒤로 현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교차한다.

화성행궁의 좌익문 앞에 서면 중양문-봉수전이 정확히 일치한다.
화성행궁의 좌익문 앞에 서면 중양문-봉수전이 정확히 일치한다.
 
여름에 시작했으니 주말마다 겨울을 거쳐 내년 봄까지 가볼 요량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은 정조(正祖ㆍ1752~1800)의 역작입니다. 길이 5.7㎞, 면적 1.2㎢인 화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신도시지요.
화홍문 밑의 수로는 지금 시민들의 산책로가 됐다.
화홍문 밑의 수로는 지금 시민들의 산책로가 됐다.
 
과연 화성은 어떠한 이유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여기서 바로 최근 개봉한 영화 ‘사도’에 등장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아버지와 아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부자 관계입니다. 이 부자의 비극을 알려면 우선 그 가계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먼저 영조는 숙종과 숙빈 최씨 소생이었습니다. 숙빈 최씨는 훗날 영의정에 추존된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궁에 들어온 시점이 엇갈립니다. 7살 때 무수리로 들어왔다는 설이 먼저 있습니다.

다른 설에 따르면 12살 때 인현왕후를 따라 들어왔다는 것인데 변치않는 사실은 그의 신분이 ‘무수리’였다는 것입니다. 무수리는 한자로 ‘수사(水賜)’라고도 하는데 어원은 몽골어입니다. ‘소녀’라는 뜻이라는데 고려말 공주의 여종을 뜻했습니다. 훗날 숙빈 최씨가 되는 최 무수리는 매우 예뻤는지 숙종의 총애를 받았기에 장희빈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 난관에서도 1693년 첫아들 영수(永壽)를 출산해 숙원(淑媛)이 되지만 영수는 두 달 만에 숨집니다. 둘째 아들인 영조는 이듬해 태어났습니다.

최 무수리가 숙종의 눈에 든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야밤에 숙종이 궁을 거니는데 불켜진 방을 발견했습니다. 들어가 보니 무수리가 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지요. ‘무슨 일이냐’는 숙종의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지요.
이 독특한 건물을 공심돈이라고 한다. 적의 동태를 살피는 역할이다.
이 독특한 건물을 공심돈이라고 한다. 적의 동태를 살피는 역할이다.
 
“오늘이 폐비가 되신 중전마마(인현왕후)의 생신이라 간단히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들부들 떠는 그녀가 숙종은 얼마나 귀여웠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숙종은 장희빈의 바가지에 시달리며 인현왕후를 폐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난 숙종은 가끔 최 무수리의 방에 드나들었고 마침내 아이를 낳게 됐다는 것입니다. 왕의 자손을 낳자 최 무수리는 숙원에서 숙의, 귀의, 숙빈으로 봉해지는데 숙빈은 정1품에 해당하지요. 그녀는 끝내 왕비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인현왕후가 1701년 죽은 뒤 숙종이 ‘제2의 장희빈’을 겁내 궁녀가 왕비가 되는 걸 막았기 때문입니다. 여하간 무수리 어머니를 둔 영조는 즉위한 이후에도 숱한 구설수에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했겠지요. 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내 가운데 정성왕후 서씨-정순왕후 김씨-정빈 이씨 소생이 아닌 영빈 이씨 소생입니다. 영조는 영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사도세자, 화평옹주-화협옹주-화완옹주 등 1남3녀를 낳았지요. 그밖에 숙의 문씨는 두 딸을 낳았습니다.

원래 영조는 맏아들 이행을 세자로 삼았지만 이행은 10살 때 죽었습니다. 그리고 무려 7년을 기다린 끝에 사도를 낳았으니 얼마나 귀여워했겠습니까? 태어난 지 1년 만에 세자가 된 사도의 본명은 선(愃), 자는 윤관이며 호는 의재(毅齋)였습니다. 어릴 적 사도는 무척 똑똑했다고 합니다. 행동거지도 의젓했고 3살 때 아버지 영조와 대신들 앞에서 효경(孝經)을 읽고 ‘천지왕춘(天地王春)’이란 글을 썼는데 무척 힘있는 필체였다고 합니다. 이걸 본 대신들이 서로 그 글을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연무대에서 바라본 창룡문. 드넓은 풀밭사이로 대중교통수단이 오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연무대에서 바라본 창룡문. 드넓은 풀밭사이로 대중교통수단이 오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흐뭇해진 영조는 세자에게 “아가, 네가 주고 싶은 사람을 가리키라”고 명령하니 세자는 도제조 김흥경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영조는 “세자도 대신을 아는구나”라며 흡족한 웃음을 띠었습니다. 이후에도 영조의 아들 자랑은 계속 됐지요. 조선왕조실록 영조 편에는 ‘근일에 세자가 문왕장을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일찍이 명주와 무명베를 보고 사치와 검소를 구분하여 무명옷 입기를 청했으니 매우 기특하다’는 내용이 나오고 ‘체인(體認)의 공부를 안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체인의 공부라는 것은 사도가 저녁상을 받다 영조가 부르자 입안의 밥을 즉시 뱉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묻자 사도는 “소학(小學)에 이르기를 입에 밥을 물었으면 뱉어야 된다고 하였다”고 했는데 이걸 본 영조가 ‘체인’이란 말을 꺼낸 거지요. 무수리에게서 태어난 콤플렉스를 느끼던 영조는 스스로 엄격하려했고 역시 왕비가 아닌 궁인에게서, 즉 서자(庶子) 격으로 태어난 사도에게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걷도록 했지만,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예술과 무술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수원 화성의 남대문격인 팔달문이다. 서울의 숭례문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
수원 화성의 남대문격인 팔달문이다. 서울의 숭례문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
 
이렇게 부자의 사이는 벌어지는데 훗날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는 남편 사도의 정신이 이상하게 된 원인을 시아버지 영조에게서 찾습니다. 즉 영조가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사도를 경종의 왕비인 선의왕후가 살던 저승전에 머물게 했다는 거지요. 저승전은 사후 간다는 ‘저승’을 연상시키지만 한문으로는 저승(儲承)이라고 쓰며 동궁, 즉 세자가 머무는 거처였습니다. 그런 저승전은 선의왕후 사후 계속 비어 있던 곳이고 하필이면 근처에 장희빈이 머물며 인현왕후를 저주했던 취선당이 있었으니 어린 사도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방치된 거지요. 혜경궁 홍씨는 또 사도를 보살핀 궁인(宮人)들에 대해서도 지적합니다.

즉 영조가 사도를 선의왕후를 모시던 궁인들로 하여금 보살피게 했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영조는 경종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집권 내내 받았는데 그런 의혹을 떨쳐내려 선의왕후 측 여인에게 자기 아들을 맡기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선의왕후 측 궁인 가운데 최상궁과 한상궁이라는 여인은 사도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를 업신여기고 모자(母子)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이런 내용은 정조가 쓴 ‘현륭원 행장’에도 나타납니다.
연무대는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곳이다.
연무대는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곳이다.
 
어쨌든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고 말 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자라났으며 아버지에게 사사건건 간섭(큰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긴 하지만)당하면서 사도는 점점 스트레스를 받아갑니다. 일례로 사도가 스트레스로 어지럼 증세를 보였을 때의 일입니다. 대신들이 영조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지 말라고 하자 영조는 “애들은 원래 다 그러고 크는 거다. 내버려 두면 낫는다”고 대꾸했습니다. 대신들이 재차 간언하자 영조는 버럭 화를 내면 “내가 세자에게 물어보니 책만 보면 어지럽다고 한다. 그러니 치료 따윈 필요 없다”고 하지요. 이 에피소드는 승정원일기 1743년 11월10일과 14일 자에 나오는 것인데 이때 사도의 나이는 9세, 이미 그때부터 부자의 사이는 틀어지고 맙니다. <下편에 계속 >

Photo By 이서현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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