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줄다리기가 性행위의 상징에서 유래했다는…
갑오년 새해는 엄밀한 의미에서 음력 설날부터 시작된다. 갑오년이란 말 자체가 음력 기준이기 때문이다. 양력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번 공전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을 말하고, 음력은 달이 지구를 일주하는 시간을 기본으로 만든 달력이다.
우리같이 농경사회에서는 음력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농경사회는 달․여신․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 또는 풍요원리를 기본으로 했다. 태양이 양(陽)이고 남성으로 인격화되는데 반해 달은 음(陰)이며,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그래서 달의 상징구조는 여성․출산력․물․식물들과 연결된다. 여신(女神)은 대지와 결합되며,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세시풍속이라는 의미도 달을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의 전통 풍습이었다. 우리의 세시풍속은 음력의 월별 24절기와 명절로 구분되어 있으며, 집단적 또는 공통적으로 집집마다 또는 촌락마다 관행으로 전승되는 의식 및 의례행사와 놀이였다.
세시풍속에서 보름달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강했다. 정월 대보름은 전통적으로 설날보다 더 큰 명절이었다. <한국의 세시풍속>은 음력 12개월에 총 192건의 세시행사를 수록하고 있다.
그 중 정월 한 달에 102건으로, 전체 행사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 그리고 정월 14, 15일의 대보름날 관계 항목수가 55건으로 1년 전체의 4분의 1이 넘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담는 날이었다.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은 여신(女神)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줄다리기도 대부분 대보름날 행사였다.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행했다. 경남 영산의 줄다리기에서는 대낮에 절대 할 수 없도록 했다. 줄다리기를 마치 성행위처럼 여기는 전통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의 암줄(서부, 여자편)과 수줄(동부, 남자편)의 고리를 거는 일이 그런 관념에 속했다. 이 때 암줄편인 여성편이 이겨야 대지에 풍년이 든다고 했다.
청도 대보름축제 행사 중의 하나인 도주줄다리기 때 마을 주민들이 동서로 나뉘어 열심히 줄을 당기고 있다. 사진 청도군청 제공
<동국세시기>에도 ‘이날은 온 집안에 등잔불을 켜놓고 밤을 새운다. 마치 섣달 그믐날 밤 수세(守歲)하는 예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대보름날의 관습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전남에서는 열나흘 날 저녁부터 보름달이 밝아야 운수가 좋다고 하여 집안이 환해지도록 불을 켜놓으며, 배를 가진 사람은 배에도 불을 켜놓는다.
경기도에서는 열나흘 날 밤 제야(除夜)와 같이 밤을 새우는 풍속이 있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잠 안자기 내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 충북에서도 열나흘 날 밤 ‘보름새기’를 하는 곳이 여러 군데다. 이러한 관습은 달을 표준으로 하던 고대생활의 풍습이 강하게 전승돼 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제 농경사회에서는 음력이 한 달씩이나 자연계절과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계절이 정확한 태양력적 요소로 24절기를 쓰기도 했지만 일반 세시풍속에서는 여전히 달의 비중이 결정적이었고, 그 중에서 대보름은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날이었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 동안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 대보름날 또는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동국세시기>에는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 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재수가 좋다’라고 적혀 있다.
대보름이 되면 각 마을에서는 동네 안의 악기(惡氣)를 진압하여 연중 무사하기를 비는 뜻으로 ‘사자놀음’ ‘지신밟기’ ‘들놀음’ ‘매귀놀음’ 등을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로서 ‘줄다리기’ ‘횃불싸움’ 등을 한다. 또 보름날 밤에는 동산에 올라가 달이 떠오르는 것을 맞이하여 달빛을 보고 그 해의 풍흉(豊凶)을 점치며, 다리가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다리밟기’를 한다.
대보름의 대표적인 놀이 중에 쥐불놀이가 있다. 쥐를 쫓는 뜻으로 논밭둑에 불을 놓는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이 날은 마을마다 아이들이 논두렁이아 밭두렁에다 짚을 놓고 해가 지면 일제히 “망월이야”하고 외치면서 밭두렁과 논두렁, 마른 잔디에 불을 놓는다. 불은 사방에서 일어나 장관을 이루는데, 이것을 쥐불놀이라 한다. 이 쥐불놀이는 쥐를 없애고 논밭의 해충과 세균을 제거하고 마른풀 베기를 쉽게 하며, 또 새싹을 잘 자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쥐불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 해의 풍흉, 또는 그 마을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불이 크게 일어나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마을과 대응하여 쥐불을 놓기도 했는데, 한쪽 마을의 쥐불이 왕성하면 쥐들은 기세가 약한 쪽 마을로 옮겨가게 되며, 불의 기세가 큰 마을이 이기는 것으로 된다.
정월 대보름 점치기도 있다. 초저녁에 뒷동산에 올라가서 달맞이를 하는데, 달의 모양, 크기, 출렁거림, 높낮이 등으로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또 대보름날 달집태우기를 한다. 짚이나 솔가지 등을 모아 언덕이나 산 위에 쌓아 놓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지른다. 사발에 재를 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씨앗을 담아 지붕 위에 올려놓고 이튿날 아침 씨앗들이 남아 있으면 풍년이 되고, 날아갔거나 떨어졌으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그 외에도 농사가 잘 되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지신밟기’ ‘차전놀이’ 등을 벌이고, 한 해의 나쁜 액을 멀리 보내는 의미로 연줄을 끊어 하늘에 연을 날려 보낸다.
또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달집태우기’와 부녀자들만의 집단적 놀이인 ‘놋다리밟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집 근처의 다리로 나와 다리를 밟고 건너감으로써 한 해의 액을 막고 복을 불러들인다고 믿던 ‘다리밟기’ 놀이를 한다. 달집태우기 때 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었다. 이 불꽃이 기울어지는 방향에 따라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많은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축제를 개최한다. 경북 청도도 마찬가지로 도주줄다리기와 풍물경연대회, 달집․볏집태우기 등의 행사를 벌인다. 도주(道州)는 청도의 고려 때 지명이다. 박윤제 청도문화원장에 따르면 도주줄다리기는 죽은 원혼을 달래기 위해 시작됐다고 한다.
청도의 본거지는 원래 화양이었다. 화양은 옛날 사형장이라고 한다. 밤만 되면 귀신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끓자 활을 쏘는 장소로 만들었다. 이번에 화살 날아가는 소리가 밤마다 들렸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만든 게 모든 사람이 모여 힘찬 소리를 내는 장터였다. 거기서 줄다리기가 시작된 게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서군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관습은 이어졌다. 만약 동군이 중간에 이기더라도 중간에 줄을 확 놓아버려 서군이 이기게 한다. 이긴 서군은 상여를 메고 동군은 뒤를 따르면서 곡을 하는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줄다리기의 의미는 마을 주민끼리 화합을 하고, 모여서 농사에 관한 정보교환도 나누는 교류의 장이었다.
또 대보름 달맞이 행사와 달집태우기도 한다. 저녁달이 동쪽에서 솟아오를 때면 사람들은 달맞이 하러 뒷동산에 올라간다. 횃불에 불을 붙여 먼저 달을 보기 위해 산길을 따라 간다. 동쪽 하늘이 붉어지고 대보름 달이 솟을 때에 횃불을 땅에 꽂고 두 손을 모아 제각기 기원을 한다. 농부들은 풍년을, 유생은 과거에 급제를, 총각과 처녀는 결혼을 빈다. 이 때 대보름달을 보고 1년 농사를 미리 점치기도 한다. 달빛이 희면 강우량이 많고 붉으면 한발의 우려가 있으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달이 남으로 치우치면 해변에 풍년이 들고, 달이 북쪽으로 치우치면 산촌에 풍년이 든다고 했다.
청도 대보름축제 때 풍년을 기원하며 달집태우기를 하고 있다
둘레 20m, 높이 20m에 달하는 달집을 만들어 대보름이 떠오르는 동시에 풍년을 기원하면서 활활 태운다. 이 때 마을사람들은 농악을 울리며 달집둘레를 돌며 즐겁게 춤을 추고 환성을 지르며 한바탕 즐겁게 논다. 이 달집이 활활 잘 타야만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한다. 만일에 달집에 화기만 나고 도중에 불이 꺼지거나 잘 타지 않으면 마을에 액운이 들고 농사도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아들을 두지 못한 아낙네들은 타다 남은 달집 기둥을 다리사이에 넣고 타고 가기도 하고, 타다 남은 숯을 가져다 지붕에 얹어두면 아들을 낳는다고도 했다.
매년 청도의 화평과 안녕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 행사는 청도천 둔치에서 재현된다. 올해도 2월14일 성대하게 치러진다. 그리고 1년 송액영복과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연날리기 대회, 제기차기, 투호, 널뛰기, 윷놀이, 세시음식 나누어먹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풍물경연대회는 농촌 인력부족으로 격년제로 열리며, 올해는 풍물시연대회로 대신한다.
박윤제 문화원장은 “옛날 행사엔 아이들을 참여시키는 볏짚태우기도 있었다. 청장년은 달집으로, 어린이는 볏짚으로 축제를 치렀다. 지금의 관 위주로 변질되면서 아이들이 축제에서 빠져버렸다. 온 가족이 참가하는 축제로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났다. 두레도 우리와 같은 의미였다. 새마을운동이 청도에서 처음 발생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었다. 축제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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