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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통 된 '슬로시티'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4. 1.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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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새통 된 '슬로시티'

 

 

"청산도 큰애기는 쌀 서 말도 못 먹고 시집간다"고 했다. 청산도 돌투성이 땅은 시루처럼 빗물이 그대로 빠졌다. 섬 사람들은 비탈에 구들장 놓듯 넙적한 돌 깔고 진흙 쌓아 층층이 논밭을 일궜다. 포구 당리마을 다랑이 논밭은 4월이면 모질던 가난과 억척도 잊은 듯 봄을 노래한다. 노란 유채꽃과 파란 보리·마늘밭이 화려한 조각보 같다. 유채밭에 서서 도락리 바다에 은비늘로 부서지는 햇살을 보자면 품고 있던 모난 마음들이 동글동글해진다.

 

▶청산도는 '꽃보다 길'이다. 바닷가 언덕길, 논밭 사랫길, 마을 고샅길이 풀린 옷고름처럼 흘러간다. 그 길에선 저절로 걸음이 느려진다. 당리 돌담길을 '서편제' 가족 셋이 어깨춤 추며 내려왔다. 북 장단에 진도아리랑이 구성졌다. '서편제'를 찍었던 초가 마당에서 마을 어른들이 갓 거른 농주를 팔았다. 돌담 너머 봄 바다 보며 기울이는 막걸리 사발에 시간도 더디 갔다.

만물상 일러스트

▶완도군 청산도는 2007년 말 신안 증도, 담양 창평면, 장흥 유치면과 함께 아시아 첫 '슬로시티(Slow city)'로 인증받았다. 이탈리아 소도시 그레베인키안티에서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를 먹고 느리게 살자며 1999년 시작한 운동이다. 지금까지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슬로시티'로 지정한 도시가 27개국 170곳을 넘는다. 우리도 5년 새 하동 악양, 예산 대흥, 남양주 조안, 전주 한옥마을, 경북 상주·청송, 영월 김삿갓면, 제천 수산면·박달재까지 열두 곳에 이르렀다.

 

▶슬로시티연맹은 5년마다 '슬로시티'들을 심사해 다시 인증할지 결정한다. 작년 봄 청산도·담양·증도·장흥 심사에서 장흥은 탈락하고 증도는 올해 다시 심사하기로 했다. 장흥은 주민이 프로그램에서 겉돌고 너무 장삿속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증도는 다리가 놓이면서 섬이라는 의미가 바랬고 한 해 80만명이 몰려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고 했다.

 

▶청산도 역시 '느림'을 빠르게 잃고 있다고 한다. 2600명 사는 섬에 하루 9000명이 찾아오고 쓰레기가 4t씩 쏟아져 소각로를 더 짓고 있다. 사랫길을 찻길로 포장하고 민박집과 불법 펜션이 108개나 된다. 너도나도 '슬로시티' 간판을 관광객 끌어들여 돈 버는 수단으로만 여긴 게 아닌지 이쯤에서 돌아볼 일이다. 일본과 뉴질랜드엔 '슬로시티'가 하나씩밖에 없다. '빠름·채움·인공·디지털에서 느림·비움·자연·아날로그로 가자'더니 뭔가 거꾸로 가고 있다. '서편제' 황톳길에 시멘트를 발라버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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