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산을 배우면서부터

글모음(writings)/좋은 시

by 굴재사람 2013. 10. 9. 15:31

본문

 

산을 배우면서부터

 

                                     - 이성부 -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느껴질 때는

이미 그것들 저만치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산과 내가 한몸이 되어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잊어버렸을 때는

머지않아 이것들이 가까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집과 사무실을 오고갈 적에는

자꾸 산으로만 떠나고 싶어 안절부절


떠나기만 하면 옷 갈아입은 길들이 나를 맞아들이고

더러는 억새풀로

삐져나온 나뭇가지로

키를 넘는 조릿대 줄기로

내 이마와 뺨을 때려도

매맞는 즐거움 아름답게 살아남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오르락내리락

더 흘릴 땀도 말라버려 주저앉을 적에는

어서 빨리 집으로만 돌아가고 싶었다.


산을 내려가서

막걸리 한 사발 퍼마시고 그냥 그대로 잠들고만 싶었다.


이렇게 집과 산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슬픔과 외로움도 산속에서는

저희들끼리 사이 좋게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글모음(writings)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 가본 산  (0) 2013.10.09
내가 걷는 백두대간 - 기쁨  (0) 2013.10.09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0) 2013.10.09
저를 낮추며 가는 산  (0) 2013.10.09
칠선골  (0) 2013.10.0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