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風水 변천사
풍수의 요체는 무엇인가? '승생기(乘生氣)'이다. '생기를 타는 것'이다. 땅에는 생기(生氣)가 올라오는 터가 있는데, 이 지점을 혈처(穴處)라고도 하고 명당(明堂)이라고도 부른다. 혈처에서 잠을 자면 몸이 개운해지니까 항상 긍정적인 생각만 하게 된다. 마음이 점점 밝아지니까 영성(靈性)이 확장되면서 천지와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25년 넘게 전국의 혈(穴) 자리를 발로 밟아본 풍수 전문가 정택민(鄭澤玟·49)이 필자에게 그 비급(��)을 털어놓았다. 기원전 10세기부터 서기 1세기 무렵에 걸쳐 만들어진 고인돌들이 놓여 있는 위치가 바로 생기가 올라오는 지점들이라는 것이다. 그 무거운 고인돌을 아무 데나 놓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은 '언양지석묘'라고 불리는 울산 언양읍 서부리에 있는 고인돌이다. 9m30㎝×6m70㎝에다 높이가 4m에 달한다. 대략 500t의 무게이다. 돌이 크면 클수록 그 자리에서 올라오는 생기의 구멍, 즉 혈(穴) 자리도 비례해서 크다는 것이 정 도사의 주장이다. 여수 왕바위재 고인돌은 250t가량인데, 그 혈의 형태에 맞추어 고인돌의 모양을 쪼아 놓았다.
고인돌 1000년의 시대가 가고 난 뒤에는 사찰과 고분(古墳)의 시대가 왔다. 서기 1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고분들도 대부분 혈처에 쓴 것들이다. 이 고분들은 좌청룡, 우백호의 형국풍수(形局風水)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주를 가보면 청룡 백호도 없는 평평한 들판에 쓴 고분들이 대부분이다. 들판이지만 이 지점들은 생기가 올라오는 곳임을 확인하고 고분을 썼다. 고대에는 땅의 기운을 눈으로 보고,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지기(地氣)를 느끼는 샤먼이나 도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혈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한시대에 조성된 광주의 장고분(長鼓墳)은 모양이 장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는 혈이 2개 나란히 붙어있으므로 이를 하나로 연결하다 보니까 그 형태가 부득이 장구처럼 되었다는 설명이다. 서기 10세기 이후에 오면서 청룡, 백호와 음양오행을 따지는 형국풍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지기를 몸으로 느끼면 형국이 필요 없지만, 못 느끼면 외형을 따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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