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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의 풍수철학 완성지 구례 사성암(四聖庵)

라이프(life)/풍수지리

by 굴재사람 2012. 11. 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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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의 풍수철학 완성지 구례 사성암(四聖庵)

  • 글·사진 | 조용헌 동양학자·칼럼니스트

 

 

어떤 분야이든지 창시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남이 해놓은 것을 따라 하는 것은 쉽지만, 미지의 영역을 처음으로 개척한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타고난 에너지와 창의력 그리고 인연복(因緣福)이 따라줘야 한 문파(門派)를 개창한다. 일본사람들은 이를 ‘리빠나’(立派)라고 부른다. 문파를 세운 사람은 ‘훌륭하다’는 뜻이다. 일본은 전국시대 죽고 사는 칼부림을 겪으면서 내공을 쌓으려면 문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우리보다 훨씬 먼저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통일신라 말기의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야말로 한 문파를 세운 장문인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정립한 풍수철학(風水哲學)은 1,0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지금까지 한국 사람들의 집터 잡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말이다. 서양철학의 트렌드가 길어야 100~200년이다. 그런데 1,000년 이상 영향력이 유지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 아닌가!


▲ 기운이 강한 암벽 옆에 섬진강을 바라보며 사성암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풍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이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토착화한 인물은 도선국사이다. 더군다나 중국에서는 마오쩌둥 정권을 거치면서 풍수의 맥이 끊기다 시피했고, 홍콩이나 대만에서 유지되는 풍수는 원래의 대풍수(大風水) 사상에서 곁가지로 나간 소풍수(小風水)라고 보아야 한다. 원래 의미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살아 있는 대풍수는 현재 한국이 종주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선이 풍수철학을 정립하기까지의 과정과 사연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제조과정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도선은 어디에서 풍수를 연마한 것인가. 그리고 도선의 스승은 누구란 말인가? 전남 구례(求禮)의 사성암(四聖庵)은 도선이 풍수를 연마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도선은 이곳에서 풍수의 요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철학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초기 최유청(崔惟淸)이 지은 도선국사 비문에 의하면 도선은 젊었을 때에 구례의 사도촌(沙圖村)에서 지리산의 이인(異人)을 만났다고 한다. 그 이인은 수백 살 먹은 인물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지리산의 신선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도촌은 사성암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저 앞으로 보이는 동네이다. 섬진강의 모래가 쌓여 형성된 ‘사도촌’은 모래로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상사도리(上沙圖里), 하사도리(下沙圖里)로 나뉘어 불린다. 도선이 수백 살 먹은 지리산 도사로부터 이곳 사도리의 모래를 쌓아놓고 산의 모양과 강물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야 명당인지를 학습했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칠판에 그림을 그리면서 산천순역(山川順逆)의 모양을 설명했겠지만, 칠판이 없었던 1,000년 전에는 섬진강에서 퇴적된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칠판 역할을 하는 풍수학습장이었던 셈이다.


사성암(四聖庵)이 있는 오산(鰲山)은 표고 350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다. 산은 높다고 장땡이 아니다. 당나라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쓴 ‘누실명’(陋室銘)에 보면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이라고 했던가. ‘산은 높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는 뜻이다. 산만 높고 명인이 살지 않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명산에는 명인이 있어야만 명산으로서 가치가 빛난다. 오산은 지리산의 도사들이 어느 정도 공부가 되면 마지막으로 들러서 마무리 공부를 했던 산으로 전해져 온다. 중간단계 이상을 거쳐 고단자로 승단한 신선과(神仙科)들이 지리산 1,500m급 영봉(靈峰)들의 고단백 에너지를 몽땅 섭취한 다음 이 오산에 와서 되새김하는 공부를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리산파의 마지막 공부코스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산은 지리산의 형님 산’ 이었다고 도사들 사이에 회자되어 온다.


▲ 좌우에 암벽이 꽉 끼일 정도로 바짝 붙은 곳에 자리 잡은 산왕전은 기운이 빠지려야 빠질 수 없는 곳이다.

도선국사, 사도촌에서 지리산 신선 만난 듯
오산 사성암에서 마무리 공부를 마치면 그 다음에 가는 코스는 계룡산이나 금강산이었다. 계룡산이나 금강산은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현실에서 적용해 보는 실전경험 양성 과정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이 350m밖에 안 되는 산이 지리산파의 최종 공부 터가 될 수 있었나? 어떤 점이 매력이란 말인가?


오산에서 마주 보이는 구례 일대의 지리산은 한반도 백두대간의 큰 줄기가 3,000리를 흘러 내려와 멈춘 지점이다. 풍수적으로 해석하면 결국(結局)을 이룬 곳이다. 호박 줄기의 끝에 호박이 열리듯이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끝자락에 기운이 뭉치면서 국(局)을 이룬 지점이다. 섬진강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 다음에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그런데 자그마한 오산이 구불구불 3천리를 내려온 대간(大幹)의 에너지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불교용어로 표현하면 회향(回向)을 시켜주는 기능이라고나 할까. 회향을 하지 않으면 기운이 그냥 분산되어 버린다. 달리 비유하면 반사경처럼 빛을 반사시켜 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적당한 산이 끝에서 하나 받쳐 주어야만 기운이 응집되는 것이다.


풍수에서는 이처럼 기운이 빠지지 않도록 응집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봉우리를 ‘수구(水口) 막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수구막이에 대해서 종종 설명을 하겠지만 양산 통도사에도 가면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 정문 입구에 자그마한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이 봉우리가 있어서 통도사를 관통하는 냇물의 기운을 마지막으로 잡아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게 없으면 통도사의 기운이 세기 때문에 돈도 빠져 버린다. 오산이 바로 이 수구막이 역할과 같다고 본다.


더군다나 이 오산은 지리산처럼 백두대간의 주맥이 아니다. 호남정맥의 끝자락에 해당한다. 호남정맥의 끝자락은 광양의 백운산(白雲山)인데, 오산은 이 백운산의 시작지점이기도 하고 끝자락이기도 하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백두대간의 끝자락과 호남정맥의 끝자락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맥이 다르면 기운도 다르다.


난류와 한류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 고기가 많이 모인다. 기운이 서로 다른 이종격투기가 이루어지는 지점에 스파크가 튄다. 구례 사성암은 바로 이런 산맥의 이종격투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인 것이다.


▲ 오산 정상은 모두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산의 정상은 단단한 바위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양화를 그리는 기법 중에 부벽준(斧劈)이라는 게 있다. 바위나 암석을 붓으로 그릴 때에 도끼로 장작을 패는 것처럼 탁탁 쳐서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사성암이 자리 잡고 있는 오산 정상 바위들의 표면은 도끼로 탁탁 쳐서 다듬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무협지에 등장하면 딱 맞는 분위기의 바위들이다. 주인공이 적과 싸움을 하다가 내상을 입고 숨어 들어와 고수를 만나 다시 공력을 연마하는 장소 말이다. 신비스럽기도 하고 비밀스럽기도 하면서 장쾌한 경관이 연출되는 지점인 것이다. 3~4m 높이의 바위가 총총히 서 있기도 하고 10m 이상의 우뚝 솟은 바위도 서 있는 석림(石林)의 형세이다.


이처럼 단단한 바위가 밀집되어 있는 지세는 기운이 강하다. 바위는 지기(地氣)가 응축되어 있는 신물(神物)이다. 바위가 많으면 기운도 강하다. 에너지가 있어야 도를 닦는다. 바위 속에 있는 광물질로 지구의 자석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는데, 인체의 피 속에도 철분을 비롯한 각종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바위에 앉아 있으면 이 에너지가 피 속으로 들어와 온 몸으로 돌아다니게 된다. 그래서 몇 시간 동안 바위에서 뒹굴 방굴 하면서 머무르면 나도 모르게 땅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오게 된다. 몸이 빵빵해진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면서 놀았다고 하는 지점들을 유심히 보면 거의 대부분 이처럼 지기가 강하게 들어오는 넓적바위들이다. 땅 기운 받으려고 너럭바위에 있었던 것이다. 사성암의 바위들도 마찬가지이다. 바위가 한두 군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자의 이빨처럼 총총하게 암벽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것도 산의 정상에 말이다.


▲ 사성암 주위로 1천m급 봉우리들이 웅위하고, 섬진강이 활처럼 흐르는 바로 앞에는 구례평야가 있어 어디든 먹을 것이 많아, 한마디로 명당인 곳이다.

3천리 뻗어온 백두대간 기운 받쳐주는 지점
천문과 지리를 연구하는 도사가 이런 석림 지점을 절대로 그냥 지나칠 리 없다. 4명의 성인이 공부했다고 해서 사성암인데, 그 4명은 원효(元曉), 의상(義湘), 도선(道詵), 진각(眞覺)이라고 한다. 이 4명도 여기에 와서 이 바위들의 정기를 듬뿍 받았을 것이다. 사성암에는 산신각(山神閣) 자리가 기운이 많이 뭉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왕전(山王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산신각이라는 명칭보다 더 높인 표현이 산왕전이라는 표현이다. 전각(殿閣)이라고 할 때 전(殿)이 각(閣)보다 앞에 오는 이치와 같다.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 사찰 대웅전(大雄殿)의 전(殿)이 아닌가. 그만큼 높여 부른 이름이다.


사성암의 ‘산왕전’이 자리 잡은 터는 아주 기막힌 지점이다. 좌우에 바위 암벽이 꽉 끼이는 여자들의 스커트처럼 양 옆으로 바짝 붙어 있다. 뒤쪽에도 또한 바위 맥이 내려오고 있다. 그야말로 기운이 빠질 수 없는 꽉 조이는 지점에 산왕전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기도를 열심히만 하면 7일 만에도 소원 하나는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압력 밥솥에 넣고 푹푹 찌는데, 어찌 밥이 익지 않겠는가! 절절 끓는 찜질방에서 일주일만 제대로 지지면 어지간한 병은 나을 것이다.


산왕전 바로 옆에는 도선이 공부했다고 하는 도선굴(道詵窟)이 있다. 그 옛날에 이 높은 산꼭대기 지점에 법당을 짓기 힘들었을 것이다. 법당이 있기 전에는 이 자연동굴에서 수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곳이 동굴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수도처는 동굴이 많다. 도선도 아마 이 자그마한 동굴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사성암은 약사도량이니까 기도하는 데가 산왕전이 아니라 약사여래 모셔 놓은 데서 해야 한다. 절벽에 기둥을 세워서 지은 법당이 있다. 이 법당에는 바위 절벽에 손톱으로 그렸다고 전해지는 약사여래의 선각(線刻) 그림이 있고, 이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수 있도록 법당 구조가 되어 있다. 보통 사성암을 찾는 기도객은 여기에서 기도를 한다.


▲ 오산의 정상엔 사자의 이빨처럼 암벽들이 총총하게 밀집되어 기운이 강한 지세를 띠고 있다.

기운이 빠질 수 없는 바위 사이에 기도처
사성암의 암벽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부터 견두산, 지초봉, 간미봉, 만복대, 성삼재, 차일봉, 노고단, 반야봉, 왕시루봉, 천왕봉 등이다. 다시 왼쪽으로 눈을 돌려보아도 백운산에 연결된 광양 일대의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사성암 주위를 1,000m급 봉우리들이 삥 돌아서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자기 혼자 잘났다고 하면 덜 떨어진 인간이다. 주변 사람들이 잘났다고 해야 진짜 잘난 인물이 된다. 사성암 주위로 1,000m급 봉우리들이 웅위(雄衛)하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사성암을 알아주고 있는 형국이다. 주변에서 알아주니까 외롭지 않다. 이처럼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국세라야만 좋은 터이다.


높은 봉우리가 둘러싸면 자칫 답답할 수 있다. 그런데 사성암 앞으로는 널따란 구례평야가 있다. 평야가 있으니까 쌀이 나온다. 어디든지 먹을 것이 나와야 명당이다. 배 고프면 오래 못 간다. 금상첨화격으로 섬진강이 사성암을 활처럼 둘러싸고 흐른다. 이를 풍수에서는 금성수(金星水)라고 부른다. 활, 반달 또는 가락지처럼 둥그렇게 감아 돌면서 흐르는 물을 가리킨다. 사성암을 감아 도는 섬진강의 모습은 금성수에 해당한다. 이렇게 명당터를 둥그렇게 감아 도는 모양은 사성암 아니면 보기 힘들다. 오산의 정상 바위들을 애무하는 섬진강이라고나 할까. 그 애무가 너무나 부드럽고 감미롭다. 곡성, 압록(鴨綠) 쪽에서 내려온 강물은 사성암을 활처럼 감아 돌면서 화개, 하동 쪽으로 흘러간다.


산왕전 뒤의 바위에 올라가서 보면 저 멀리 압록에서 흘러 들어오는 강물이 사성암 앞에서 감아 돌아가 화개 쪽으로 빠지는 모양 전체가 보인다. 거대한 에스(S)자의 모양이다. 이 S자 모양의 강물을 보는 것이 풍수교 신자인 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장관이다. 1시간 이상을 이 모양을 바라다보았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꽃이 피는 5월이 오면 도시락 싸가지고 와서 반나절 동안이나 이 모습을 보고 싶다.


공주의 마곡사(麻谷寺) 대웅전 앞을 감아 도는 냇물도 S자 형국이고, 거시적으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계룡산을 감아 돌아 서해로 빠지는 금강의 모양이 이렇다. 그러나 마곡사 S자는 너무 작고, 계룡산을 감아 도는 금강의 S자는 비행기를 타고 5,000m 이상을 올라가지 않고는 전체 모양을 한눈에 관조할 수 없다. 사성암의 섬진강은 이 중간 사이즈이다. 관조가 가능한 지점이다. 이렇게 감아 도는 물이 있으면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명당이 된다. 높은 지리산과, 구례평야, 그리고 진강이 3박자를 이루면서 조화를 이룬 곳이 오산 사성암 터이다.


산의 흐름, 평야의 인가(人家), 물의 방향을 알면 풍수 공부의 골격은 다 마친 셈이다. 거기에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마주보는 산태극, 수태극의 형국이니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도선국사가 여기에서 풍수를 공부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학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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