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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리오

글모음(writings)/토막이야기

by 굴재사람 2013. 6. 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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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리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한 홀어미가 살고 있었는데,

삼대독자 외아들 하나 키우는 것을 큰 낙으로 삼았다.

헌데 어느날 밤 자고 일어나보니,

하늘같이 믿고 살아온 그 아들이 그만 갑자기 죽어 있었다.

그래서 이 홀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듯 슬퍼하면서

그만 미친듯 저자거리를 헤매고 다니면서 죽어버린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 불쌍한 홀어미의 이야기를 들은 한 스님이 하두 딱해서 이 여자를 구해주려고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보시오, 스님. 어찌하면 내 이 슬픔을 없앨 수가 있겠습니까?'

스님이 이르시길, '부인네여, 너무 그리 슬퍼할 일이 아니오!'

그 어미는 펄쩍 뛰며 '무엇이라구요? 삼대독자 내 외아들이 죽었는데 슬퍼할 일이 아니라니요?'

'그 아들은 원래 없던 것이 아니던가요?'

여인은 기가 막혀서 말했다.

'없던 것이라니요? 분명히 내가 뱃속에서 열 달을 키워 출산을 했고,

젖을 먹이고 밥을 먹여 내 품에서 키웠는데 없었다는 말이 당키나 합니까요?'

'그러면 부인네가 다섯 살, 열 살 먹었을 적에도 아들이 있었습니까?'

'내가 다섯 살, 열 살 먹었을 적에요? 그야 그때는 내가 어렸을 적이니 아들이 없었습지요.'

'그것 보십시요. 20년 전에는 아들이 이 세상에 없었고, 백 년전에는 부인 또한 이 세상에 없었으니

우리는 모두 본래 없던 것. 이 세상 모든 생명있는 것은 한 번 생겨났다가 반드시 없어지게 마련이라,

부인 또한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게 될것이오.'

'그야 나도 늙고 병들면 이 세상을 떠나겠지요.

하오나, 그동한 이 아픈 마음을 대체 어떻게 하란 말씀이십니까?'

'마음이 아프시다고 그러셨습니까?'

'예, 스님. 마음이 찢어질듯 아프옵니다.'

스님은 손바닥을 쫙 펴시면서 말씀하셨다.

'허면 소승이 그 마음으 아프지 않도록 어루만져 드릴 것이니,

어서 그 아픈 마음을 내 손바닥위에 꺼내놓도록 하십시오.'

'예에? 아픈 마음을 스님 손바닥에 꺼내 놓으라구요?'

'어서 꺼내 놓으시래두요.'

'세상에! 세상에! 마음을 어떻게 꺼내 놓으란 말씀이십니까요? 예?'

'그것 보십시오. 알고보면 아픈 마음, 슬픈 마음, 기쁜 마음은 본래 없습니다.

맑기가 한량 없고, 밝기가 한량 없으며, 작을 때는 겨자씨보다도 더 작고,

클 적에는 저 허공보다도 더 큰 이 마음에는 본래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고, 예쁨도 없고, 미움도 없는 법!

다만 어리석은 중생이 번뇌 망상으로 만들어서 기쁘다, 슬프다, 예쁘다, 밉다, 분별하여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하오면 스님, 이 불쌍한 여자는 대체 어찌하란 말씀이십니까요?'

'본래 이 목숨은 풀잎 위에 이슬이요, 물위에 거품이거늘

이슬이요, 거품인줄 알면 그뿐,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리오!'

 

- 윤청광의 <고승열전 8 진각국사. 부처되 쉽다네 자비롭게 살게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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