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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술 이야기, 증류주의 탄생

라이프(life)/술

by 굴재사람 2013. 1. 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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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술 이야기, 증류주의 탄생

 

 

예로부터 문명 간의 충돌이나 정복 전쟁을 통해 새로운 문물이 전파되거나 문화가 창조돼 왔다. 기원전 4세기에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東征)으로 인해 그리스와 서남아시아의 문화가 융합돼 헬레니즘 문화가 생겨났다. 9세기 중엽에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군과 동진을 하던 이슬람 아바스왕조가 탈라스 강 유역에서 충돌하며 중국의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로 퍼졌다. 술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명으로 여겨지는 증류법의 전파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만 보아도 지역에 따라 위스키, 브랜디, 진, 보드카 등의 대표적인 증류주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아시아권을 보면 중국의 백주, 한국의 증류식 소주, 일본식 소주 등이 대표적인 증류주로 손꼽을 수 있다.

증류기를 통해 추출되고 있는 알코올

기초적인 증류법은 기원전 2000년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됐다. 그곳의 바빌로니아인들은 증류의 원리를 탐구하고 원시적인 증류 장치를 개발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초기에는 주로 선원들이 바닷물로 식수를 얻거나 향수를 만드는 데 이런 증류법을 사용했다. 현재 사용하는 증류기법의 원형과 우리가 술이라 부르는 ‘알코올’이란 이름이 나온 것은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인 서기 8세기께 중세 이슬람 화학자들에 의해서다. 화학자 자비르 이븐 하이얀은 와인을 증류해 얻어진 물질에 알코올이란 이름을 붙였다. 아랍어 정관사인 알(Al)에 속눈썹을 더욱 길고 윤기 있게 보이게 하기 위해 이용했던 일종의 숯(Kuhul)이란 단어를 붙여 알코올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술을 금하는 이슬람 세계에서는 알코올을 술로 사용하기보다는 향수나 다른 화학물질의 원료로 사용했다.

위스키, 진 등 다양한 종류의 증류주

11세기 말 유럽 사회는 영토 확장에 대한 영주들의 욕구가 높았다. 장남과 달리 상속권이 전혀 없던 차남들은 자신들의 봉토 확보가 필요했고, 로마 가톨릭 교황의 성전 참여 독려로 유럽 전역에 걸쳐 불에 기름을 붓듯 맹렬한 기세로 십자군 결성운동이 일어났다.

연금술사, 새 물질 만드는 데 증류법 사용

무려 200년 가까이 이어진 십자군 전쟁은 유럽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최고의 과학집단이라 할 수 있는 연금술사들이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데 이 증류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가, 13세기 프랑스 의학자였던 빌뇌브(Villeneuve) 교수가 이슬람 화학자 자비르가 발견한 알코올, 즉 증류주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빠르게 퍼지게 됐다. 금을 만들려는 연금술사들처럼 당시 의사들은 만병통치약을 찾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했는데, 빌뇌브 교수도 새로운 약을 찾기 위해 시도하던 도중, 증류법을 통해 알코올을 추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증류주에 만병통치약이라는 뜻의 ‘생명의 물(Aqua Vitae : 아쿠아 비떼)’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

14세기 중반 창궐해 유럽 전체 인구 3분의 1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의 공포는 알코올의 확산을 부추겼다. 페스트의 원인도 모르고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알코올이 이 불가사의한 질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알코올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때까지 알코올은 약용이 목적이었다. 15세기가 되어 독일의 연금술사 브라운 쉬바이그는 <증류 기술>을 저술했다. 이 책은 증류만을 독자적으로 다룬 증류법을 알렸으며 이를 통해 증류주의 생산을 촉진시켰고 거대한 증류기를 이용한 위스키, 브랜디, 보드카, 진 등의 생산이 이어지게 됐다.

우리나라의 정통 안동소주

서양의 증류주가 십자군 전쟁을 통한 증류기술 전파로 인해 탄생했다면, 동양의 증류주는 몽골의 정복 활동으로 이뤄졌다. 13세기 초 칭기즈칸의 대를 이은 오고타이칸은 동방정복과 함께 서쪽으로도 눈을 돌려 폴란드, 키예프, 이란까지 영토를 넓혔다. 이로써 동유럽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유래 없는 대제국이 세워졌다.

몽골은 끝까지 저항하는 국가에 대해선 무자비할 정도로 파괴하고 말살시키는 정책을 펼쳤지만 교역과 조공관계를 수용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유연한 개방 정책을 사용했다. 능력에 따라 타 민족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고 새로운 문물이나 문화, 종교에 대해서도 편견 없이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서는 안전하게 교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런 몽골리안 루트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와 기술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레이카 보드카

폴란드와 북쪽으로 키예프까지 정복한 몽골은 남쪽으로 눈을 돌려 서남아시아로 진출하게 된다. 제4대 칸인 몽케의 동생 훌라구가 이란과 이라크를 정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증류법을 습득하게 됐을 것이라 전해진다. 그 전까지는 양젖을 발효시킨 술을 마셨으나 보관성이 떨어지고 그 부피로 인해 장거리 운송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빠른 기동력이 장점인 몽골에게 보관과 운송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증류주는 거의 천상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 증류법은 중동에서 몽골리안 루트를 통해 중국에 빠르게 전파돼 황주를 중심으로 지역적 특성을 살린 다양한 백주가 등장하게 됐으며, 우리나라까지 전해지며 안동소주와 같은 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가 탄생하게 됐다. 서쪽으로는 킵차크한국의 영토였던 폴란드와 키예프 지역을 중심으로 감자를 주원료로 만든 증류주가 만들어 지고, 이후 발트해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는데 그 증류주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는 러시아의 대표 술인 보드카다. 일본으로의 전파는 태국을 통해 유구국이었던 오키나와를 거쳐 16세기 초 규슈지역에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라키(あらき)라 불렸던 기록으로 보아 그 기원은 역시 몽골을 통해 태국에 전파됐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렇듯 몽고리안 루트를 통해 수천㎞가 넘는 머나먼 중동지역의 증류법이 짧은 시간에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타 문화에 배타적이지 않고 빠른 교역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한 몽골로 인해 각 나라마다 특성에 맞는 다양한 증류주가 계승 발전됐다. 명품주로 꼽히는 중국의 8대 명주, 우리나라의 안동소주 등도 8세기 전 비록 침략은 당했지만 몽골에게서 얻어진 큰 결실로 볼 수 있다.


/ 이코노미플러스
박준호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 전 유니레버코리아 식품사업 총괄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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