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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子之敎

라이프(life)/명리학

by 굴재사람 2012. 12. 1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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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易子之敎

 

 

'자식을 서로 바꿔서 가르친다'가 '역자지교'(易子之敎)의 의미이다. 왜 우리 선조는 자기 자식을 자기가 가르치지 않고 다른 사람(친구나 선후배)에게 맡겨서 가르치게 했던가. 자기 자식은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자식이 웬수'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티베트의 환생 이론에 따르면 전생에 원수였던 인연이 자식으로 태어나는 수가 있다고 한다. 부모 자식 관계로 만나면 '빼도 박도' 못한다. 자식은 버릴 수도 없고, 무관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 속 썩임을 고스란히 당하는 수밖에 없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셈이다.

명리학에서는 자식을 '관'(官)으로 본다. 관(官)은 벼슬도 되지만 동시에 자식에 해당한다. 관운이 좋은 사람은 대체로 순종적인 스타일이 많다. 상사에게 고분고분한 예스맨이 승진을 잘하는 경향이 있다. 관은 자기를 억압(克)하고 통제하는 속성을 의미한다. 자식이라는 존재도 벼슬과 마찬가지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가 이것을 말한다. 자식은 끊임없이 부모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자식이 고집을 부리고 생떼를 쓰면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자식은 부모에게 겸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선생이 되기도 한다. 자식이 속을 썩일 때마다 '우리 자식이 나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속이 편해진다.

살아보니까 칼럼을 잘 쓴다고 자기 자식 잘 교육하는 것도 아니고, 동양 사상을 공부했다고 해서 자식 문제에 초연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선조는 자식이 대략 10대 중반 무렵 사춘기가 되면 학식이 높은 친구나 선후배에게 자식을 맡기는 풍습이 있었다. 계속 집에 데리고 있으면 부모 자식 간에 성질만 나고, 충돌만 일어난다는 이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예학(禮學)의 종장으로 일컬어지는 사계 김장생을 보면 13세 때 집을 떠나 도학으로 이름이 높았던 송구봉(宋龜峰)에게 맡겨진다.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는 친구였던 송구봉에게 자식을 맡겼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자식을 친구에게 보내서 교육하는 '역자지교'의 사례가 많았다. 친구들끼리 서로 자식을 교환해서 인생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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