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스님
1
경허(1846~1912)는 늘 어린 제자 만공을 데리고 탁발을 다녔다.
어느 날 경허는 단청불사권선문을 써 사람들에게 돌렸다.
사람들이 절에 단청을 하라고 돈을 내기도 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곡식을 내어주었다.
그런데 경허는 이를 가지고 주막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경허는 아예 허리띠를 풀어놓고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아니 스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단청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 녀석아, 불전에 이렇게 불그스레 단청을 했지 않느냐!"
경허의 얼굴은 이미 홍단청이 되어 있었다.
2
탁발을 해서 천장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린 만공이 "바랑이 너무 무거워서 힘들어 죽겠다"며 투덜댔다.
"그러면 가진 것을 버리든지,
그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든지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스님, 애써 탁발한 것을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요?"
"그러면 길은 하나뿐이구나."
때마침 앞엔 곱상한 여인이 물동이를 인 채 가고 있었다.
"이보시오, 처자!"
여인이 뒤를 돌아본 순간이었다.
경허가 다가가 입을 쭉 맞추어버렸다.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입술을 빼앗기고 만 여인은
너무도 놀라 악을 썼고, 물동이는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이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낫과 괭이를 들고 쫓아오기 시작했다.
경허와 만공은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을 쳤다.
쉬지않고 10여 리나 달렸을까.
마을 사람들의 외침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경허가 만공에게 말했다.
"지금도 바랑이 무거우냐?"
-은둔 / 조연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