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진의 길 위에서] 가오리찜과 돼지 족탕이 막걸리 부르는 南道 주막
봉동길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을 동서로 가로지른다. 반듯한 건물과 상가가 늘어선 중심 도로다. 그 길 중간, 읍 시가지 복판에 70년 넘은 누옥(陋屋)이 거짓말처럼 끼여 있다. 잿빛 슬레이트 지붕이 주저앉을 듯 낮다. 지붕 앞에 주름 잡힌 함석판으로 간판을 세웠다. '동아식당'이라고 쓴 검정 페인트도 빛이 바랬다.
미닫이 유리문엔 차리는 음식을 써놓았다. 가오리찜, 돼지주물럭, 두부김치…. 술꾼 아니라도 막걸리를 떠올릴 안주들이다. 토요일 낮 두시, 어둑한 실내에 탁자 다섯이 벽 따라 놓여 있다.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사내 둘이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일행 넷이 안쪽 자리에 앉았다. 아내들은 엉거주춤 '뭐 이런 데가 있나' 하는 표정이다. 늦은 아침을 든 지 얼마 안 돼서 가오리찜 하나만 시켰다. 여주인이 뒤꼍에서 하루 이틀 말린 가오리를 들고 와 솥에 넣는다.
가오리가 익는 사이 찬이 깔렸다. 씻어서 볶은 묵은 김치, 매콤한 파김치, 콩자반, 멸치볶음, 콩나물무침까지 하나같이 소박 친근한 집 반찬이다. 무말랭이에선 햇빛 좋은 마당에 펼쳐놓고 뒤적여 말리던 그 냄새가 난다. 요즘 음식점 무말랭이는 물엿 범벅이어서 젓가락이 안 가는데, 이건 고소하고 쫄깃한 게 제맛이다.
국은 멸치국물에 무를 큼직큼직 썰어 넣고 고춧가루에 소금 간을 해 끓였다. 반으로 갈라 내장 뺀 국물 멸치가 들어 있는 것도 어릴 적 밥상 그대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딸가닥 딸가닥 수저 소리 내던 따스한 시간들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접시 가득 담긴 달걀 프라이가 눈길을 잡아끈다. 달걀 다섯 개를 한꺼번에 부치고 다진 부추와 고추를 올렸다. 시골 식당 후한 인심이 덩달아 얹혔다.
신바람 난 일행이 "돼지주물럭도 맛있을 것 같다"며 주문했다. 여주인이 "일단 드셔 보고 시키라"고 말린다. 작은 솥뚜껑만한 가오리찜이 나왔다. 파·당근·고추를 고명으로 얹고 접시 가장자리를 빙 둘러가며 곱게 썬 부추를 수북이 쌓았다. 야들야들한 살점, 오돌오돌한 물렁뼈 몇 젓가락에 막걸리 주전자가 금세 동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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