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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땅끝 절' 해남 미황사에서 만난 母女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2. 3. 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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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진의 길 위에서] 아름다운 '땅끝 절' 해남 미황사에서 만난 母女

 

 

코끝이 맵도록 웃풍이 세다. 방바닥까지 미지근해서 깊은 잠 못 들고 뒤척였다. 갑자기 방문 앞에서 목탁이 울렸다. 염불도 낭랑하게 이어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가 안 됐다.

스님이 객사(客舍) 향적당 앞을 오가며 두드리던 목탁 소리가 점점 대웅전 쪽으로 멀어졌다. 도량석(道場釋)이다. 새벽 예불에 앞서 절을 깨끗이 하기 위해 경내를 돌며 찬가(讚歌)와 게(偈)를 읊는 의식이다. 잠든 만물과 중생을 깨우는 소리다. 절집에 묵어가는 길손과 템플 스테이에 온 수행자들에겐 기상나팔인 셈이다.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어 마루로 나갔다. 향적당 외등(外燈)을 에워싸고 하얀 점들이 분분히 날렸다. 눈이 오고 있었다. 대웅전 마당 끝, 어둠 속에 등불 하나 밝힌 누각 자하루는 흰 점을 무수히 찍어놓은 한 폭 점묘화(點描畵)다. 눈발이 어찌나 고요히 내리는지 정지된 화면 같다. 겨울 끝자락에서 만난 산사(山寺)의 새벽 설경(雪景)에 넋을 빼앗긴 채 한동안 서 있었다.

그 정적(靜寂)을 종소리가 깨뜨렸다. 이렇게 가까이서, 이렇게 웅장하고 장엄한 범종 소리를 듣기도 처음이다. 한 차례 타종 뒤로 낮고 길게 웅웅대는 울림에 가슴이 멍멍하다. 공명(共鳴)의 여운이 채 끝나기 전에 다시 종이 울린다. 불자(佛子) 아니어도 스물여덟 번 범종 소리는 귀로 듣는 선계(仙界)다.

그제야 방바닥이 따끈해져서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깼다. 창으로 어슴푸레 빛이 스며든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절을 병풍처럼 둘러친 달마산이 온통 은빛이다. 나무서리, 상고대로 뒤덮였다. 달마산 뒤에 숨은 해가 마저 떠오르면 신기루처럼 스러져버릴 몽환적 겨울꽃들이다. 달마산이 건네는 뜻밖의 선물을 놓칠세라 눈과 마음과 카메라에 부지런히 담았다. 미황사의 아침은 그렇게 밝아왔다.

지난 2월 하순 전남 해남 미황사에서 하룻밤 묵었다. 절집에서 자고 싶다는 묵은 바람을 미황사에서 풀기로 한 것은 이 절이 지닌 아름다움에 끌려서였다. 달마산은 해남반도 남쪽 땅끝까지 펼쳐진 들판에 느닷없이 솟아 있다. 창처럼 뾰족뾰족 솟구친 암봉들엔 누가 봐도 비범한 기운이 서렸다. 그 바위들이 1만 부처 같아 고려 때 송나라 사람들이 찾아와 경배했다는 명산이다. 달마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완도, 서쪽으로 진도, 남쪽으로 땅끝이 내려다보인다.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1300년 신라 고찰(古刹) 미황사는 '남도의 금강' 달마산의 품에 안겨 진도 바다를 바라본다. 해남 대흥사의 말사(末寺)로, 전각도 몇 안 된다. 하지만 내외국인 합쳐 한 해 5000명이 참선을 하고 가는 템플 스테이 명소다. 그래서 서양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웅전 왼쪽 언덕 향적당은 참선 프로그램과 별도로 개인에게 방을 내주는 숙소다. 옆방에 곱게 나이 든 서양 아주머니가 들었다. 앳돼 보이는 한국 아가씨와 함께 왔다. 향적당 앞에서 마주쳐 "안녕하세요"라고 짤막한 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 다 그 이상 한국말은 못하는 것 같았다.

공양간에서 저녁을 들 때도 두 사람과 마주앉았다. 공양 자체가 말을 삼가는 묵언(默言) 수행이어서 이야기는 못 나눴지만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식사 모습을 보게 됐다. 두 사람은 그리 서툴지 않은 젓가락질로 김치며 나물을 두루 잘 먹었다. 서로의 접시에서 스스럼없이 반찬을 집어다 먹곤 했다. 내내 눈을 맞추며 미소가 떠나지 않는 두 사람 사이 사랑이 밥상 너머로 전해왔다.

이튿날 아침 양지바른 향적당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셨다. 마침 방에서 나오는 서양 아주머니를 만났다. 젊은 아가씨는 아침 공양을 마친 뒤 늦잠에 빠져 있는 사이,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짐작한 대로 두 사람은 입양으로 맺어진 모녀였다. 그녀는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왔다고 했다. 다섯 살 한국 아이를 입양해 친딸과 똑같이 키웠노라고 했다. 하지만 직업 때문에 가족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느라 딸에게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더니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부산에 영어 강사로 자리 잡은 딸을 보러 와 함께 열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모녀가 한국의 자연과 문화를 접하는 여행길이다.

절에서 처음 자보는 미국 여인이 늦추위 매서운 날 홑겹 절 옷을 입고 향적당 옆 화장실을 오가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의 얼굴은 시종 편안했다. 미황사가 참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오기를 잘했다고 했다.

그녀의 미소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딸과 함께하고 있다는 기쁨에서 나왔으리라. 그녀와 대화하는 사이 마음까지 훈훈해진 것이 늦겨울 아침 햇살 덕분만은 아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모성(母性)을 만나고 미황사를 나서는 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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