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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에 가는 이유는 - 라인홀트 메스너

라이프(life)/레져

by 굴재사람 2012. 2. 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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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에 가는 이유는
- 산악계에 살아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 -


처음으로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한 오스트리아계 이탈리아인 라인홀트 메스너(63),
그는 누구인가?

산과 사막과 인생은 어떻게 보면 서로 비슷할지 모른다. 끝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번 가본 사람도 다시 가보면 조금은 익숙할지 몰라도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더욱이 인생은 반복이 없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이 되돌리지 못하는 인생의 시간 대부분을 산에 바친 위대한 산악인이 있다. 현존하는 산악인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단순한 산악인으로서 업적뿐만 아니라 그가 겪었던 산에 대한 느낌과 감회, 경외감, 내면의 사색 등을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겨 산악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그가 낸 책만 해도 20권이 넘는다. 인류 최초로 8000m 이상 히말라야 14좌 완등한 산악인이자 모험가,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등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계 이탈리아인인 라인홀트 메스너(63)가 바로 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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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며 현존 세계 최고의 산악인으로 불리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모습.


그가 2000㎞가 넘는 고비사막을 6주 동안 홀로 걸어서 횡단하고 그 기록과 내밀한 고백을 책으로 냈다. 2004년 5월 배낭, 특수 제작된 물통, 위성항법장치가 내장된 시계만을 지닌 채 동고비 사막의 바얀트우카를 출발, 유목민들의 천막집을 전전하면서, 목동생활을 하는 유목민의 도움으로 텅 빈 사막을 걸어서 가로지르는 6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무(無)로의 여행, 마음으로의 여행 〈내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황금나침반 刊)란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책 서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고비사막 횡단은 25년 전부터 열망하던 일이었다. 나를 찾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비로소 내 안에 자리한 사막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16시간씩 50㎞를 걷는 강행군을 한 메스너는 스스로 “내 실행 능력과 고통 극복 능력의 한계에까지 가보는 여행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70년 세계 9위봉 낭가파르바트(8,126m)를 오를 때 동상으로 발가락 6개를 자르는 아픔을 겪었다. 이어 90년 남극탐험 사상 최초로 걸어서 남극 대륙 2,740m를 횡단할 때 발목이 부러진 상황에서 무려 수십㎞를 걷는 불굴의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발은 당시 입은 상처로 엄지 발가락과 발등을 연결하는 뼈가 튀어나와 걷는데 불편함과 아픔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신체적 상황을 극복하고 이룬 쾌거는 정말 ‘세기의 철인(鐵人)’이 아니면 이룰 수 없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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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트 메스너가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하고 얻은 결과인 그의 발가락.
희생 없이 얻을 수 없는 성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모습이다.


그의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은 책 곳곳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머리가 버티려고 하는 한 다리는 견딜 수 있다.”
“열다섯 살 때는 돌로미테의 수직 암벽들 속을 누볐고, 스물다섯 살에는 낭가파르바트 산의 루팔 벽에 올라갔고, 서른다섯 살에는 단독으로 산소마스크 없이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올라섰으며, 마흔다섯 살이 되어서는 남극 지방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나의 길은 이제 예순 살의 나이에 나를 고비 사막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는 한계상황 극복에 대한 감상을 인간 내면에 대한 심오한 사색으로도 이끌어내고 있다.
“자신감이 전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이 결핍된 존재로서 자신의 무기력과 절망을 의식하고 자신이 결국 모래알처럼 버려졌다고 느낄 때에야 현세는 시작되는 것이다. 피안은 그 뒤에 있는 무(無)이다.”

“사막은 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준다. 사막의 텅 비어 있음이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고 언제나 경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자신 안의 텅 비어 있음에 대한 경탄 아닐까? 모세, 그리스도, 무하마드 등 종교 창시자들만 사막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 위해 사막으로 갔다. 그 곳은 기분을 전화시켜 줄 수 있는 오락거리가 있는 게 아니다. 사막에서는 사방 어디서나 늘 똑같은 그림만 보일 뿐이고 모래알들 사이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 소리뿐이다. 이것이 정적이다. 그런데도 광활한 사막은 숨을 쉬고 말을 하고 빛을 발한다. 무한성과 영원성에 대한 예감이 사막에서는 우리 자신의 제한성과 연약함과 만난다. 사물과 자극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우선 자기 자신에 놀라 움찔한다. 그리고 완전히 아무 것도 없는 무에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난다. 이런 긴장 속에서 자기 안에 있는 사막을 발견한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그의 모습, 이른바 세기의 철인(哲人)의 자세도 역력히 볼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여준 히말라야 14좌 완등 기록을 한번 살펴보자.

▶26세 때인 1970년 세계 9위 낭가파르바트(8,126m)봉을 등반사상 처음으로 무산소로 등정. 하산 길에 조난당해 동행한 동생 잃고 동상으로 발가락 6개 잃음.

▶72년엔 마나슬루(8,156m)봉을 등정. 히말라야 14좌중 2곳 정상을 밟음.

▶75년 세 번째 도전한 산이 히든 피크라 불리는 가셔브롬Ⅰ(8,068m). 동료 하벨러와 둘이서 셰르파나 포터 도움 없이 북서벽 루트를 개척해 단숨에 등정 성공. 8,000m급 산에서 최초로 시도해 성공한 알파인 스타일 등반.

▶78년 네 번째 도전한 산이 에베레스트(8,850m)로, 하벨러와 함께 등반사상 첫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기록. 이어 80년에도 등반 성공. 메스너가 처음으로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오르자, 독일 유력신문 슈피겔은 ‘그는 기술 발달을 멈추게 했다. 그것은 인간(인간의 능력)을 한층 진화시키기 위해서였다.’라고 보도했다. 영국 사람들은 “처음으로 인간이 에베레스트를 올라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79년 독일인 다허와 함께 K2(8,611m) 정상 정복. 14좌중 다섯 번째 성공.

▶81년 시샤팡마(8,046m)를 여섯 번째 성공.

▶82년 한 시즌 3개봉 연속 등정 성공. 칸첸중가(8,586m), 가셔브롬Ⅱ(8,035m), 브로드 피크(8,047m). 84년엔 가셔브롬Ⅰ봉과 Ⅱ봉의 종주 등반.

▶83년 초오유(8,201m)를 14좌중 10번째 성공.

▶85년 안나푸르나(8,091m), 이어 다울라기리(8,167m)도 한스 카멀란더와 북동릉을 경유하여 사흘 만에 등반 성공.

▶86년 마칼루(8,463m) 이어 세계 최초로 42세 나이로 로체(8,516m)봉 등정.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개를 16년에 걸쳐 세계 최초로 마무리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메스너가 가지고 있는 기록은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말고도 15차례의 무산소 등정과 7차례의 루트 개척 등이 있다. 메스너는 자연과 직접 호흡하기 위해 산소통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집단 등반이 아닌 한 두 명만이 자일 파트너로 참여해 직접 장비를 짊어지고 등정하는 알파인 스타일의 개척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등반업적 뿐만 아니라 산에 대한 그의 소회와 삶의 자세는 또한 어떤가. 감동이 넘친다. 세기의 철인(鐵人)이 아니라 철인(哲人)의 수준이다.

“탐구해야 할 것은 산이 아니라 인간이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오른 것이 아니다. 그랬으면 성공의 보장을 위해 처음부터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했을 것이다. 나는 이 자연의 최고 지점에서 자기 자신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에베레스트의 장대하고 준엄한 모든 것을 내 팔에 안고 싶었다. 이런 일을 산소마스크의 힘을 빌려서는 할 수 없다. 나는 처음부터 유토피아에서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의사와 물리학자와 등산가들의 논쟁의 초점이던 8,848m의 고봉 에베레스트의 무산소 등정의 가능성이 바로 나의 유토피아였다.”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그 대신 산으로 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답을 기대한다. 산은 모든 사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그 곳에는 매일 새로운 답이 있다.”

“인간이 살지 않는 지구위의 별천지! 그러나 이 오지에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숲과 야생화와 초원의 천국이다.”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난 두려움을 통해 이 세계를 알고 싶고 또 새롭게 느끼고 싶다.”

“등산의 진정한 예술은 살아남는 것이며, 가장 어려운 시점은 그 때까지 전형적인 등반업적으로 여겨졌던 것을 이루어내면서 자신이 한 단계 더 전진하려고 시도할 때이다. 그 전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던 곳으로, 어느 누구도 따르고 싶지 않은 곳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하는 것이거나 심지어 자신이 하고자 노력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미지의 지역에선, ‘잘 길들여진’땅으로부터의 어떠한 감동과 감각, 경험보다도 단연 더 큰 긴장과 집중을 가져다준다.”

“걸어갈수록 사막은 더 넓어졌다. 목적지이기를 사양하는 것 같았다. 사막은 정상이 있는 산과는 달리 열려있을 뿐이고, 피안의 희망처럼 내 안에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장소의 명칭도 사막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목표지향적인 열광도 맞지 않았다. 사막은 형태도 없었다. 다만 통째로 경험하거나 피할 수 있을 뿐이었다.”

“도움을 바라면 겁이 나기 마련이다. 황무지에서 자신의 불안에 내맡겨진 사람은 미쳐 버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계를 넘어가는 모험을 하자면 방치된 상태를 겪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죽음이 삶에 속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죽음은 설령 멀리 있다 하더라도 사막에 가는 조건부 선택이며, 그러한 두려움이 없는 모험은 결코 모험이 아니다.”

“외로움은 기다림과 더불어 켜져서 나의 용기를 꿀꺽 삼켜 버릴 듯하다가 걸어가는 동안 줄어들었다. 다만 저녁때가 되면 무거운 짐처럼 다시 나를 덮쳤다. 매일 아침마다 그 고독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내몰리는 자가 되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생의 고비를 만난다.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세계, 시간을 잃은 세계,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고향에서 마음의 쉼을 얻다.”

그의 등반에 대한 자세는 다음과 같은 이 한가지의 모습으로 전부 보여질 수 있겠다.
지난 1988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벌어진 제15회 동계올림픽대회에서 세계 14좌를 최초로 완등한 그와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에게 올림픽 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자,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등반에서는 싸우는 상대도 없고, 심판도 있을 수 없다. 단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메달을 받는다는 것은 등반이 경쟁임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수영이나 스키 등은 경기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경기가 아니다. 그리고 산을 오른다 해도 루트가 각기 다른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겠나. 이것이 내가 수상을 거부했던 이유이다.”

그의 인생은 모험, 그 자체였다. 그는 90년 2월엔 아르베트 푸크스와 더불어 남극 탐험사상 최초로 걸어서 남극대륙 2,749㎞를 횡단했으며, 93년엔 동생 후베르트와 함께 최초로 그린란드 설원 2,000㎞를 90일 동안 남북으로 종단하기도 했다. 티베트 동쪽, 서고비사막 등을 횡단 등도 걸어서 횡단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으로도 5년간 활동한 그는 어쩌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의 성향을 끝까지 내비치고 있다. 유럽의회 의원을 관두고 나선 이번 고비사막 2,000㎞ 횡단이 어쩌면 그의 생에 마지막 여정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나이, 신체 상황 등을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그는 이 지구상을 누비고 다닐 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다 인생의 마지막을 맞았을 때 그는 무슨 말을 한마디 남길까?

“난 내 인생을 성실히 살았다?” “난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게끔 살았다?” “신은 산에도, 사막에도, 어느 곳에도 없었다. 신은 오로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아니면 아예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까.

그의 삶에 안주하지 않는 자세, 모험심, 불굴의 도전 정신 등은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다. 그의 삶을 보통 사람들은 한번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 14좌는 다음과 같다.

01. 에베레스트 (Everest ) 8,848m 네팔/중국
02. 케이투 (K2) 8,611m 파키스탄/중국
03. 캉첸중가 (Kangchenjunga) 8,586m 네팔/인도
04. 로체 (Lhotse) 8,511m 네팔/중국
05. 마칼루 (Makalu) 8,463m 네팔/중국
06. 초오유 (Cho Oyu) 8,201m 네팔/중국
07. 다울라기리 (Dhaulagiri) 8,167m 네팔
08. 마나슬루 (Manaslu) 8,163m 네팔
09. 낭가파르밧 (Nanga Parbat) 8,125m 파키스탄
10. 안나푸르나 (Annapurna) 8,091m 네팔
11. 가셔브룸1봉 (GasherbrumⅠ) 8,068m 파키스탄/중국
12. 브로드피크 (Broad Peak) 8,047m 파키스탄/중국
13. 가셔브룸2봉 (Gasherbrum Ⅱ) 8,035m 파키스탄/중국
14. 시샤팡마 (shisha Pangma) 8,012m 중국

14좌 이후에 발견된 8,000m급 이상 되는 고봉을 합쳐 요즘은 16좌라고도 한다. 한국의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유일하게 16좌에 오른 인물이다.

15. 얄룽캉 (Yalung Kang) 8,505m 네팔
16. 로체샤르 (Lhotse Shar) 8,400m 네팔/중국


출처: 박정원 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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