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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 스님 일화

글모음(writings)/토막이야기

by 굴재사람 2011. 11. 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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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제자 욕쟁이 춘성(春城 1891~1977) 스님의 일화




춘성(春城) 스님 - 1891년 3월 30일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 13세에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20세에 동선 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25세에 평안도 안변 석왕사에서 전문강원 대교과를 수료, 강학(講學)을 전공하고 강백(講白)으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40세에 덕숭산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 휘하에서 정진하였으며, 금강산 유점사에서 활연대오했다.

45세에 25하안거를 성만했으며, 60세부터 망월사에 주석했다. 1977년 8월 22일 화계사에서 세수 87세 법랍 74세로 입적했으며, 유언에 따라 사리와 재는 서해에 뿌려졌다.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써서 욕쟁이스님으로도 통했으나, 평생을 옷 한 벌 바리때 하나만으로 살다간 무소유의 실천가이다.

만해 한용운의 유일한 상좌이자 대선사 만공의 법제자였으며, 용성 스님 밑에서 화엄학을 공부한 春城은 허위의식 없이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禪지식인이었다.

한국 선종의 맥을 이은 선승이자, 한 평생을 탈속한 무애도인(無碍道人)으로 살았던 춘성 스님의 진면목은 갖가지 기행과 걸쭉한 육두문자로 행한 호탕한 설법, 철저한 무소유의 실천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욕은 <벽암록>을 뛰어넘는 시대의 공안(公眼)이자 카타르시스였다.



[춘성스님 1화 : 어찌 따뜻한 방을 쓰랴]

춘성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기미 독립선언서에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대표로 서명,

33인 중의 한분으로 왜정에게 체포되어 갇히자, 지극 정성으로 스승의 옥바라지를 했다.

춘성은 스승이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엄동설한에도 아궁이에 불을 피우지 않은채,

냉방에서 견디고 있었다. 이때 그 절에 찾아왔던 다른 스님이 돌아보니 절에는 뗄감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을 때지 않은채 냉방에서 자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고 춘성에게 물었다.

"아니, 저렇게 땔감이 많이 있거늘 어찌하여 아궁이에 불을 피우지 않고 냉방에서 덜덜 떨면서 자는 게요?"

"그야 물론 장작이야 넉넉히 있지요. 허나, 스승께서 독립운동을 하다

왜놈들한테 붙잡혀 지금 서대문형무소 추운 감방에서 떨고 계실 텐데,

제자인 내가 감히 어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수 있겠습니까?

스승께서 나오시기 전에는 결코 아궁이에 불을 넣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겨우내 아궁이에 불을 넣지 않았다.


[춘성스님 2화 : 너는 내 제자가 아니다. / 저에겐 은사가 안계십니다]

춘성은 만해 한용운 스님의 유일한 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만해스님도 춘성을 늘 자랑했고, 춘성 또한 만해스님의 제자임을 당당히 여기고 있었다.

만해스님이 형무소에서 엄동설한에 고생할 때, 제자 춘성은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온 솜바지 저고리를 드렸다.

제자가 만들어온 새 솜바지 저고리를 넣어드리자 만해스님이 제자에게 물었다.

"이것 보아라. 이 솜바지 저고리를 만들라면 수월찮게 돈이 있어야 할텐데,

그대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 비싼 솜바지 저고리를 만들어 왔느냐?"

"사실은... 달리 돈을 마련할 길이 없기에 절에 딸린 텃밭을 팔아 그 돈으로

이 솜바지 저고리를 만들어 왔습니다. 걱정 말고 입으십시오."

"네 이놈! 절에 딸린 텃밭은 부처님 재산이거늘, 그걸 감히 네 마음대로 팔았단 말이더냐?"

"텃밭은 나중에 다시 사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될 소리! 너는 부처님의 재산인 사중 땅을 사사롭게 쓰기 위해

함부로 팔아 먹었으니 죄중에도 큰 죄를 지었다. 나는 너 같은 상좌를 둔일 없으니

오늘부터 당장 내 제자라는 소리는 입 밖에 내지도 말라!"

만해스님은 이렇게 매섭게 제자를 꾸짖고 정성들여 만들어온 솜바지 저고리 받기를 거절했다.
그 후로는 누가 물어도 춘성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게는 은사가 안계십니다."


[춘성스님 3화 : 내 좆을 믿어라]

춘성 스님이 서울역 앞에서 전차를 타셨는데,

그 당시에도 "예수 믿으면 천국, 불신지옥"을 써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이 스님이 타신 칸에 우르르 몰려타더니, 웬 늙은 중이 앉아 있는 곳에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죽은 부처를 믿지 말고, 부활하신 우리 예수를 믿으시오. 그래야 천국 갑니다."

그러자 전차 안의 모든 사람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춘성 스님이 기골이 장대하기 때문에 필시 싸움이 일어날 걸로 생각했다.

춘성 스님이 그 말을 한 사람을 가만히 올려보더니 물었다.
- 부활이 뭔데?
-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요. 부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만,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소.

그러니 죽은 부처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더 위대하지 않소? 예수님을 믿으시오.

춘성스님이 또 그 사람을 빤히 쳐다보더니 물었다.
- 죽었다가 살아나는게 부활이라?
- 그렇소.

- 그럼 너는 내 좆을 믿어라.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죽었다가 도로 살아나는 것은 좆밖에 보지 못했다.

내 좆은 매일 아침 부활한다. 예수가 내 좆하고 같으니 너는 재 좆을 믿거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전차 승객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다.


[춘성스님 4화 : 주소는 엄마 보X, 본적은 아버지 자X]

6.25 직후 춘성스님이 서울 도봉산 망월사(望月寺)를 혼자 지키고 있었을 때

절이 퇴락할대로 퇴락하여 보수공사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여서 망가진 절을 보수하려고

산에서 직접 나무를 베다가 산림법 위반으로 경찰서에 잡혀갔다.

경찰이 주소를 묻자 "우리 엄마 보X"라고 대답했다.
경찰이 다시 본적을 묻자 "우리 아버지 현두(賢頭:자X)"라고 대답했단다.

경찰은 춘성스님을 실성한 사람이라고 여겨 그냥 돌려보냈다 한다.
사찰로 돌아온 춘성스님은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 녀석들이 내 말을 못 알아 들어..."


[춘성스님 5화 : 내가 중대장이다]

야간통금이 있던 시절 방범순찰을 하던 경찰관이 밤길을 가는 행인을 보고 누구냐고 묻자

"중대장이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순경이 플래쉬로 얼굴을 비춰보니 중대장이 아닌 어떤 스님이었다.

"아니, 스님 아니시오?"라고 묻자
"그래, 내가 중(僧)의 대장이다."


[춘성스님 6화 : 연애나 하자]

춘성이 강화도 보문사에 있을 때 육영수 여사가 찾아와 인사를 했다.
춘성은 "뽀뽀나 하자"고 달려 들었다. 육여사는 당황하지않고 웃으며 잘 대응했다.
육여사가 박대통령에게 얘기하니 "근래 보기 드문 큰스님이 나왔구먼"


[춘성스님 7화 : 생일날 법어 "지 에미 보X에서 응애하고 나온 날"]

어느날 춘성스님은 육영수 여사의 생일날 초대되어 간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불자인 박대통령과 육여사가 법문을 청하자,

춘성스님은 마이크앞에 아무런 말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30분이 넘어서 결국 참가자들의 기다림이 한계점이 이르렀을 때 춘성스님은 갑자기 법문 한 마디를 하였다.

"오늘은 육영수 보살이 지 에미 보X에서 응애하고 나온 날이다."라고 크게 소리지르고는 퇴장해 버렸단다.

그날 이후 육영수 여사는 춘성스님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춘성스님 8화 : 내 큰 것과 네 좁은 곳?]

소견이 몹시 좁은 딸을 둔 노보살이 있었다.
하루는 이 장성한 딸을 춘성스님 처소에 보내서 소갈머리가 좀 터지는 법문을 청해 듣도록 했다.

춘성스님이 딸에게 말했다.
"내 그 큰 것이 네 그 좁은 데 어찌 들어가겠느냐?"

딸은 얼굴이 벌개지면서 방문을 박차고 울면서 달아났다.
집에 돌아와서 스님의 법문 내용을 말하고,

"큰 스님은 엉터리요"라고 어머니께 푸념을 하였다.

그러자 보살은 "그러면 그렇지, 바늘구멍도 못 들어갈 네 소견머리에

어찌 바다같은 큰 스님의 큰 법문이 들어가겠느냐"하며 혀를 찼다.

딸은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스님의 법문을 잘못 알아차린 줄 알았다.


[춘성스님 9화 : 부처는 똥이고 똥통속에도 있다]

춘성스님이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중에,

함께 탄 목사가 기독교를 믿으라면서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라고 했다.

춘성이 물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없는 데가 없다는 말이냐?"
"그러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똥통 속에도 있겠네?"
이말은 들은 목사는 춘성을 노려보면서

"감히 하나님에게 불경스러운 말을 쓴다"고 화를 내며 물었다.

"부처님은 없는 데가 없습니까?"
"없는 데가 없지!"
"그러면 부처님은 똥통 속에도 있겠네요?"

"부처가 똥이고 똥이 부처인데, 똥통 속에 있고 말고 말할 것이 뭐 있어?"


[춘성스님 10화 : 졸음한테 항복 받았다]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중 일이다.
스님은 정진 중에 사정없이 몰려오는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비장한 결심을 했다.

한 겨울에 법당 뒤 구덩이를 파고 큰 항아리를 묻은 다음,

그 항아리에 냉수를 가득 채웠다.

엄동설한 참선수행하다 졸음이 밀려오면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그 찬물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머리만 내밀고 정진을 했다.

발가벗고 항아리 속에 앉아 참선하면서 춘성스님은 쾌재를 불렀다.
"허허! 이제야 졸음한테 항복을 받았다!"


수행자로서 춘성스님은 참으로 무서운 분이었고 서릿발같은 분이었다.
도봉산 망월사에서 참선수행을 할 적에 젊은 수좌들이 담요를 덮고 자다가

스님에게 들키면 벼락이 떨어졌다.
"수행자가 편하고 따뜻한 잠을 자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야 이 씨부랄 놈아. 그 담요 이리 내 놓아라!"



[춘성스님 11화 : 시집,장가에는 보X와 자X가 제일이듯,,,]

그토록 수행에 철저했던 분이 춘성스님이었는데,

서울근교 어느 비구니사찰 중창불사를 위한 법회에서 파격적인 법문을 남겼다.

"시집 장가 가는 데는 자X와 보X가 제일이듯, 중창불사 하는 데는 돈이 제일이니,

오늘 이 법회에 온 년들아 돈 많이 시주하고 가거라!"


[춘성스님 12화 : 떨어져 봤어야 알지]

하루는 제자가 스님에게 질문했다.
"스님,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발을 더 내디면 그 다음 경계는 어떤 것입니까?"
"야 이놈아, 내가 떨어져 봤어야 알지"


[춘성스님 13화 : 신도 위해 사냐?]

춘성스님이 입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후학이 스님에게 물었다.
"열반에 드신 후에 사리가 나올까요, 안나올까요?"
스님은 "필요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후학이 다시 물었다.
"스님, 사리가 안 나오면 신도들이 실망할 터인데요"라고 하자

춘성스님 왈,
"시발놈의 자식아! 신도위해 사냐?"


스님은 시내에 갈 때는 양복을 입고 영화 관람도 즐겼으며 걸인을 만나면 입은 옷을 훌훌 벗어주고 팬티 바람으로 절까지 걸어오곤 했다. 그리고 이불을 덮지 않고 자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주석한 망월사에는 아예 이불이 없었다. 그는 ‘걸망에 죽비 하나, 빼놓은 틀니 하나, 주민등록증, 그리고 빤스 하나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스님은 입적 후에 절대로 사리를 찾지 말고, 비석과 부도를 세우지 말 것이며, 오직 수행에 힘쓰라고 당부했다. 투철한 수행과 일반인의 눈에 특이하게 보이는 기행으로 한 생을 살다 간 그를 보내는 날 밤, 명진 스님을 비롯한 후배 선승들은 다비식장에서 그가 생전에 즐겨 불렀던 <나그네 설움> 등을 부르며 노래자랑(?)을 벌였다고 한다.



[춘성스님: 걸죽한 욕설 속에 번뜩이는 禪旨]

춘성 스님은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님이 아니었고 큰 감투를 별로 쓴 일이 없었기에 매스컴에 자주 소개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 1970년대 한국불교계에서 ‘욕쟁이 스님’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춘성 스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걸죽한 욕설을 무차별로 쏟아내는 스님이었다.

지나치게 화장을 하고 사치스런 옷을 걸친 채 으시대기 좋아하는 여자가 절에 오면 춘성 스님은 아무리 지체가 높은 고관대작의 부인이라고 하더라도 즉석에서 “씨부랄 년!” 이라는 욕부터 쏟아냈고, 값비싼 털옷을 입고 온 여자의 털옷을 벗게 한 뒤 그 자리에서 태워버린 일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걸림없이 쏟아내는 춘성 스님의 무지막지한 욕설을 들어도 누구 한사람 감히 항의하거나 대들지 못한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참 이상하게도 춘성 스님의 욕설에서는 천박한 냄새가 나는게 아니라 상큼하고 속시원한 지혜가 번뜩였으니, 이것은 아마도 걸죽하고 질퍽한 춘성 스님의 육두문자와 욕설 속에 선지(禪旨)가 담겨있었던 탓이 아닌가 싶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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