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꽃 하나를 줍다
- 조창환(1945~) -
떨어진 꽃 하나를 주워 들여다본다
밟히지 않은 꽃잎 몇 개는 나긋나긋하다
꽃잎 하나를 따서 가만히 비벼보면
병아리 심장 같은 것이 팔딱팔딱 숨쉬는
소리 따뜻하고, 손가락 끄트머리가
아득하다 안개 속의 섬처럼, 혹은
호수에 잠긴 절 그림자처럼
떨어진 꽃 하나를 주워 들여다보는
아침 뜨락에 햇빛 가득하고
어디서 만년설 무너지는 소리
울린다 가을 잎들이
백지 같은 바람 속에서 마구 흔들리고
벌레들이 소스라친다
낙화가 개화보다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동백나무다. 동백 꽃 낙화는 고요의 허공을 가르며 벼락처럼 내리치는 찬란한 파국이다. 노란 꽃술을 보듬고 무너앉는 동백 꽃송이의 추락은 숨막힐 듯 황홀하다. 숨 죽이고 동백 숲 안에 들어서서 그의 낙화에 귀 기울이면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다. 옴쭉달싹 못하는 심장 속으로 생명의 박동이 파고 든다. 꽃과 흙이, 사람과 나무가 하나 되는 찰나다. 동백 꽃 빨갛게 피워 올릴 겨울이 다가온다. 다시 이 땅에 봄 오면 떨어진 동백 꽃 송이 하나 주워 들고 병아리 심장처럼 팔딱이는 생명의 박동을 들어야겠다. 가을 비 찬 바람에 동백 꽃봉오리가 꼬물꼬물 부풀어 오른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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