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야생의 슬픔
- 박노해(1957∼ ) -
산들은 고독했다
백두대간은 쓸쓸했다
제 품에서 힘차게 뛰놀던
흰 여우 대륙사슴 반달곰 야생 늑대들은 사라지고
쩌렁 쩡 가슴 울리던 호랑이도 사라지고
아이 울음소리 끊긴 마을처럼
산들은 참을 수 없는 적막감에
조용히 안으로 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들은 알아야만 했다
사라진 것은 야생 동물만이 아니었음을
이 땅에서 사라진 야생 동물들과 함께
야생의 정신도 큰 울음도 사라져버렸음을
허리가 동강 난 나라의 사람들은
다시 제 몸을 동강 내고 있다는 걸
산들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조용히 안으로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