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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낙과

글모음(writings)/꽃과 나무

by 굴재사람 2010. 9. 1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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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낙과

 

 

과실은 원래 6월이 두렵다. 꽃필 무렵 저온 현상, 늦서리의 만상해(晩霜害)를 가까스로 모면하면 바야흐로 과실끼리 자양분(滋養分) 경합이다. 여기서 밀린 과실들이 가지에서 우수수 떨어진다. ‘준 드롭(June Drop)’이라 불리는 생리적 ‘6월 낙과(落果)’다. ‘뜨내기 산새처럼/피나게 울음 울다/목이 잠긴 돌멩이(변학규 『낙과』)’가 되는 것이다.

이런 낙과야 과실 팔자일 터다. 매달린 열매도 뚝뚝 따버리는 농부의 손은 더 무섭다. ‘똑똑한 놈’ 크고 튼실하게 키우려 ‘만만한 놈’ 솎아내는 것이다. 적과(摘果)인데, 열매와 이파리의 비율을 따져 집어낸다. 살아남았다고 안심은 금물이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솎아도 비대증에 걸린다. 핵(核)이 벌어지고, 마치 동맥경화증이라도 걸린 듯 유관(維管)이 막혀 결국 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토양에 수분이 많아도, 거름이 많아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과실이 제대로 여물기가 여느 해보다 더 힘들었다. 봄에는 이상저온과 일조량(日照量) 부족, 여름엔 폭염과 폭우가 교차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일조시간은 평년보다 196.4시간 부족했다. 오뉴월 하루 볕에 오곡백과(五穀百果)가 익는데, ‘쨍 하고 볕든 날’이 적었다. 그러니 4월의 평균기온도 9.9도로 기상청 전국 통계가 시작된 1973년 이래 가장 낮았다. 반면 여름철 평균기온은 24.8도로 두 번째로 높았다. 과실들이 마치 학질이라도 걸리듯 오한(惡寒)과 고열(高熱)로 몸살을 앓았던 것이다.

용케 봄과 여름을 지내온 과실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9월이 두렵다. 해마다 가을이면 태풍에 가을장마 ‘물 폭탄’이다. 태풍 곤파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낙과와 뿌리 뽑힌 나무가 뒹군다. 여기에 지겹도록 쏟아지는 가을장마로 그나마 버티던 과실마저 떨어진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영향이다. 물리적 ‘9월 낙과’인 셈이다.

그래도 좌절은 금물이다. 일본 작가 하코다 다다아키는 ‘떨어진 사과를 팔아라’에서 미국 미네소타의 한 농부를 소개한다. 우박 맞은 사과를 ‘자연의 혜택을 입은 천연 사과’로 포장해 위기를 극복한 이야기다. 사과의 검은 반점을 우박 증거로 내세우며 순수한 자연상태를 강조하자 오히려 불티나게 팔렸다는 것이다. 우리 농민도 만만찮다. 못난 과실이 당도가 높은 법. 낙과로 잼과 식초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2차 가공식품인 셈인데, 절망을 희망으로 발효시키는 자연순응적 지혜다. 

박종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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