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왜 ‘삼겹살에 소주’ 열광하나 한국 술의 역사와 종류, 술 문화의 변천 소개 원경은ㆍ임완혁 지음 / 한울 출판 / 2010-07-19 출간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고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날에도 불판 앞에만 앉으면 왜 '삼겹살에 소주' 생각이 간절한 걸까. 또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따끈한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생각하는 건 왜일까. 신간 '소울 푸드'(한울 펴냄)의 저자 원경은ㆍ임완혁씨는 "우리 술은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소울(soul) 푸드"라면서 "한여름 불판 앞이라도 삼겹살에 소주가 정겹고 비 오는 날엔 어김없이 파전에 막걸리가 떠오르는 것은 문화적인 미각이 소울 푸드인 우리 술을 찾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술을 같이 마셔봐야 한다는 말처럼 술에는 사람의 감춰진 내면의 모습은 물론 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우리 술의 역사와 종류, 술 문화의 변천, 술을 제대로 즐기는 법 등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각국의 술 문화, 술의 역사·종류 등도 전한다. 술 담그는 법, 술 용어사전, 생활 속 술 사용방법 등도 재미를 더한다. '국민주' 소주가 한반도에 유입된 것은 몽골이 침입한 고려 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추운 지방에 살던 몽골족이 독하고 쓴 증류주를 좋아해 호리병에 술을 넣어 허리에 항상 차고 다녔는데 몽골군이 고려를 침략할 때 증류주도 함께 들어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이 갖춰야 할 주요 덕목 중 하나는 술빚기였으며 명문가 규수는 12가지 장 담그는 법, 24가지 김치 담그는 법과 함께 36가지 술 담그는 법을 익히는 것이 필수였다고 한다. 1945년부터 시행된 ‘야간 통행금지’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 조치다. 일을 끝낸 사람들의 삶을 달래주는 술자리에서 시간에 쫓기면서 마신 술은 폭음문화를 만들어냈다. 1982년 1월5일 통금 폐지로 사람들은 여유로워진 밤에 열광했고, 술 문화는 급격히 변했다. ‘살롱’은 원래 17~18세기 프랑스에서 철학·문학·예술 등을 토론하던 장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방을 뜻하는 ‘룸’과 결합, 신조어 ‘룸살롱’을 만들어냈다. 1980~90년대 호황을 누리던 유흥주점으로 접대 문화를 대변, 사치스러운 공간의 대명사가 됐다. 저자들은 “술이란 알코올이라고도 하고 신의 물방울이라고도 한다. 우리 술은 여기에 한 가지 의미가 더 붙는다. 김치와 장처럼 우리의 민족성이 담긴 음식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음식, 소울푸드”라고 강조한다. '술 없이 못사는' 주당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중국에 '주선(酒仙)' 이백(李白)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있다. 시와 거문고, 술을 좋아해 삼혹호(三酷好)로 불린 이규보는 술을 의인화한 '국선생전' 등 술에 관한 많은 시와 글을 남겼다. 저자들은 한국인이 술을 많이 마시지만, 술을 즐기며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다면서 "선인들이 술을 대하던 멋과 풍류를 배움으로써 술을 마실 때 운치와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연합뉴스) 기사입력 2010-08-22 08:55 기사수정 2010-08-22 08:55 책속으로 어패류나 바다 동물을 주식으로 하는 에스키모에게는 술이 없다. 생선, 고기, 당분이 적은 곡식으로는 술을 담글 수 없기 때문이다. 적도 근처, 시베리아, 아프리카에 사는 수렵 민족도 마찬가지다. 재료도 부족한 데다 너무 춥거나 더워서 술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런가 하면 중동과 인도는 술을 빚기에 좋은 환경인데도 오랫동안 술 문화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다. 이 지역의 종교인 이슬람교와 힌두교가 술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26p)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시시때때로 금주령이 내려졌다고 해도 예외 조항이란 것이 있었다. (중략) 특히 병자의 약용으로 쓰인 약술과 소규모로 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백성들은 눈감아 주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 다소 애매한 판정이 예상되는 예외 조항이긴 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확한 처벌 범위가 아니라 처벌할 경우와 대상을 가렸던 조선 시대 금주령의 인간적인 면에 있다. 조선의 금주령에는 전통과 예의에 대한 경애심과 가난한 백성에 대한 연민이 깔려 있다. (61~63p) 정종은 술의 종류가 아니라 일본 청주의 상표명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부산에 세운 주류 회사에서 팔던 마사무네(正宗, 정종)라는 술의 이름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다. 그러므로 청주를 정종이라고 하는 것은 승합차를 ‘봉고’차라고 부르거나 1회용 반창고를 ‘대일밴드’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본 술을 정종이라 통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정종이란 말이 굳어진 데에는 당시 마사무네의 인기가 높았던 탓도 있지만, 예로부터 제사에 술을 올릴 때 맑은 술인 청주를 썼던 우리의 전통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집에서 술을 담글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제사에 올릴 술로 시중에서 파는 마사무네와 같은 제품을 사서 쓰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제품인 정종이 청주를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변화됐을 것이다. (131p) 술독에 식은 밥과 누룩, 물을 섞어 넣고 온도를 잘 맞춰주면 항아리 안에서 술이 익어 부글부글 거품이 인다. 발효가 끝난 후 위에 뜬 맑은술은 무명 자루 같은 것에 담아서 통 속에 쌓아 눌러 짜낸다. 이것이 재래식 청주다. 남은 탁한 술을 체에 받아 찌꺼기를 거른 후 적당량의 물을 섞어 더 익힌 것이 탁주다. 탁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술지게미라고 한다. 동네마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지게미를 배고픈 이들이 나눠 먹었다. 술지게미는 허기를 달래기에는 좋았으나 남아 있는 술 성분 때문에 술도가에서 술지게미를 얻어먹고 논밭에서 잠이 들거나 비틀거리며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136p) 포장마차는 주머니 가벼운 술꾼들의 천국이었고 도시민들의 애환과 고단한 삶이 서려 있는 공간이었다. “가슴 밑바닥의 이야기, 혼자 견뎌내는 이야기, 아무한테나 툭 털어놓게 되지 않는, 친구에게만 할 수 있는, 서로의 생을 묵묵히 인정할 수 있을 때만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임영태, 「포장마차」)가 오가는 따스한 곳이자,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차거운 소주를 붓는”(박노해, 「노동의 새벽」) 쓰라린 곳이기도 했다. (142~144p)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증류식 소주의 생산이 금지되자 그때부터 희석식으로 생산 방식을 변경했다. 대부분의 소주 업체가 1960년대에 진로처럼 희석식으로 대체하거나 문을 닫았다. 이렇듯 우리 술 문화에 본격적으로 희석식 소주가 등장한 역사는 반세기 정도에 불과하다. 희석식 소주는 근대가 만들어낸 산물이자 짧은 시간 동안에 폭발적인 지지를 얻어 대중주로 떠오른,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독특한 술이다. (166p) 주점이나 주류 판매처에서 특정 소주 제품만 갖다놓고 파는 이유는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소주 브랜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다른 지방에 가서 술집에 들르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낯선 사투리 속에서 생전 처음 보는 소주를 마시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맥주나 청주 등 다른 주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주만의 유별난 특징이다. (중략) 물론 각 소주 제품마다 맛과 주질의 차이가 있다. 다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전문가조차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분이 어렵다. 우리나라 희석식 소주는 기본 원료인 주정이 같기 때문이다. 모든 제품이 쌀, 보리, 고구마 등을 섞어 증류한 비슷한 주정을 쓴다. 결국 첨가물의 배합과 기술적인 공법, 물에 의해 미묘하게 맛이 달라진다. 이런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역 소주에 대한 지역민의 애착은 대단하다. 입맛과 기호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66~168p) 우리나라에서 100퍼센트 원액 양주가 출시되기 전에는 ‘합성 양주’라는 것이 있었다. 1970~1980년대에는 양주 수입이 규제되던 때라 수입 양주 원액을 20퍼센트 정도만 넣고 만든 합성 양주가 큰 인기였다. 당시 국산 양주 가운데 위스키가 들어간 ‘베리나인’, 보드카가 들어간 ‘하야비치’, 브랜디가 들어간 ‘나폴레온’, 그리고 럼이 들어간 ‘캡틴큐’는 애주가들의 로망이었다. 특히 캡틴큐와 나폴레온의 인기가 높았다. 검은 안대를 한 해적 선장의 얼굴이 로고로 박혀 있는 캡틴큐는 비싼 수입 위스키에 대적하기 위해 야심차게 내놓은 저렴한 국산 양주였다. (183p) 나라마다 술 문화가 다르듯 해장 문화도 다르다. 미국인들은 날달걀에 소금, 후추, 토마토 주스 등을 섞어 마시고, 일본인들은 매실 장아찌의 일종인 우메보시(梅干, うめぼし)를 그냥 먹거나 녹차에 넣어 마신다. 독일인들은 소금과 식초에 절인 청어를 피클 양파에 싸서 먹는 롤몹스(rollmops)를 즐기며, 중국인들은 진한 녹차에 레몬이나 식초를 넣어 마신다. 놀랍게도 네덜란드인들과 러시아인들은 해장술을 마신다. 영어로 해장술은 hair of dog, 즉 개털이라고 한다. 미친개에게 물린 상처에는 그 개의 털이 좋다는 미신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208p) 직장인들의 술자리는 대게 동료 또는 상하 간의 격의를 없앤다는 명목 아래 상사 주도로 폭탄주를 돌리거나 원샷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다. 또한 자리를 옮겨가며 1차,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을 마신다. 차수가 많다 보니 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지막 차수까지 남은 주당들은 서로 ‘진정한 술꾼’, ‘정예 멤버’로 부르며 밀접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직장인들의 술 문화가 과음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214p) 술을 마셨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균형 감각을 잃은 다리, 부정확한 발음, 졸린 듯 풀린 동공 등 신체적인 것이 아니다. 격양된 목소리, 과감해진 표현과 과도한 몸짓 등을 가능케 하는 ‘심리적인 변화’다. 술을 마법의 음료라고 하는 것은 단 몇 모금만으로도 사람의 성격을 바꾸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이 신비로운 힘 때문이다. (중략) 술을 마신 정도에 따라 심리 변화가 다양하게 일어나는 까닭은 알코올이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뇌의 각 부서를 차례로 혼란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244~246p)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뇌의 해마 부분이 술 속에 들어 있는 알코올에 의해 교란을 겪기 때문이다.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고 불러오는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같은 공간이다. 특히 단기 기억, 즉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 장소, 대화 내용 등이 저장되는 공간이다. 그런데 술에 취하면 해마의 저장 기능이 마비된다. 필름이 끊긴 다음 날 우리는 보통 자신이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블랙아웃은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해마에 입력된 기억이 아예 없는 상태다. 그래서 최면을 건다고 해도 이때의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267p) 아래 표시하기를 클릭하면 음악이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