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이 내려가야 할 길
오은선이 27일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섰다. 히말라야 8000m 이상 14봉우리를 모두 오른 세계 최초의 여성이라는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오은선이 주목 받는 건 ‘최초’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는 기억하지만 폴란드의 예지 쿠쿠치카는 모른다. 쿠쿠치카는 메스너가 1986년 처음으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이듬해 뒤를 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오은선을 뛰어넘는 여성 산악인이 나오겠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은 영원하다.
영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존경과 따뜻함도 있지만 비판과 차가움도 있다. 오은선 역시 지난해 칸첸중가(8586m) 미등정 논란을 겪으며 냉엄한 프로 세계를 실감했다. 최근 3년 만에 11개 봉우리를 밟은 그의 속도 경쟁을 두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오은선은 지난해 자신을 향한 뒷담화가 많은 데 대해 “산악계가 이런 곳인 줄 몰랐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오은선의 경쟁자였던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은 이달 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오은선과 함께 머물 때 ‘우리는 왜 남자 친구가 없을까’에 대해 수다를 떨 만큼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에는 “오은선이 여성 첫 14좌 완등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사반은 17일 안나푸르나를 오른 뒤 마지막 봉우리인 시샤팡마(8027m)로 떠나기 전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을 제기했다. 열흘 후 오은선이 자신보다 먼저 14좌 완등을 이루자 “오은선은 카트만두로 돌아와 칸첸중가 등정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다시 포문을 열었다.
오은선의 성격은 직선적이다. 오은선은 그동안 주위에서 하는 쓴소리에 대해 ‘나만 아니면 되지’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제 그래선 안 된다. 날선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사람들도 보듬어 안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그의 활동이다. 메스너를 비롯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가 추앙 받는 건 단순히 최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위업을 달성한 뒤 끊임없는 사회 공헌 활동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메스너는 고향에 등산학교를 세워 후학을 키웠으며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20권이나 되는 책을 써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산악문학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2008년 고인이 된 힐러리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자신 중 ‘과연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에 올랐나’라는 초등 논란에 시달렸다. 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논란은 힐러리가 같은 기간 보여줬던 봉사와 헌신에 비하면 부질없는 짓이었다.
오은선도 지난해 꿈 많은 여성과 젊은이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히말라야의 자연과 사람들을 위한 활동도 생각해 봄직하다. 그는 이번 원정을 떠나기 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14좌 완등 후가 더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허탈감이 밀려올까 봐 걱정”이라고도 했다.
목표가 빠져나간 자리에 따뜻한 마음이 가득 채워지길 기대한다. 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정상은 내려오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는 말도 있다. 오은선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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